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여인
참 이상해요. 뻔히 알면서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하고 그냥 이중생활을 하게 되더라구요. A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긴 터널을 뚥고 나왔다’고 표현했다. 그 터널은 A의 종교였다.
우연한 기회로 두 세번 만나본 A는 나에게 책 한권을 빌려 주면서 가깝게 다가왔다. 첫 인상이 웬지 여학교 때 친했던 친구를 생각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가까스로 지각을 면하며 교실 뒷문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밤새 읽은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앞 자리에서부터 내게 달려 오던 정열적인 친구다. 각각 다른 대학엘 들어간 첫해 여름 방학에 해변에 같이 놀러갔을 때 그애는 거기서 만난 남학생이랑 연애를 하고 대학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자연히 나와는 멀어져 버렸지만, 아직 이 친구의 흔적은 강하게 남아 있다.
우연한 기회로 두 세번 만나본 A는 나에게 책 한권을 빌려 주면서 가깝게 다가왔다. 첫 인상이 웬지 여학교 때 친했던 친구를 생각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가까스로 지각을 면하며 교실 뒷문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밤새 읽은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앞 자리에서부터 내게 달려 오던 정열적인 친구다. 각각 다른 대학엘 들어간 첫해 여름 방학에 해변에 같이 놀러갔을 때 그애는 거기서 만난 남학생이랑 연애를 하고 대학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자연히 나와는 멀어져 버렸지만, 아직 이 친구의 흔적은 강하게 남아 있다.
A 가 보라고 준 책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 '지금 이대로가 좋다. 그냥 그대로 편하게 살라'는 내용이었다. 내 맘에 들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호감이 갔다. 어느 교회를 오래 다니다가 고민 끝에 나왔다는 A와는 ‘진리가 뭔가’ ‘ 신이 뭔가’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러웠다. '정치얘기와 종교얘기는 될 수록 피하는게 좋다.'라는 생각 때문인지 내 주변 사람들과 마음 놓고 쉽게 나눌수 없는 대화이다. 그래서 A씨와의 만남은 재미있었다.
‘아아, 그러시군요.” ”네에, 그렇지요.’ 진지한 A씨에게 나도 모르게 간증처럼 나의 인생관을 늘어 놓기도 했다. 매사에 덤벙 뛰어 들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녀가 겪었다는 종교적 고통을 시시콜콜 물어 보지 않았다. A 씨도 자기이 과거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좁다. A가 다녔다는 교회가 이단이라고 하는 종교단체였다는 것을 남을 통해 들었다. 분명히 A는 자신이 교회에 혼신을 다했었다고 말 했었다. 그리고는 우울증에 걸렸고 답을 얻으려고 사방을 헤매다가 한국에 가서 비로서 내게 빌려줬던 그 책의 저자를 만나, <이대로가 좋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었다.
그 다음번 만났을 때 ‘OOO 라는 곳의 교인이셨다면서요?’ 라고 물어봤다. 그녀는 숨겨둔 비밀이 밝혀진 것에 너무 놀라서 오히려 아무런 표정도 할수 없는것 처럼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며 서서히 고개를 끄덕했다. 괜히 말했나 싶었다. 이제는 그런걸 다 겪어내고 도가 튼 사람이려니 했는데, 굳을대로 굳어진 그 얼굴을 바라보기가 미안했다. 털 빠진 채 길가에 떨어져 비를 맞고 있는 참새가 연상이 되었다. 너무도 나약해보였다, 낚시 밥을 스스로 입에 물어 버린 소설 속의 여주인공같았다.
잠시 아무 말도 않던 그녀는 ‘ 그동안 아주 길고 긴 깜깜한 터널을 지나온 것 같아요.’라며 자기모순의 정신적 고통을 털어 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 교회에는 이게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말을 못하고 그대로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속속들이 가식으로 꾸며진 것을 훤히 알면서도 앞서서 벌거벗은 임금님 옷이 근사하다고 아우성을 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기 얼굴에 가면을 쓰고 말이다.
그 다음번 만났을 때 ‘OOO 라는 곳의 교인이셨다면서요?’ 라고 물어봤다. 그녀는 숨겨둔 비밀이 밝혀진 것에 너무 놀라서 오히려 아무런 표정도 할수 없는것 처럼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며 서서히 고개를 끄덕했다. 괜히 말했나 싶었다. 이제는 그런걸 다 겪어내고 도가 튼 사람이려니 했는데, 굳을대로 굳어진 그 얼굴을 바라보기가 미안했다. 털 빠진 채 길가에 떨어져 비를 맞고 있는 참새가 연상이 되었다. 너무도 나약해보였다, 낚시 밥을 스스로 입에 물어 버린 소설 속의 여주인공같았다.
잠시 아무 말도 않던 그녀는 ‘ 그동안 아주 길고 긴 깜깜한 터널을 지나온 것 같아요.’라며 자기모순의 정신적 고통을 털어 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 교회에는 이게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말을 못하고 그대로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속속들이 가식으로 꾸며진 것을 훤히 알면서도 앞서서 벌거벗은 임금님 옷이 근사하다고 아우성을 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기 얼굴에 가면을 쓰고 말이다.
순진무구했던 A는 "야, 저것봐라. 임금님이 벌거 벗었다아~." 외친 어리 소년이 된 것이다. 그러자니, 그 군중들 앞에서 털도 뽑혔으리라. 그 아픔들을 진리 추구의 정열로 버텨냈는가 보다. 이 점 마저도 여학생들의 참새같은 수다보다는 어려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던 사춘기 시절의 내 친구와 비슷했다.
그 여학교 때 친구가 독실한 불교신자가 된 것을 40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좁은 세상임을 느끼며, 불교 열성신자인 외사춘을 통해서 그 친구와 국제 전화로 연결이 되었다. ‘언제 한번 만나야지’ 환갑이 다 된 친구의 목소리에서 커다란 눈에 꼭 다문 입을 한 자그마한 체구의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구나. 그 열정으로 어느 절의 보살님이 되었구나 했다.
‘진리가 바로 내 안에 있으며, 지금 이 대로에 만족하고 더 이상은 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를 터득했다는 어느 날 이 동네 개척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 녀을 알게 된 지 한 반년 쯤 후였다. 그러더니 또 한 반년 후엔 권사 안수를 받았다고 했다. 대화의상대가 없어진 때문인가 왜 A에게 실망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실망스러웠다. 또 한번이 실망은 그 후로 1년도 못 되어서 왔다. 장로님과의 갈등으로 목사님이랑 함께 그 교회를 나왔다는 것이다. 아하. 열정이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돼는 정열이다.
하긴 예수님이 얼마나 인간들의 생각을 바꿔보고자 열성(zealot)으로 사셨나. 석가모니는 말 할 것도 없고. 열성이 없는 나같은 중생은 렇게 뜨뜨미즈근 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또 다시 그 습하고 어두운 터널을 걸어서 나올 A와 차를 마시면서 진리가 뭔지 인간이 뭔지 하나님 뭔지 왜 사는 건지에 대해서 답이 없는 이야기를 나눠 보고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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