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팬팔 소년
제주도 남학생이랑 팬팔을 한 적이 있다.
여학생들이 백마 타고 오실 왕자님을 기다리던 그 시절, 팬팔은 선남 선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넷트워크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팬팔을 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 경관으로 뽑히기위해서라면 한
줄이나마 거들어 보려는 애국심으로, 얼핏 떠오른 것은 제주도에 출장갈 챤스를 포기했던 일이다. 그걸 쓰려고 했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 클릭해 놓은 하얀
백지를 마주하는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그 팬팔 사건이 생각났다. 비밀을 들킨 것 처럼 흠칠 놀랐다.
나의 꽃다운 청춘을 바쳤던 '조경공사'시절 출장이야기가 아니라, 10대 어린시절의 팬팔이라니... 하긴 매일 야근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산과 들과 강과 바다를 샅샅이 뒤 엎고 개발하던 이야기보다는 팬팔이야기가 더 좋을 것도 같다.
분명 용돈을 애껴 사보던 ‘학원’ 잡지에서 그 주소를
찾았을 것이다. 아마도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진명여중 1학년 여학생이예요.' 써서 보냈을 것이다. 당연히 한 두번 편지가 오고 갔을 것이고 곧 이어서 편지 속에 동봉해 온 모자 쓴 남학생의 흑백 사진! 얌전한 그 인상이 가물가물하면서도 선명하다. 그런데 그 뿐이다. 사진을 보내 온 남학생 이외에 아무런 감정이 따라 오질 않는다. 확실한 건 사진을 받고 난 후 그 팬팔이 끝이 난것이다.
지금이라도 타이타닉 선박의 그 곱상하게 늙은 할머니 처럼 뭔가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좀 엮어보려 해도 안돼는걸 보니 그야말로 어린시절 한 순간 소꼽놀이도 아니었던가 보다. 제주도 남학생이 성급하게 사진만 보내오질 않았어도 어쩌면 편지가 좀 더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타이타닉 선박의 그 곱상하게 늙은 할머니 처럼 뭔가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좀 엮어보려 해도 안돼는걸 보니 그야말로 어린시절 한 순간 소꼽놀이도 아니었던가 보다. 제주도 남학생이 성급하게 사진만 보내오질 않았어도 어쩌면 편지가 좀 더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왜 그 남자애는
그렇게 급했을까? 왜 자기 사진을 보냈을까. 자기 얼굴에 자신이 있었나 보다. 아니면 얼마나 육지와 연결이 되고 싶었길레 그랬을까.
아, 그러나 나는 사진을 받고는 편지를 끊어 버렸다. 꼬제제한 남학생의 모습에서 기분이 상해 버렸을거다. 그 다음 보내는 답장 속에 은근슬쩍 내 사진도 보냈었으면 지금쯤 타이나틱은 아니라도 한 보따리 쯤은 풀어낼 말이 있을텐데.
아, 그러나 나는 사진을 받고는 편지를 끊어 버렸다. 꼬제제한 남학생의 모습에서 기분이 상해 버렸을거다. 그 다음 보내는 답장 속에 은근슬쩍 내 사진도 보냈었으면 지금쯤 타이나틱은 아니라도 한 보따리 쯤은 풀어낼 말이 있을텐데.
21세라는 나이로 들어간 회사에서 나는 설악산, 무주구천동 같은 국립공원에 벤치와 가로등을 디자인하고, 경주 보문단지다 대전의 대덕 과학공단이다 종횡무진하며 일을 했다. 건설부에서 시찰이 나오면
뿌리 없는 나무를 꽂아 놓는 한이 있더라도 날짜를 맞추느라 야근을 해야 했다. 제주도 중문단지팀에 들어 갔을 무렵 대학원을 졸업했고,
1당 백을 하던 일에 지쳤던 나는 제주도
출장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 두었다. “미쓰 노, 제주도 출장을 다녀와서 사표 내도 될텐데.” 하는 동료의 말에 ‘뭐 제주도야 아무래도 가게 될텐데요.” 였다. 즉 신혼여행말이다.
그 후 한참 만에 뉴욕에서 결혼을 했기에 제주도는 이루어지지 못한 먼 섬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 애들 어릴 때 즐겨 불러 주던 자장가가 바로 '섬마을 아기'였다.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아기를 두드리며 '스르르 잠이 듭니다'를 반복해서 부르곤 했다.
그 후 한참 만에 뉴욕에서 결혼을 했기에 제주도는 이루어지지 못한 먼 섬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 애들 어릴 때 즐겨 불러 주던 자장가가 바로 '섬마을 아기'였다.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아기를 두드리며 '스르르 잠이 듭니다'를 반복해서 부르곤 했다.
굴 따러간 엄마를 그리다 잠든 제주도 아기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바다가 불러주던 자장 노래에 스르르 잠들던 그 패팔의 남자 아이는 언제나 육지로 나가고만 싶었을것이다. 그래서 용기내어 학원 잡지 팬팔 난에 이름을 써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편지가 날라왔을 때 그것이 여학생의 편지였으니……
빛 바랜 명함판 사진. 그 어린 순진한 섬 마을 남학생 얼굴을 두고 장이모 감독이라면 누구라도 아련히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 하며 가슴 뭉클할 장면을 연출했겠지? 공지영 씨라면 속절없이 속을 태울 소설을 썼을테지. '시' 영화를 만든 이창동 감독이라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평범한 얼굴들로 마음을 저며내는 영화한편 만들었으리라.
빛 바랜 명함판 사진. 그 어린 순진한 섬 마을 남학생 얼굴을 두고 장이모 감독이라면 누구라도 아련히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 하며 가슴 뭉클할 장면을 연출했겠지? 공지영 씨라면 속절없이 속을 태울 소설을 썼을테지. '시' 영화를 만든 이창동 감독이라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평범한 얼굴들로 마음을 저며내는 영화한편 만들었으리라.
파도소리에 잠 들던 그 팬팔 소년이 끝끝내는 중문 어느 멋진 호텔 주인이
되어 있다면? 수줍은 표정을 간직한
호텔 왕 백만장자. 누군가와 우연히 오고 가던 말이 이어져서 결국 둘이는 만난다. ‘꿈에 그리던 서울 여학생'을 만난 은발의 팬팔 소년. 곱게 늙은 여학생. 그때 부터 뉴욕과 제주도를 오가는 이메일이 시작된다면? 소설을 써 보려다가 만다.
아니다. 그 시시한 팬팔은 아무리 애국심에서라도 애써 엮어 볼 일은 아니다.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탄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 길을 달려 옵니다."의 모성이 아이들을 집에 두고 회사를 다녔던 내게는 더 가깝다.
이제라도 남편이랑 구혼여행으로 세계 7대 경관 제주도에 가서 30년 넘게 살아 낸 서로를 도닥거려 주고 싶다.
(2011년 세계 자연보호지역
선정을 위한 캠페인)
이제라도 남편이랑 구혼여행으로 세계 7대 경관 제주도에 가서 30년 넘게 살아 낸 서로를 도닥거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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