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친정 엄마와 봄

친정 어머니의 봄


88세인 어머니가 동창회지에 '춘 삼월이 되면 영낙없이 마당에 봄이 찾아 오는데, 왜 인간의 봄은 한번 가면 아니 오는가.'라고 쓰셨다고 한다.
춘 삼월 타령을 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간절하게 봄을 기다렸던 적이있다. 집 앞의 샛노랑 개나리와 건너 집 마당에 하얀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기까지 그 해의 봄은 어렵게도 찾아 왔었다.
'솔솔 부는 봄 바람 쌓인 눈 녹이고, 잔디 밭에 새싹이 파릇파릇 나고요....' 새 학기를 맞이 할 때마다 가슴 들뜨게 하던 고향의 봄은 까마득히 먼 이야기다. 그 때는 꽃 샘 추위조차 화사하기만 했다.
폭설과 영하의 추위에 움추리고 살다 보면 뉴욕의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와 있었고, 금방 더워지곤 하니까 봄을 느끼기도 전에 여름으로 껑충 뛰곤 했다. 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던 그해 아무래도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은 햇빛 한 줄기, 파릇한 잎사귀 하나, 방싯 벌어지는 꽃 봉오리 한 잎을 셀 만큼 안타깝게 다가 왔었다.
1층 아파트 뒷 마당에 씨 뿌려 놓고 오시겠다는 것을, 이왕 올 건데 좀 빨리 오라고 재촉하여 2월에 오신 친정 어머니는 도착한 다음 날부터 봄을 기다리셨다. 
포근한 겨울 날씨였지만 그래도 어서 명실공히 3월이 오기를 기다리셨고, 3월이 되었는데 자꾸 눈이 내리자, 언제 진짜 봄이 오냐고 투정을 하셨다. 하루 이틀 햇빛이 나면 성급히 화분들을 내다 놓고는, 서리가 내릴 듯한 밤이면 다시 그 화분을 다 들여다 놓기를 반복하신다.
4월이 되어도 차갑기만 한 날씨에는 지금이면 대동강 물도 녹을 때가 지났다며 ’어서 씨를 뿌려야 하는데....’ 매일 아침마다 출근 하는 나를 붙들고 마치 농사꾼처럼 씨를 못 뿌려 안달을 하신다. 아이들을 봐 주는 덕에 직장을 다니는 처지라, 어머니의 걱정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아침이면 제일 먼저 밖을 내다 보며 "오늘은 기온이 좀 올라가려나. 아, 정말 왜 이렇게 봄이 안오지?” 봄을 기다린다.
아침 햇빛에 포근함이 느껴지는 날이면 "엄마 걱정 마, 오늘은 날이 따듯할꺼래. 이거봐, 정말 봄 날씨네!" 기분을 올려 드리지만, 다음 날은 또 쌀쌀해진다. 오히려 어머니가 "야, 걱정마라. 나 이제 봄 안기다리기로 했어. 올 때가 되면 안 오리?" 나를 위로해 주신다.
매일 조심스레 날씨를 살피다 보니, 땅 위로 바늘 끝 만큼  삐죽이 나온 풀 잎도 발견하고, 마른 가지에 엷게 물이 오르는 기미도 알아 챌 수 있었다. 그 다음 날이면 초록 빛이 조금 더 진해져 있는 것도 감지한다. 
어느 날 일 끝나고 집에 와보니 부추전이 상에 올랐다. 한 뼘 쯤 자란 부추를 자르신거다. 입 안에 퍼지는 부추 향에 ‘그래 봄이 오긴 왔나 보다.’마음이 녹는다.
드디어 마당 일로 바쁘신 어머니의 봄 타령이 없어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우리 어머니에게 찾아 와 준 것이 감사하기만 했다. 농부의 마음이 아니라 '소녀의 마음을 꼭 붙들고 사는 우리 엄마가 행복 할 수 있도록 봄이 빨리 오게 해주세요'.했던 내 기도가 들어진 것이다.
그 때 처럼 간절하게 기다리는 봄은 아니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봄이 늦는 것 같다. 부활절이면 의례히 돋아나 꽃을 피우던 히아신스도 겨우 입사기만 삐죽이 올라와 있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니 '너희 집 마당 눈이 이제는 녺았겠지' 하시며 '이 세상의 봄은 오고 오고 또 계속해서 오는데 우리 사람의 봄은 한번 가면 안 온다'고 또 봄 타령을 하신다. 
101주년 총동창회에서 교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반주를 하신 어머니에게 내년 봄은 쉽게 찾아와 주기를 소원해본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2011년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문인극 대본/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등장인물 :   앙드레 지드, 나레이터, 시인 1, 2, 3, 4, 5, 6 …가수, 무용수 장면 :   거리의 카페 …테이블, 의자, 가로등… 정원 ….꽃, 화분, 벤치  숲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