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고개
‘여보, 아까 H 마트에서 누굴 봤는 줄 알아?’
‘여자야 남자야?’
‘여자.’
‘교회 사람이야?’
‘응’
‘우리 교회? 팰함 교회? 브롱스 교회?’
"아니'
"아니'
‘그래? 으흠. 스카스데일 사는 사람이야?’
질문이 길어진다. 문제를 낸 쪽은 네 아니오 만 한다. 답을 맞추어야 하는 자는 눈을 위로 뜨며 질문 하나라도 아끼려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질문이 길어진다. 문제를 낸 쪽은 네 아니오 만 한다. 답을 맞추어야 하는 자는 눈을 위로 뜨며 질문 하나라도 아끼려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우리 동네 보다 북쪽에 살아?” “세탁소 해?” 그렇다고 한다. 누군가 짚히는 사람이 있어도 일단은 안전한 범위로 좁혀 가야 스무 번 안에 정답을 낼 수 있다. 최근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지, 최근이라는게 1년인지 6개월인지 등등 질문은 점점 디테일해지고 질문자와 답하는 자의 표정은 심각해 진다. 몇 고개 남았는지 손가락을 헤아리다가 사람 이름 몇 번 지나면 ‘ 아하. 미세즈 리구나.’ 답이 나온다.
띵.똥.땡. 긴장이 풀린다. "오늘 H 마트에서 미세즈 리 만났어.' 한 마디면 될 걸 머리를 싸메고 시간을 끌며 서로가 팽팽이 맞선다. 정답이 나오면 그 때부터 아까 미세즈 리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서부터 시작해 온갖 이야기가 벌어진다. 사실과 소문이 겹쳐진 인간 드라마다. 30년 미주 생활로 쌓여진 이야기가 미세즈 리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문다.
띵.똥.땡. 긴장이 풀린다. "오늘 H 마트에서 미세즈 리 만났어.' 한 마디면 될 걸 머리를 싸메고 시간을 끌며 서로가 팽팽이 맞선다. 정답이 나오면 그 때부터 아까 미세즈 리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서부터 시작해 온갖 이야기가 벌어진다. 사실과 소문이 겹쳐진 인간 드라마다. 30년 미주 생활로 쌓여진 이야기가 미세즈 리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남편과 나의 취미가 다른 것은 일찌기 파악을 했고, 이제는 각자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아니까 시시한 일로 다툼하는 일도 별로 없다. 저녁 때 만나면, 별일 없어? 응 별일 없어. 그리고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간혹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진보파 보수파로 갈라지니까, “알았다니까.” 적당한 선에서 말을 멈추곤 한다. 계속하다보면 극좌와 극우로 뻗어 버리기 일수 이다.
그러나 누가 먼저이든 ‘여보, 나 오늘 누구 만났게?’ 하면, 서로 눈이 반짝하며 마음이 통한다. 이름을 맞춰야 할 그 사람은 분명히 우리 두 사람의 공통 관심사인 것이다. 으흠. 잠깐만. 정색을 하며 ‘남자야 여자야?’하면서 실마리를 푼다. 그 옛날 라디오 ‘재치문답’이 시시할 정도다. 어디라구? 몇 시쯤? 혼자 있었어? 아니면 여럿이 있었어? 잘 안돌아가는 두뇌에 기름을 친다. '누구 만났게’로 시작되는 이름 맞추기 게임은 우리 부부에게 딱 맞는 오락 시간이 된 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한국 식당에 가면 꼭 한 두명 쯤 아는 사람을 만났었는데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꽉 찬 곳에서도 마치 내가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어디에서건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큰 뉴스꺼리가 되는 것이다. 어느 날 부터, 심각한 것을 싫어 하는 남편이 먼저 ‘나 오늘 누구 만났게?’를 시작했다. 글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어디 한번 맞춰봐. 당신도 아는 사람이야." 했다. " 아마 누군지 알면 깜짝 놀랄꺼야." 남편이 미끼를 던진다. “그래? 누굴까. 아, 힌트 좀 줘야지 알지. 뜬금 없이 누군 줄 알겠어. 남자야 여자야?"
요즈음은 누가 먼저이건 "나 오늘 누구 만났게'를 하면, 일단 상대방 얼굴 살피며 질문을 아낀다. 남자야 여자야? 이런 시시한 질문은 피한다. 가능한 모든 상황을 심사숙고해 본다. 머리 속으로 재빨리 우리가 아는 사람의 목록을 둘친다. 침묵이 흐르면 " 아ㅡ 빨리 말해봐." 재촉이 온다.
탐정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두 세번 고개를 넘으면 남편의 얼굴 표정에서 대충 심증을 얻는다. 하지만 남편이 실망할까 봐 몇 고개를 더 간다. ‘그 사람이 금방 당신을 알아 봤어?’ ‘당신, 그 사람보니까 반가웠어? ’‘할 말이 많았어?‘’까지 남편이 즐겁도록 빙빙돈다. 질문하는 나도 재미있다.
저녁 밥을 먹으며 미세즈 리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정말 많이 변했더라구. 뚱뚱해지고 말이야.” 대단한 일이나 되는 것 처럼 장황하다. 뿐인가 “그 집 큰 애 생각나? 방방 뛰던 애. 그 애가 변호사가 되었데. 근데 미국여자랑 결혼 했다네. ' 그 집 며누리 이야기까지 줄줄이다. '처음엔 미세즈 리가 무척 반대했다는가봐.' 그리고는 우리 애들 결혼까지 비약을 한다.
한 모금 와인에서 우리 주변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의 진한 맛이 돈다.
요즈음은 누가 먼저이건 "나 오늘 누구 만났게'를 하면, 일단 상대방 얼굴 살피며 질문을 아낀다. 남자야 여자야? 이런 시시한 질문은 피한다. 가능한 모든 상황을 심사숙고해 본다. 머리 속으로 재빨리 우리가 아는 사람의 목록을 둘친다. 침묵이 흐르면 " 아ㅡ 빨리 말해봐." 재촉이 온다.
탐정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두 세번 고개를 넘으면 남편의 얼굴 표정에서 대충 심증을 얻는다. 하지만 남편이 실망할까 봐 몇 고개를 더 간다. ‘그 사람이 금방 당신을 알아 봤어?’ ‘당신, 그 사람보니까 반가웠어? ’‘할 말이 많았어?‘’까지 남편이 즐겁도록 빙빙돈다. 질문하는 나도 재미있다.
저녁 밥을 먹으며 미세즈 리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정말 많이 변했더라구. 뚱뚱해지고 말이야.” 대단한 일이나 되는 것 처럼 장황하다. 뿐인가 “그 집 큰 애 생각나? 방방 뛰던 애. 그 애가 변호사가 되었데. 근데 미국여자랑 결혼 했다네. ' 그 집 며누리 이야기까지 줄줄이다. '처음엔 미세즈 리가 무척 반대했다는가봐.' 그리고는 우리 애들 결혼까지 비약을 한다.
한 모금 와인에서 우리 주변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의 진한 맛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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