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나의 치킨 수프

나의 치킨 수프


사위가 오면 씨 암탁을 잡는다고 하는 말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닭 요리는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즐겨 먹는 맛있는 음식이다.  
말간 국물에 닭고기 몇조각 들어있는 치킨 수프는 미국사람들에게는 싸고 맛있으면서도 피곤을 풀어주는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있다. 훌훌 불어가며 떠 먹다가  마지막 국물을 드리마실 즈음이면 뱃 속이 든든해지고 기분 까지 풀어 주는 것이 바로 치킨 수프이다. 
그래서인가 '영혼을 위한 치킨 수프(Chicken Soup for Soul)’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물러 설 줄을 몰랐다. 매말라가는 인간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짧은 이야기 모음 집 책 제목을 ‘치킨 수프’로 한 것은 정말 스마트한 발상이다.
틴에이져를 위한 치킨 수프, 부모들을 위한 치킨 수프, 하다못해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 쵸코렛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치킨 수프 등등 시리즈가 이어 졌었다. 어느 날 치킨 수프 책의 유행도 다 지날 즈음에 뒤 늦게 나의 치킨 수프 이야기가 생겼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내가 닭을 삶아 끓여서 만든 명실공히 치킨 수프 이야기다.
31세에 낳은 딸 희련이는 어릴 때부터 누가 뭘 해주려고 하면 ‘내가, 내가’하면서 모든 일을 자기가 하려고 했다. 웬마한 일은 척척 알아서 해내니까 늙은 엄마로서는 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아이가 무척이나 여리고 예민한 성격임을 대학생활을 견디지 못해 1년 만에 휴학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야 알았다. 바쁘기만 한 엄마의 인정을 받고 싶은 어린 마음이 ‘내가 할래’로 표현되었었나 보다. 냉장고에 있는 콜드 컷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라고 하면 냉동실에서 떡국 떡을 꺼내 떡국을 만들어 동생을 멕이기도 했다. 이런 딸이니까 무슨 일을 해도 당연히 여기고 ‘우리 딸 잘 한다.’는 말을 별로 해주질 않았다. 
지나치게 Cool한 엄마에게 마음껏 부리지 못했을 응석을 이제라도 받아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응석을 부리지를 않았다. 더 이상 엄마가 해 줄 일이 없는 것 같았다. 홍역을 치루 듯 늦은 사춘기를 겪어 내고는 또 다시 ‘내가 할께.’모드로 대학을 잘 마치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 딸에게 다 못한 에미라는 굴레가 걸그적 거린다. 그러던 지난 겨울이다. 희련이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회사를 쉰다고 했다.
뭐라도 해줄 일이 있나하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맨해튼에 가서 다시 택시를 타고 딸한테 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을 올라가니 “엄마 안와도 되는데...” 문을 여는 딸의 부시시한 모습이 생각보다 심한 것 같다. “누워 있어라.” 되돌아서 쭈루룩 층계를 내려 왔다. 불현듯 닭 국물을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난것이다. 그새 눈이 살살 내리기 시작한 로워 이스트 사이드 거리를 뛰다시피 ‘홀 푸드’마켓으로 갔다. 가즈런히 진열된 수십 종류의 닭고기 중에서 하나를 사들고는 또 뛰었다. 헉헉대며 아파트로 돌아와서는 손 빠르게 닭을 불에 올려 놨다. 
휴~ 힘이 빠진다. 누워서 랩탑을 들여다 보고 있는 딸 옆에 가서 누웠다.
‘아이고 우리딸.' 두 팔로 딸을 꽉 안아 준다. 딸은 컴퓨터를 덥고 내 가슴에 파고 들며 응석을 부린다. 킥킥 웃고 시시덕 거리며 서로 응석을 부리다가 국물 넘치는 소리에 벌떡 일어 났다.  파를 송송 썰어 그릇에 담아 놓고, 어느 새 컴퓨터를 열고 일을 하고 있는 딸에게 ‘닭 국물 좀 먹어라. 뜨거울 때 먹어야 되. 그래야 감기가 빨리 떨어 진다.’고 재촉한다.
오후에 딸의 집을 나서서는 천천히 지하철 역을 찾아 걷는다. 눈은 그쳐 있었다. ‘아마도 네가 나보다  치킨수프를 더 잘 만들수 있겠지. 그러나 엄마가 끓여준 건 또 좀 다르지.’ 속으로 말한다.  바람이 찬 줄도 모르고 걷는다. 
딸을 위해 끓인 치킨 수프가 에미 노릇을 한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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