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아버지가 나오는 영화

아버지가 나오는 영화


아버지가 나오는 영화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희련 엄마 아버지가 나오시는 영화가 있던데요.”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무슨 소리인가 했다.
내 주변에는 간혹 나의 아버지 영화배우 노능걸을 기억하는 나이 든 분들이 있다. 어쩌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아버지가 배우는 아니라는 걸 설명하느라 얘기가 길어 진다. 
아버지는 일본 우에노 미술학교에 유학을 하시고 평양 국립극장 미술감독을 하셨다. 6.25 때는 연극하는 사람들과 같이 부산으로 피난 가서 라디오 방송으로 홈 드라마를 쓰셨으며 '판자촌'으로 극작가로 데뷰하시고 1953년에 쓰신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이 김승호가 나오는 영화로 만들어져 대종상 후보까지 올라갔다. 
영화감독에다가 제작까지 하신 그 와중에 아버지가 영화배우를 한건 잠깐이고 동아 방송의 ‘오늘도 푸른하늘’ KBS의 '즐거운 우리집' 동양 방송의  '아차부인 재치부인’이런 홈 드라마들을 쓰셨기 때문에 그나마 먹고 살았다고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아버지가 영화배우였다는 것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았다. 연예계를 ‘화류계’라 부르던  그 시대에 아버지가 영화배우라는 것은 어머니의 물적 심적 고생을 말한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겐 부담이었다.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이트를 받아 적었다. 까마득한 그 옛날에 아버지가 출연하셨던 영화가 있다니. 집에 오자마자 옷도 안 벗고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판기를 두드리는 손이 떨렸다.
내가 한 대여섯살 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나오는 '장미의 곡'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의 아역 배우에게 묘한 질투를 느꼈기 때문에 기억이 생생하다. 예쁘게 생긴 여자 애가 ‘아버지~' 뛰어 오자  내 아버지가 그 애를 덜썩 안아 준다. 그 후로 전영선이라는 배우를 공현히 미워했었다.
웹 싸이트에 작은 글씨로 빼꼭한 리스트 중에서 <1956년, 서울의 휴일, 노능걸 주연.>을 보자 벌써 가슴이 멍해진다. 마치 다이나마이트 단추나 누르듯 숨을 죽이며 클릭을 한다. 한 뼘이 안돼는 유튜브 화면에 찌지직 음악이 흐르며 한문으로 쓰인 영화 배급사 이름이 나타나고 곧장 잠옷을 입은 내 아버지가 나온다. '아빠.'
세상에...... 내 아버지의   젊디 젊은 얼굴.  숨을 죽인 채 앉은 자리에서 영화를 다 봤다. The End 영어 자막을 보고 정신을 차리고 유튜브 링크를 복사했다. 동생들에게 '얘들아 아빠나오는 영화다.' ,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얘들아 할아버지 나오는 영화다.' 며 링크를 보내고 나서야 코트를 벗었다.
그 날 밤  남편과 나는 17인치 컴퓨터 스크린 앞에서 와인을 마시며 정식으로 시사회를 열었다. 더빙된 성우의 목소리로 말을 하는 내 아버지는 가끔은 얼굴을 찡그리고 가끔은 싱긋 웃으며, 일요일에도 서울 거리를 동분서주하는 민완기자 노릇을 한다. 1956년도 서울. 파고다 공원, 남대문 거리와 중앙청 앞 그리고 유유히 뱃노리하는 한강 풍경이 과거에서 날라온 그림엽서 같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월등히 키가 크신 멋쟁이 아버지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아빠, 뉴욕에 한번 오시지도 못하고...'
썬 글래스를 끼시고 거리에 나서면 모두들 힐끗 쳐다보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활보하던 내 어린 시절도 이제는 흘러간 흑백영화다. 첫 딸인 나를 어디나 데리고 다니셨다. 아버지랑 지프차를 타고 집에 오던 밤, 자동차 해드라이트에 히끗 히끗 비치던 눈 발이 이상하리 마치 선명히 기억난다.
내가 미국 오던 날 내가 탄 택시가 떠나자 손으로 눈을 쓱 흠치시더라고 엄마는 말했다. 아버지를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다.  뉴욕에 와 처음으로  브로드웨이를 가 봤을 때에 "아빠가 와 보면 좋아하시겠다."했었다. 첫 아이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짧은 생애를 사신 아버지에 대해서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예술가라고 애써 생각한다. 자기 생긴대로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사신 것이 부럽다. 우리를 고생시킨 것에 대한 원망은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유튜브에 코멘트를 올렸다.  < 이 영화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영화입니다. 왜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의 아버지입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4살 때 영화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 유튜브를 열어보니 답이 와 있었다. <훌륭한 배우이신 아버지에 대한 귀중한 추억을 함께 해주시 영광입니다. Reply : I'm so honored to see you. And thank you for sharing your priceless  memories of this great entertainer with us. >
그림을 하시고 글을 쓰신 아버지의 피가 내 아이들에게까지 진하게 흐르고 있다. 영화속의 아버지에게 생전에 단 한번도 못해드린 말을 한다. ‘아빠. 고와워요.’

No comments:

Post a Comment

2011년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문인극 대본/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등장인물 :   앙드레 지드, 나레이터, 시인 1, 2, 3, 4, 5, 6 …가수, 무용수 장면 :   거리의 카페 …테이블, 의자, 가로등… 정원 ….꽃, 화분, 벤치  숲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