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의사의 첫 마디가 ‘놀래지 마세요.’였다. 놀란 정도가 아니라 눈 앞이 깜깜했었다. “엑스레이에 뭐가 보이는데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실제로 다리가 휘청했던 것 같다. 의사가 전화를 할 때에는 그런식으로 하는게 아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춥네요. 저... 별 일은 아닌데, 그래도 안전을 기하려고 하는데요.'로 말을 시작 해야 할 것이다.
어쨋든 안전을 기하기 위해 6 개월 후에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보라고 했다. 전화를 내려 놓는 순간부터 나의 자세가 달라졌다. 애들이 해달라는거 다 해주며, 남편을 향한 눈 빛도 부드러워졌다. 옷장 안도 열심히 정리를 한다. 엑스레이에서 ‘별 것이 아니라’는 결과를 받고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났었다.
그 후로는 정기검진 후 전화에 의사 이름이 뜨면 긴장한다.  놀래지 마세요 하던 의사가 아닌 새 여자 의사는 다짜고짜 ‘ 네. 다 괜찮아요. 음… 보자, 다 좋아요.’ 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전화를 받고 안심을 하려고 했다. 네. 뭐, 다 좋아요. 그러더니 “ 근데….. “한다.  ‘근데’에 가슴이 또 가슴이 덜컹한다. “사실 나이 들면 그렇게 되는 건데요. 콜레스톨이 좀 높네요.” 나이 들어 그런거라니 별 수 없다 생각하려는데, 그게 좀 많이 높다는 것이다. 이어서 좋은 콜레스테롤 나쁜 콜레스테롤 숫자를 말해주고는 “괜히 운동해서 치수 낮출 생각마세요. 운동해도 잘 안돼요. 약을 시작하세요.” 한다. 올 것이 왔구나.고분고분하게 약 타러가겠다고 대답했다.
약속 시간에 가도 대기실에서 안절부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 이름을 부르면 의사 앞에 가서 앉기까지 몇 발작 걸음이 무겁다. 왜 꼭 무슨 죄를 진 사람 같은지. 그날 따라 1년 동안 운동도 잘 안했고, 고기도 줄이지 않았고 와인도 많이 마신 것이 들통이 난 듯 주춤주춤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 화면에서 내 자료를 찾던 의사가 급한 듯한 전화를 받는다. 전화내용을 안 듣는 척 고개를 돌려 이것 저것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책 상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메모지에 또박또박 쓰여져 있는 글자를 발견했다.
메모지에는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라고 적혀있다. 흔한 말이다. 그러나 의사의 책상에 알 맞는 글귀일까. 병을 고치겠다는 환자에게 의사가 할 말일까. 웃음이 나오다 만다. 하긴 맞는 소리다. 어쩌면 의사 선생님이라면 한번 쯤 생각해 볼 말이다.
내 몸이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 수가 없다. 모든 게 짐작일 뿐이다. 어디가 약간만 이상해도 오만가지 생각을 다한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가슴을 졸였다 놓았다 하기 마련이고 의사는 그런 사람들을 하루 종일 상대한다. 의사라고 해도 인간 몸속의 오묘함을 어찌 다 안단 말인가. 천년 만년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을 볼 때는 의사들도 난감 할 때가 많을 것이다. 환자에게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 아니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들 저럴까’ 이 말이 나올 만하다. 거의 끝난 목숨을 약으로 이어주기만 하는 의사보다 훨씬 훌륭하다.
콜레스테롤 처방전을 쓰고 있는 의사가 남달리 보인다. 그 역시도 인간의  생사를 주관할 수 없는 나와 똑 같은 사람이다. 열심히 병을 예방하고 고치며 살지만 인간이 수명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 할머니 때 보다는 많이들 살지만 그래봤자 몇 년이다. 암만 오래 산다고들 해도 결국은 우리네 짧은 인생이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아무렇게나 살것인가. 나도 이제 부터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음식 절제도 좀 해야지 다짐하며 공손히 콜레스테롤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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