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TV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 고향이 그립기는 해도 한국 연속극을 보지 못한 제일 크 이유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앉아서 볼 시간도 없었지만 반복되는 먹는 장면, 울고 싸우는 장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까왔다. 한창 모래시계가 인기가 있을 때에도, 또 대장금이 난리가 났을 때도 모이기마 하면 벌어지는 대화의 광장에서 빠지곤 했다.
이제는 배우들이 낯설어서 흥미가 없고, 또 그 배우가 다 그 배우 같아서 더 재미가 없다.
극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극을 참 좋아한다. 한국에서 그 유명한 ‘아씨’도 ‘여로’도 밖으로 돌아 다니느라 잘 보지 않은 내가, 미국에 와서 살 운명이어서 그랬는지 '형사 콜롬보'와 '하와이 5-0 '같은 미국 TV극을 열심히 봤다. ‘리치 맨 푸어맨(Rich Man, Poor Man), 우리말 제목 ‘야망의 계절’이 하는 날은 택시를 타고 집에 올 정도로 좋아했다. 스토리도 재미있었지만,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냉철한 주인공 ‘루디 죠다시’를 애틋한 눈 빛으로 그려낸 배우 피터 스트라우스에게 푹 빠져 있었다.
방학 때 애들 데리고 갔었던 맨해튼의 ‘Museum of Television’에서 애들이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곧 바로 ‘리치 맨 푸어맨’을 찾아 보았다. 피터 스트라우스의 얼굴을 보자 미국에 온 것을 잘 했다할 정도였다. 몇 분간 훌터 본 “야망의 계절’을 다시 보고 싶어 아마존 닷 컴이며 유튜브며 수소문 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드디어 넷플릭스(Netflx)에서 찾아 내고야 말았다. 2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는DVD 9개를 한개씩 차례로 보내 오는 것을 한달을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그야말로 '연속'으로 다 봤다. 그 때는 ‘미국’이기만 했던 극의 배경이 바로 뉴욕이었다.
집에서 한 두시간 북쪽에 있는 어느 마을과 맨해튼이 이 극의 무대다. 쥴리가 오디션을 보는 곳은 브로드웨이 42가, 쥴리를 찾으러 온 루디는 이스트 사이드의 허름한 거리를 헤메고, 깡패가 된 탐이 숨어 있던 싸구려 호텔은 웨스트 사이드 30가 쯤이다. 내가 좋아하는 알로 가스리(Arlo Guthrie)가 노래 부르던 카페가 있는 곳은 그리니치 빌리지이다.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선망의 눈으로 보던 드라마 장면 하나 하나가 지금 나의 삶의 현장인 것이다. 내친 김에 '형사 콜롬보'도 다시 봤다. 요즘 같으면 피가 낭자했을 장면에도 단순히 '억'하고 사람이 쓰러지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스릴과 서스팬스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몇 번 가봤던 로스엔젤레스의 60년대가 에피소드 하나마다 파노라마로 그려진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들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것은 그 때와 마찬가지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열심히 보고 있는 TV극은 얼마 전에 끝이 난 매드 맨(Mas Man) 이다. 이 역시도 60년대 70년대 맨해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색다른 감회를 준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벌어지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 보다 배우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더 친근하다. 한 회가 끝나면 다음 회를 여는 재미가 솔솔하다. 볼 시간도 많고 보는 시간이 아깝지도 않다.
인생은 하나의 극이다. 4막 연극이 아니라, 기승전결이 없이 지속되는 TV 드라마다. 지금 이시간을 내가 나의 드라마를 만드는 중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리치 맨 푸어 맨, 매드 맨 처럼 끝나는 순간까지 마음을 사로 잡는 드라마 말이다. 그러나 결론을 아직 생각해 내지 못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결론도 달라질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결론 없이 쓰여지는 내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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