내 고향 142가 517번지.
517 West 142nd St. NY, NY 10031. 내가 처음으로 가졌던 미국 주소다.
그 집은 브로드웨이 선상에서 동쪽으로 몇 걸음 안 쪽에 있었고, 거기서부터 두어 블럭 서쪽으로 허드슨 강이 흐르고 있다. 그 허드슨 강이 내게 특별한 구실을 해주었다. 강 이름을 궁여지책으로 써 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브로드웨이가 바로 앞에 있고 거기서 쭉 걸어가면 허드슨 강이 나와.’ 맞는 말이지만, 뉴앙스는 무척 달랐다.
그 유명한 42가 브로드웨이에서 100블럭을 북쪽으로 올라 온 142가 브로드웨이는 딴 세상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에 어슬렁거리며 바로 옆 암스테르담 에브뉴는 폐허 그 자체이다. 나이 30에 친구 찾아 뉴욕엘 온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기상천외한 동네였다. 이름하여 스패니쉬 할렘이었다.
허드슨(HUDSON)! 얼마나 낭만적인 이름인가. 맑고 순수한 자연과 예술적인 품위가 느껴진다. 선망의 눈으로 나를 떠나 보냈을 내 가족과 친구들이 편지를 읽으며 ‘과연 노려가 멋진 뉴욕엘 갔구나’하고 부러워하길 바랬다.
아니 그 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현장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라도 브로드웨이 하면 네온 싸인이 휘황찬란한 뮤지컬을 떠올릴 것이고, 허드슨 강이라고 하면 빠리의 세느의 분위기를 연상하겠지하는 바램이었다.
방이 많으니까 염려 말고 오라고 한 친구 원숙이 말대로 5층 브라운 스톤 빌딩에 방은 참 많았지만, 방 다운 방은 하나도 없었다. 지하실부터 옥상까지가 공사 중이었다. 예쁘게 꾸며진 내 방에서의 감격도 잠시, 그 방은 며칠 후에 헐리고 나는 짐을 싸들고 다른 층의 다른 방으로 옮겨야 했다.
시끄럽던 거리와 횟가루가 뒤덥혀 어수선하던 브라운스톤 원숙이의 집에 살던 그 여름 뜨거운 열기까지도 생생하다. 지하실 부엌에서는 나 말고 그 집에 살던 신학생 부부, 뉴욕에 반해 주저 앉은 화가, 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드나 들던 뉴욕의 예술인들로 늘 와글거려다. 그 때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해 내던 그 시간들이 내 마음 속에 겹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곳을 떠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허드슨 강변에 살고 있다. 142가에서 곧장 한 100 블럭 정도 더 북쪽으로 간 우리 동네에서도 10분이면 허드슨 강가로 갈 수 있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교회를 다녔고, 여름이면 애들이랑 강가의 공원으로 놀러 가기도 했다. 이렇게 한가한 동네에 살면서도 강을 지긋이 바라보는 한가로운시간을 가져보지 못하고 사는 것은 그 때와 마찬가지다. 다만 뉴욕에 첫 발을 디딘 그 곳이 그리움으로 떠 오르곤 하는 것이 달라졌다.
138가에서 버스를 내려 전화를 하면 신학생 아저씨가 개를 끌고 나를 데리러 오던 그 거리가, 내가 살던 명륜동 창경원 뒷담길 처럼, 개천물 소리 시원하던 정능 골짜기처럼, 무거운 책가방 몸이 휘어지게 들고 걷던 효자동 길처럼 오로지 정겨움으로만 남아 있다.
아직도 내 땅 같지 않은 미국에서, 어느 새 142가 517번지는 내 고향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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