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31, 2015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수박은 어디에서 싹이 튼 것일까? 
씨가 없는데 어떻게 씨를 받아서 땅에다 심었을까? 생물시간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꽃과 식물에는 씨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모래알 보다 작은 양귀비 씨에서부터 아보카도 처럼 크고 둥근 씨까지 지구 상의 모든 식물에는 온갖 모양의 씨가 있다. 씨 없는 수박도 잘라 보면 되다 만 작고 물렁한 하얀 씨가 몇 개는 들어 있고 씨가 있어야 할 자리에 흔적이 남아 있다. 어떻게 해서 씨 없는 과일이 생겼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 여름 방학 그림 일기장에 자주 등장한 것이 수박이다. 도화지에 꽉 차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을 빨간색 크레용으로 칠한 다음에 듬성 듬성 까만 씨를 그려 넣으면 영낙없이 달고 시원한 수박이 된다. 그 밑에다  ‘오늘은 수박을 먹었다. 참 맛이 있었다.’만 써 넣으면 밀린 숙제가 쉽게 채워지곤 했다. 
뱉어 낸 수박 씨는 씻어서 말려 놓는다. 입에 넣으면 매끄러워 지는 씨를 어렵게 이로 까서 먹던 고소한 수박 씨는 빼 놓을 수 없는 여름철 군겆질이다.
언제부터인가 수박을 잘랐을 때 씨가 꽉 차있으면, '에이구 잘 못 샀네 .'한다.  포도도 마찬가지다. 씨를 빼 내기가 귀찮아 진 소비자의 심정을 어느 생물학자가 그렇게 잘 파악을 했을까. 포도알에서 씨가 씹히면 짜증을 낸다. 만약 바나나를 한 입 깨물 때마다 씨가 씹힌다면, 그래서 줄줄이 박혀있는 씨를 일일히 골라 내어야 한다면 그것을 견뎌 낼 사람이 있을까? ‘맛있으면 바나나.‘ 역시도 원래는 씨가 있었다고 한다.  
한약제로 행인杏仁이라고 하는 살구 씨의 인仁자에는 인자함이라는 뜻과 함께 새롭게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우리가 누구에게든지 인자함을 베풀 때 그 원인을 따져 보면 긍국적으로는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에 다다른다. 
생명은 씨에서 비롯된다. 씨를 인자한 마음으로 보호해야 새롭게 생명이 탄생된다. 그 씨를 귀찮다고 없애 버리면 그 옛날 궁궐의 내시와 뭐가 다를까. 그러니까 씨 없는 과일은 불구 과일이다. 씨가 없는 과일을 선택하는 것은 인자함이 결여된 나의 탐욕이라고 비약해 본다. 유전인자를 변형시켜 가며 만들어 낸 음식물이 우리 몸에 해롭다라는 연구가 이미 나오고 있다.
건강하게 살려면 ‘어머니의 할머니가 알아 보지 못하는 음식은 먹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내 어린시절에 없었던 식품은 멀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수박을 살 때는 꼭 삼각형으로 껍질을 잘라 보고 빨간 색을 확인하고야 샀었다. 색이 빨갛다는 것은 잘 익었다는 것이고 잘 익었으니 달다는 걸 안다. 요즈음은 수박 뿐아니라 마켓에 나온 과일은 다 잘 익었고 달다. 꼭 설탕을 친 것 처럼 단 것도 있다. 이것 역시 어느 과학자가 씨에다 무슨 조치를 취했을 것이 틀림 없다.  보라색 고구마, 노란색 토마토 처럼 먹거리가 가지 각색으로 변하고 있다. 
태초로 부터 이어져 오는 씨가 몇 만년을 지내며 자연스럽게 바뀌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초적 입 맛과 눈 요기를 위해 억지로 조작해 만들어낸 식물들이다. 
최근에 온 세계가 ‘자연,자연’ 하는 그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손이 개입되지 않은 자연스런 Natural한 상태가 자연Nature인 것이다. 사람이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의 정 반대이다. 억지로 만든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우리들은 억지스럽고 부자연 스러운 것에 아무런 저항감을 갖지 않은다. 오히려 그런 것을 더 좋아한다.
씨 없는 포도를 집으려던 손을  멈춘다. 자로 잰듯이 똑 같은 크기의 과일 패키지에도 의심의 눈 길을 보낸다. 좀 구브러지고 못 생겼더라도 가까운 농장에서 키운 호박과 오이를 사야겠다. 
씨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수박을 살 것이다. ‘오늘은 씨 있는 수박을 사왔다. 참 맛이 있었다.’ 어린시절의 그림 일기를 살짝 고쳐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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