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16, 2015

내 이름

내 이름 노려
'무슨 이름으로 할까.' 부르기 쉽고 예쁘고 뜻도 좋은 이름을 하나 만들어 보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년이 시작할 때마다 내 이름이 쉽게 넘어 가질 않았다. 김씨부터 차례로 출석을 부르던 선생님이 잠시 뜸을 드리면 내 차례인 줄을 안다.  '노오---'  우선 눈을 들어 아이들을 바라보고 나서 선생님은 다시 출석부를 내려다 보며 '려-어?' 하신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누가 노려인가를 찾으신다.  ‘네에.’ 손을 반쯤 올린 나를 확인하고는 혼자말 처럼  “노오, 려!” 하신다.  첫 시간에 이름 때문에 선생님과 눈을 마추지며 중 고등학교를 지냈고, 대학 때에는 그 흔한 대리 출석 한 번 못해 봤다.
내가 나를 소개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제 이름은요......" 나 역시도 잠시 뜸을 드리고나서 또박또박  "노오~ . 려어~ 예요.  성이 노오구요, 이름은 려어. 고구려할 때 려에요." 한다. 모두들 '아하!' 한다. 이어령 씨의 령자는 실은 영자인데 발음 땜에 령이 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나의 려자는 '여수'처럼 ‘여’라고 읽어야하지만 누구도 나를  ‘여 여’ '여 씨'라고도 부르질 않고 성을 붙여서 노려야,  노려씨로 부른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노려 라는 이름을누가 지어 줬냐는 것이다.  그럴듯한 사연이 있을만 한 ‘려’자는 어머니가  좋아 하던 중국 여배우 리리화(李麗華)에서 ‘려’자를 따왔다고 한다. 려자 하나로는 이쁘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성을 전혀 고려하지를 않았기에 이렇게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이름이 된 것이다. 미국 간 친구가  <노려 귀하, 성북구 정능동>이라고만 적어 보낸  편지를 우체부 아저씨가 전해 준 일은 어머니의 자식 자랑 중에 하나이다.
이름으로 덕을 보기도 한다. 여학교 때 신발 주머니, 앞 치마, 덫신에 이름을 수 놓을 때에 가장 큰 덕을 봤다.  한문 盧 麗는, 보통 이름 석자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획수인데  한글 ‘노려’는 직선 몇 개면 된다. 내 이름을 말할 때 아예 ‘짜려 봐, 뭘 노려’ 가 별명이라고 이실직고하고 나면 처음 만난 사람하고도 무장해제가 되어 좋다.
미국에 와서는 ‘려(RYO)’라는 나의 영어 이름에  남편의  성 계(KEH)가 붙어서 더 문제다.  Ryo Keh ! 보기에는 간단해도 미국 사람이 ‘롸이여 케이~’ 소리쳐도 나는 멍청하게 앉아 있곤 한다. 미국에 오자마자 친구가  미국 이름 하나 만들라고 권했들 때 공연히 자존심을 부렸나 후회도 했다.  ‘계려’가  '노려'보다 더 이상해서 나는  여자들이 남편 성을 쓰는 미국에서나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있다.
처음 이름을 바꾸려도 시도 했던 건 블로그를 만들 때였다. 그러나 암만 생각해 봐도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해 포기했었다.  얼마 전, 이번에는 필명을 하나 가져볼까 해서 또 내 이름을 들먹였다. 그러나 또 막막했다. 누구한테  부탁을 해 볼까도 했다. 남편은 그냥 봐도 내 이름은 꼭 필명처럼 보인다고 했다.  채운 彩雲이라는 호를 갖고 있는 어머니에게 ‘ 나도 호를 하나 지을까.’ 했더니, 차분한 어조로  ' 뭐라고 짓더라도 <려>의 뜻을 떠나지는 말아라' 하신다.
얼마든지 내 맘대로 해도 될텐데 내가 갖고 싶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이름을 찾지 못했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이름 ?  노려보고 째려본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보면 차라리 ‘노려’가 더 가까운 듯 했다. 뭐든지 노려보면서 살아 온 기분이다. 이름이 남 다르다는 것 때문에 어쩌면 공연히 나는 남과는 좀 달라야 된다고 생각하고 눈에 힘을 주고 살아 왔을 수도 있다.
자기 이름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는 언제인가? 한 평생 나를 대변 해 준 그 이름에는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이제와서 ‘노려’로 살아 온 세월을 부인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려보지만 말고, 어머니가 “ 노려야. 생각해봐라. 아름다울 려, 고울 려…... 얼마나 뜻이 좋으니" 하신 려의 뜻을 살려봐야 하지 않을까. 고구려나 고려까지 멀리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남해로 수학 여행 갔을 때 흠뻑 반했던 야생 동백 꽃으로 덮였던 여수麗水의 고운 물결이 생각난다. 내 이름을 바꿔보려는 생각은 고히 접었다. 
요즈음은 미국인들에게,  리오 데자네이로 Rio de Janeiro의 ‘리오’라고 하면  “오우. 뤼오 ! “하면서 좋아들 한다. 발음 편리상 이용한 '리오 데 자네이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뿐인가. 노려는 브라질 이름  누리엘과 비슷하다. 누리엘의 뜻은 빛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름은 겉 모습일 뿐. 그 속에 담기는 삶은 내가 만들기에 달린거다. 곱고 아름다운 빛 노려! 앞으로는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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