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17, 2015

힐러리

힐러리


밀집 모자를 쓰고 성조기 머플러를 한 힐러리 클린톤은  5월의 여왕처럼, 그러나 여왕이라면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바짝 둘러 쌓여 있다. 챠파쿠아 기차 역 앞 메모리알 데이(재향 군인의 날) 기념식 장에서다.
군중 속에 떠 밀리면서 연속적으로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힐러리 옆에 바짝 서 있었는데 한 순간에 그녀의 혼잣 말을 포착했다.
“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Now where am I going to.....기회는 노리는 자에게 온다. 
“이리로 오세요. Here.” 클린톤 대통령 내외를 이날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행사요원의 한사람 처럼 그녀를 이끌고 단상 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힐러리 클린톤에게 하고 싶던 말을 했다.    
“당신을 찍겠어요.” 
그 때는 힐러리가 대통령 후보에 나선다는 발표를 하기 훨씬 전이었다. 내 말을 듣고 잠시 날 바라다 보더니 힐러리는 기분 좋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오우, 땡큐. ' 했다.  
힐러리를 만나면 이 말을 꼭 하려고 했다.
힐러리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 TV 모닝 쇼에 나온 단발 머리에 헤어밴드를 한 젊고 발랄한, 예쁘고 똑똑한 대통령 부인을 봤을 때 부터였다. 머리좋고 예쁘기도 하고 농담도 잘 하며 부드러운 점까지 갖춘 여성이었다. 미국 정치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이 없었지만 그 녀가 상원의원으로 출마하여 우리 동네 상가로 선거유세를 하러 왔을 때에는 일부러 나가 서 있다가 악수를 했다. 영부인에서 머물지 않고 따로 자기의 길을 가는 그 여성이 대단해 보였다.
내가 받은 가정교육에는 여자가 따로 있질 않았었다.  어머니가 딸만 넷을 낳은 걸 한탄하시긴 했어도, 우리 집에는 남녀불평등이 없었다. 남녀 공학 대학을 다닐 때에도 회사를 다닐 때에도 특별히 여자이기에 억울한 일은 없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남존여비를 경험한 것은 지방 대학에 강의를 나갈 때였다. 장남에게만 가는 부모 의료 해택이 장녀에게는 해당이 안됀다고 했다. 심장이 좋지 않으신 아버지를 위해서 딸만 있는 집은 어떻게 하냐며 서무과로, 동회로, 구청으로 막힌 길을 뚫으러 다녔었다. 
거의 여성운동가가 될 뻔 했다. 물론 나는 여성 운동가는 아니다. 여자도 인간이라고 데모하고 나서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말 없이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남자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똑 같은 인간이라는 걸 내 스스로가 일상생활에서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물론 어려웠다.
대학 졸업 연설에 20분이나 기립 박수를 받았다는 힐러리가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를 했다는 것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2008년에 오바마가 해성처럼 등장하자 힐러리가 ‘여자’라는 타이틀에 힘겨웠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인 것이 신문기사 꺼리가 되는 걸 봤다. 나와는 엄청난 거리의 여자였지만 여성이라는 점에서 한뼘 쯤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가 국무장관직을 끝낼 무렵 주름 잡힌 얼굴과 대충 꿍진듯한 머리와 두리뭉실해진 몸매의 힐러리 사진을 보며 조금 더 나와 더 가까와 진 기분이다. 어느 여성 잡지 인터뷰에서 힐러리는  ‘내 남자동료들을 보면 샤워하고 수염깎고 옷 입으면 되는데, 여자는 뭘 입었는지 어떻게 입었는지,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까지 시선을 받으니,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라고 했다. 맞다. 여성이라는 존재는 걸머져야 할 짐이 한 보따리다 . 그 보따리를 지고도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 그것도 한번 떨어지고 또 다시 도전하는 그 모습에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힐러리는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정치는 모른다. 정말 모른다. 유색 얼굴을 한 내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 같아서 오바바를 열심히 후원 했었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힐러리를 응원한다.
남편 성공 시키고 나서 국무장관까지 너끈히 해낸 힐러리가 얼마나 야무지게 나라 일을 잘 하는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8년씩이나 대통령 경험이 있는 빌 클린톤이 아내에게 진 빚을 외조로 갚는 모습도 보고 싶다.

결론 없는 드라마

한국 TV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 고향이 그립기는 해도 한국 연속극을 보지 못한 제일 크 이유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앉아서 볼 시간도 없었지만 반복되는 먹는 장면, 울고 싸우는 장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까왔다. 한창 모래시계가 인기가 있을 때에도, 또 대장금이 난리가 났을 때도 모이기마 하면 벌어지는 대화의 광장에서 빠지곤 했다.
이제는 배우들이 낯설어서 흥미가 없고, 또 그 배우가 다 그 배우 같아서 더 재미가 없다.
극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극을 참 좋아한다. 한국에서 그 유명한 ‘아씨’도 ‘여로’도 밖으로 돌아 다니느라 잘 보지 않은 내가, 미국에 와서 살 운명이어서 그랬는지 '형사 콜롬보'와 '하와이 5-0 '같은 미국 TV극을 열심히 봤다. ‘리치 맨 푸어맨(Rich Man, Poor Man), 우리말 제목 ‘야망의 계절’이 하는 날은 택시를 타고 집에 올 정도로 좋아했다. 스토리도 재미있었지만,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냉철한 주인공 ‘루디 죠다시’를 애틋한 눈 빛으로 그려낸 배우 피터 스트라우스에게 푹 빠져 있었다.
방학 때 애들 데리고 갔었던 맨해튼의 ‘Museum of Television’에서 애들이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곧 바로 ‘리치 맨 푸어맨’을 찾아 보았다. 피터 스트라우스의 얼굴을 보자 미국에 온 것을 잘 했다할 정도였다. 몇 분간 훌터 본 “야망의 계절’을 다시 보고 싶어 아마존 닷 컴이며 유튜브며 수소문 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드디어 넷플릭스(Netflx)에서 찾아 내고야 말았다. 2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는DVD 9개를 한개씩 차례로 보내 오는 것을 한달을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그야말로 '연속'으로 다 봤다. 
그 때는 ‘미국’이기만 했던 극의 배경이 바로 뉴욕이었다.  
집에서 한 두시간 북쪽에 있는 어느 마을과 맨해튼이 이 극의 무대다. 쥴리가 오디션을 보는 곳은 브로드웨이 42가, 쥴리를 찾으러 온 루디는 이스트 사이드의 허름한 거리를 헤메고,  깡패가 된 탐이 숨어 있던 싸구려 호텔은 웨스트 사이드 30가 쯤이다. 내가 좋아하는 알로 가스리(Arlo Guthrie)가 노래 부르던 카페가 있는 곳은 그리니치 빌리지이다.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선망의 눈으로 보던 드라마 장면 하나 하나가 지금 나의 삶의 현장인 것이다. 내친 김에 '형사 콜롬보'도 다시 봤다. 요즘 같으면 피가 낭자했을 장면에도 단순히 '억'하고 사람이 쓰러지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스릴과 서스팬스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몇 번 가봤던 로스엔젤레스의 60년대가 에피소드 하나마다 파노라마로 그려진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들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것은 그 때와 마찬가지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열심히 보고 있는 TV극은 얼마 전에 끝이 난 매드 맨(Mas Man) 이다. 이 역시도 60년대 70년대 맨해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색다른 감회를 준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벌어지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 보다 배우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더 친근하다. 한 회가 끝나면 다음 회를 여는 재미가 솔솔하다. 볼 시간도 많고 보는 시간이 아깝지도 않다.

인생은 하나의 극이다. 4막 연극이 아니라, 기승전결이 없이 지속되는 TV 드라마다. 지금 이시간을 내가 나의 드라마를 만드는 중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리치 맨 푸어 맨, 매드 맨 처럼 끝나는 순간까지 마음을 사로 잡는 드라마 말이다. 그러나 결론을 아직 생각해 내지 못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결론도 달라질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결론 없이 쓰여지는 내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싶다.


Monday, February 16, 2015

내 이름

내 이름 노려
'무슨 이름으로 할까.' 부르기 쉽고 예쁘고 뜻도 좋은 이름을 하나 만들어 보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년이 시작할 때마다 내 이름이 쉽게 넘어 가질 않았다. 김씨부터 차례로 출석을 부르던 선생님이 잠시 뜸을 드리면 내 차례인 줄을 안다.  '노오---'  우선 눈을 들어 아이들을 바라보고 나서 선생님은 다시 출석부를 내려다 보며 '려-어?' 하신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누가 노려인가를 찾으신다.  ‘네에.’ 손을 반쯤 올린 나를 확인하고는 혼자말 처럼  “노오, 려!” 하신다.  첫 시간에 이름 때문에 선생님과 눈을 마추지며 중 고등학교를 지냈고, 대학 때에는 그 흔한 대리 출석 한 번 못해 봤다.
내가 나를 소개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제 이름은요......" 나 역시도 잠시 뜸을 드리고나서 또박또박  "노오~ . 려어~ 예요.  성이 노오구요, 이름은 려어. 고구려할 때 려에요." 한다. 모두들 '아하!' 한다. 이어령 씨의 령자는 실은 영자인데 발음 땜에 령이 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나의 려자는 '여수'처럼 ‘여’라고 읽어야하지만 누구도 나를  ‘여 여’ '여 씨'라고도 부르질 않고 성을 붙여서 노려야,  노려씨로 부른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노려 라는 이름을누가 지어 줬냐는 것이다.  그럴듯한 사연이 있을만 한 ‘려’자는 어머니가  좋아 하던 중국 여배우 리리화(李麗華)에서 ‘려’자를 따왔다고 한다. 려자 하나로는 이쁘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성을 전혀 고려하지를 않았기에 이렇게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이름이 된 것이다. 미국 간 친구가  <노려 귀하, 성북구 정능동>이라고만 적어 보낸  편지를 우체부 아저씨가 전해 준 일은 어머니의 자식 자랑 중에 하나이다.
이름으로 덕을 보기도 한다. 여학교 때 신발 주머니, 앞 치마, 덫신에 이름을 수 놓을 때에 가장 큰 덕을 봤다.  한문 盧 麗는, 보통 이름 석자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획수인데  한글 ‘노려’는 직선 몇 개면 된다. 내 이름을 말할 때 아예 ‘짜려 봐, 뭘 노려’ 가 별명이라고 이실직고하고 나면 처음 만난 사람하고도 무장해제가 되어 좋다.
미국에 와서는 ‘려(RYO)’라는 나의 영어 이름에  남편의  성 계(KEH)가 붙어서 더 문제다.  Ryo Keh ! 보기에는 간단해도 미국 사람이 ‘롸이여 케이~’ 소리쳐도 나는 멍청하게 앉아 있곤 한다. 미국에 오자마자 친구가  미국 이름 하나 만들라고 권했들 때 공연히 자존심을 부렸나 후회도 했다.  ‘계려’가  '노려'보다 더 이상해서 나는  여자들이 남편 성을 쓰는 미국에서나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있다.
처음 이름을 바꾸려도 시도 했던 건 블로그를 만들 때였다. 그러나 암만 생각해 봐도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해 포기했었다.  얼마 전, 이번에는 필명을 하나 가져볼까 해서 또 내 이름을 들먹였다. 그러나 또 막막했다. 누구한테  부탁을 해 볼까도 했다. 남편은 그냥 봐도 내 이름은 꼭 필명처럼 보인다고 했다.  채운 彩雲이라는 호를 갖고 있는 어머니에게 ‘ 나도 호를 하나 지을까.’ 했더니, 차분한 어조로  ' 뭐라고 짓더라도 <려>의 뜻을 떠나지는 말아라' 하신다.
얼마든지 내 맘대로 해도 될텐데 내가 갖고 싶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이름을 찾지 못했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이름 ?  노려보고 째려본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보면 차라리 ‘노려’가 더 가까운 듯 했다. 뭐든지 노려보면서 살아 온 기분이다. 이름이 남 다르다는 것 때문에 어쩌면 공연히 나는 남과는 좀 달라야 된다고 생각하고 눈에 힘을 주고 살아 왔을 수도 있다.
자기 이름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는 언제인가? 한 평생 나를 대변 해 준 그 이름에는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이제와서 ‘노려’로 살아 온 세월을 부인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려보지만 말고, 어머니가 “ 노려야. 생각해봐라. 아름다울 려, 고울 려…... 얼마나 뜻이 좋으니" 하신 려의 뜻을 살려봐야 하지 않을까. 고구려나 고려까지 멀리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남해로 수학 여행 갔을 때 흠뻑 반했던 야생 동백 꽃으로 덮였던 여수麗水의 고운 물결이 생각난다. 내 이름을 바꿔보려는 생각은 고히 접었다. 
요즈음은 미국인들에게,  리오 데자네이로 Rio de Janeiro의 ‘리오’라고 하면  “오우. 뤼오 ! “하면서 좋아들 한다. 발음 편리상 이용한 '리오 데 자네이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뿐인가. 노려는 브라질 이름  누리엘과 비슷하다. 누리엘의 뜻은 빛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름은 겉 모습일 뿐. 그 속에 담기는 삶은 내가 만들기에 달린거다. 곱고 아름다운 빛 노려! 앞으로는 그렇게 살고 싶다.

2011년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문인극 대본/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등장인물 :   앙드레 지드, 나레이터, 시인 1, 2, 3, 4, 5, 6 …가수, 무용수 장면 :   거리의 카페 …테이블, 의자, 가로등… 정원 ….꽃, 화분, 벤치  숲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