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무해쿤네턱 강


전혀 의심을 해 본 적이 없는 사실 하나가 어이없이 깨어져 버렸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고, 해는 동쪽에서 뜬다’라는 명백한 사실도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어떻게 내 머리 속에 그 토록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일까?
‘BODIES”라는 전시에서 본 사람의 브레인은 정말로 곱게 까 놓은 호두알 같았다. 과학자들이 이 작은 두 쪽짜리 두뇌의 반도 알아 내지를 못했다니,  내 머리가 사실을 사실로 받아드린 걸 그대로 믿을 수가 있을까.
식당 ‘ Harvest on Hudson’ 은 강 물에 손을 담글 수 있을 만큼 허드슨 강에 바싹 자리잡고 있다. 지구가 어떻게 되나보다 할 정도로 요란스런 날씨가 계속되더니 강변 레스토랑으로 점심 약속을 잡아 놓은 날은 구름 한점 없이 화사했다.  오랜 친구들과 수다를 늘어 놓을 일 뿐이었으니 가벼운 마음이 날씨와 잘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면서 부터 가슴을 펴며 한껏 강 기운을  받아드릴 기세였던 나는 뭔가가 거북했다. 
무심코 강을 바라보는데 왠지 자연스럽지가 않다. '아니?' 할 때까지의 찰라가 몇 겁의 시간이 흐른듯 했다.
강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어머나.  강이 북쪽으로 흐르네." 내 소리에 친구들이  멈춰서서 강을 바라 본다. "그러네." 강물이 남쪽으로, 그러니까 맨하튼 쪽으로 즉, 바다를 향해 흘러야 하는데, 물이 흐르는 방향은 반대 쪽이다.  누군가 "바람이 북쪽으로 부나?" 하자 다들 그런가보다 하고는 서둘러 식당으로 들어갔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밀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내고 식당을 나올 때에는 강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고 강 쪽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집에 와서도 내 머리 속에는 출렁대던 물결의 잔영이 남아 있었다.  바로 전 날까지 심하게 퍼부었던 비 탓인지 주차장 가장자리까지 철석대는 흙 갈색 강물이 살랑 부는 바람에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 그 날은 바람도 없었다. 어떤 물고기들은 물결을 거슬러 상류로 헤엄쳐간다는 건 알아도 , 강물이 상류로 흐른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내가 확실히 본 것일까? 그렇게 수 없이 허드슨 강을 건너 다녔으면서도 유심히 물결을 살펴 본 적이 있었을까.
이 미스터리는 쉽게 밝혀졌다. 구굴로 ‘Hudson River’를  검색해서 맨위에 뜬 ‘위키페디아’를 클릭하니 처음 몇 줄 속에서 그 의문이 맥 없이 풀린 것이다.
허드슨 강은 대서양의 강한 밀물 때마다 상류 쪽으로 흘러간다. 겨울에는 어름 조각들이 북쪽을 향해서 둥둥 떠가는 것도 볼 수 있다. 알바니(Albany)보다도 더 북쪽에 있는 도시 트로이(Troy)까지도 대서양 바닷물이 올라 간다. 원주민 인디안들은 허드슨 강을 "양쪽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으로 "무해쿤네턱 (Muh-he-kun-ne-tuk)" 이라 불렀다. 
눈의 착각도 아니고, 바람 탓도 아니요, 신의 계시도 아니었다. 과학적인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강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흐른다’는 것이 상식이고 진리였다. 
우주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밝힌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한다. 강물이 엉뚱한 방향으로도 흐르듯이, 우주 또한 우리가 모르고 있는 곳에서 흘러와 또 어디론가로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이 나이 되도록 겹겹이 쌓아온 한줌의 지식과 굳어진 사고방식에 슬쩍 브레이크를 걸어본다.  ‘무헤쿤테틱’ 강 처럼 나의 생각을 양쪽으로 흘려 보자는 브레이크다.  
강은 거꾸로도 흐른다. 커다란 깨우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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