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7, 2015

뛰는 인생

그랜드 센트럴 대합실에서 달리기


개찰구 18번은 ‘마이클 죠단 그릴’에서부터 대합실을 가로 질러 간 끝에 있다.
몇 시 차냐고 물어 보는 딸에게 나는 자신있게, ‘시간 많아.’ 했다. 셀 폰을 열어 보니 8시 50분이다. “ 여기 1분이 얼마나 긴지 알아?  엄마가 니네들 어릴 때, 기차 시간 몇 초를 남겨 놓고 막 뛰었었기 때문에 잘 알아.” 했다. 9시까지는 긴 시간인 것이다.


방학 때 기차를 타고 인턴을 다녔었던 아들이 1분의 귀함을 아는지, “ 아이 노우.” 한다. 아이들과 모처럼 만났지만 집에 혼자 있는 남편을 생각해서 9시 기차는 꼭 타려고 했다. 층계 위에 자리잡고 있는 마이클 죠단그릴에서 대합실을 내려다 본다. 바글바글 사방에서 모였다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감회에 젖는다.


‘오케이. 가자.’ 계산서를 놓으며 시계 탑을 보았다. “어머나!” 큰 바늘이 12시 가까히 가 있었다. 딸애가 한국 말로 “뛰자!” 하더니 내 팔을 부여 잡고 후닥닥 층계를 뛰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이구, 아이구 희련아... ' 뒤뚱거리는데 웃음이 터진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는 딸도 소리 내어 웃는다.  25, 24, 23...개찰구 번호가 가까워지자 이번엔 내 발이 딸보다 더 빨라 졌다. 개찰구 18번이다.  이번엔 내가 딸의 손을 뿌리치며 뒤도 안 돌아보고 개찰구 안으로 뛰어 들어 기차를 향해 돌진한다. 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역장과 눈이 마주친다. 휴,일단 안심이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덜컹하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털석 앉아 숨을 고를 때 까지도 내 얼굴에는 웃음이 남아 있었다.


그랜드 센트럴 대합실에서 뛰는 것은 나의 전문 특기였다. 결혼 초, 32가에 있던 신문사에서 퇴근해 42가 그랜드 센트럴에서 기차를 타고 오면 동네 역에서  남편이 기다리던 그 때부터 나는 기차시간 따라 뛰곤 했다. 다섯살 세살 두 아이를 두고 다시 신문사 일을 할 때는 명실공히 '뛰는 인생'이었다. 플러싱에서 전철 하나를 놓치면 그랜드 센트럴에서 기차를 하나 놏치는 것이고, 그러면 아이들이 학교 마당에서 울고 서있게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개찰구로 뛰어 드는 순간 눈 앞에  미끄러지듯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아이를 봐 주시러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교대로 와 계셨지만 뛰는 달리기 인생은 계속되었다.  셔틀 버스를 타고 집 앞에 내리면 어둑 할 때까지 마당에서 놀다가 버스 소리에 골목 길을 달려와 매달리는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기차를 놏치지 않으려고 분초를 다투며 뛰곤 했다.
직장을 그만 둔 후에도 맨해튼을 갈 때면 나의 교통 수단은 메트로 노스 기차다. 한 친구는 뉴욕에 오면 내 편리를 위해 그랜드 센트럴 바로 옆 하이야트 호텔에 묵곤 했다. 친구랑 실컷 이야기하다가 기차 시간 직전에 호텔을 나와서는 역시 또 그 넓은 대합실을 뛰곤 했다.

세월 만큼  그랜드 센트럴도 많이 변했다. 애들에게 빵을 사다 주던 ‘자이로스 Zairo’s’는 아직 그대로 있지만, 이제는 빵을 사갈 일이 거의 없다. 홈레스가 누워있던 자리엔 고급 가게들이 들어섰고, 길게 줄지어 서있던 공중전화도 사라졌다.  남편이 기차 역에서 기다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도착 10분 전에 셀폰으로 전화하면 되니까. 기차를 놏쳐도  다음 번 기차까지 한 30분 슬슬 가게들을 구경하던지 매점에서 잡지를 보면 된다.
더 큰 변화는 이제 아예 기차를 타는 일도 드믈어 졌다는 거다.


그날은 소포로 보내도 될 작은 물건을 딸에게 전해 준다는 핑계로 기차를 탔던 것이다. 오랜 만에 얼굴을 보여주는 효도를 하려고 아들도 합세를 했다. 기차역 가까운 곳에서 저녁을 먹고는 엄마를 배웅한다고 역으로 함께 들어 온 아이들과 와인 한잔을 마신 마음이 러시 아워가 막 지난 기차역 만큼이나 평화로웠던 것도 잠시, 나는 다시 그 대합실을 요란하게 뛰었던 것이다.


숨을 고르고 있는데 셀폰이 울린다. ‘엄마, 인준이가 우리 뛰는 모양이 정말 너무 우습더래.’ 아직도 웃음이 섞인 딸의 목소리.  ‘그래. 근데 재밌었다. 그치?.’ 말은 그렇게 나오는데, 뛰던 세월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듯 얼굴 근육이 뻐근해지며 웃음이 소리없는 눈물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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