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오바마 마마

오바마 마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무조건 힐러리 편이었는데 대학생 아들은 오바마의 책을 들고 다녔다. ‘흑인? 아직은 좀 이르지. 나이도 어린고.’ 하면서도 뉴스 마다 쏟아지는 오바마를 피할 수가 없었다. 후보 지명전이 치열해 질 무렵, 인종 문제가 은근히 팽팽해지고 흑인 목사를 두고 큰 파문이 일어나자 오바마가 깜짝 놀랄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이 겪은 흑인차별에 대한 연설을 했다. 
그 것이 내 마음을 바꾸어 놨다.
대통령 후보까지 오른 그의 한을 알 것 같았다. 뉴욕 타임즈 신문에 실린 이 연설문에는 수 천개의 독자 의견이 달려있다. 그 걸 하나 하나 읽어 보면서 마치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때와 같은 역사의 순간을 실감했다. CNN 뉴스와 YOU TUBE까지 찾아 다니며 오바마를 따르다보니, 힐러리가 뒷 전으로 밀려 버렸다. 
나는 오바마가 꼭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열번을 토하곤 했다. 흑인이 얼마나 한국 사람들을 질투하고 싫어 하는 줄 아냐며 “흑인이 대통령이 되면 신나서 더 우리를 깔 볼꺼예요” 라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에서 50년 넘게 사신 이모부도  ‘백인들이 흑인을 찍을 것 같으냐? 어림 없지. 오바마를 칭찬하다가도 투표 당일에는 백인을 찍을 것이다.’고 하셨다. 
그럴수록 이 문제가 미국에서 두 아이를 낳아 키운 나의 일로 다가왔다.  
아마 눈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사람들로부터 대 놓고 차별을 당해 본 경험은 거의 없다. 하지만 어딜가나 무의식 중에 나의 얼굴을 의식하며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애들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일서 부터 한국인이라는 걸 염두에 뒀고, 학부모 회의나 학교 행사마다 나도 모르게 행동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던 것이다.
오바마가 민주당 후보로 확정이 되자, 우리 동네 잡지에 흑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가 특집으로 실렸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흑인에게 집을 안 팔았던 것은 물론이고 이 곳에도 흑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레스토랑이 있었다고 한다. 한 변호사는 자기가 수영장 물 속에 들어가자 백인 아이들이 기겁을 하고 나가길레 덩달아 같이 뛰어 나왔던 어렸을 때 일을 회상한다. 
사실 요즘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한 젊은 흑인 아빠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스타벅스 갔는데 뒤에 선 백인 여자가 공손한 말투로, '우리 애가 당신 아이의 머리카락 좀 만져봐도 돼요?’라고 해서 단호하게 ‘NO’ 를 했다고 한다. 아직도 백인 동네에 사는 흑인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다른 집에서는 생각도 못할 삶의 지침서를 써준다.
   학교에서 노래부르고 춤추지 말것, 
 거리에서 뭘 먹지 말 것,   
더워도 옷을 벗지 말 것,
티셔츠을 입지 말고 단추 달린 셔츠를 입고 다닐 것, 
백인 여자가 혼자 있는 엘리베이터는 타지 말 것,
  가게 안에서 어슬렁 거리지 말고, 껌 하나를 사도 꼭 영수증을 받을 것,
  운전을 하다가 경찰이 세우면 의자 밑에 있는 녹음기를 틀어 놓고, 무조건 순종할 것.
우리 아이들이 자랄 때는 동양 아이가 들어왔다고 백인 애들이 수영장에서 뛰어 나가는 시대는 아니었다. 특별 지침서를 써 주진 않았지만,얼 굴 색이 다르다는 편견을 당할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내 아이들 나름대로 편견을 당하며 자랐다는 것을 안다. 좋은 대학 나와  돈 많이 버는 직장에 들어 가기만 하면 이제 다 된 것이 아니다. 암만 미국인으로 살아도 아직은 그 들 앞에 두꺼운 벽이 가로 놓여 있다. 눈에는 안 보여도 절대로 뚫고 나갈 수 없는 글래스 월(Glass Wall)이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골이 깊은 인종 차별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에이브라함 링컨에서 버락 오바마까지 150년이 걸렸다. 버젓이 흑인 대통령이 있는 사회지만 아직도 백인 경찰들은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흑인을 무조건 쏘아 죽이는 일로 한창 시끄럽다. 오바마가 외친 '변화(Change)'가 언제나 실현이 되려나.
이제 막 사회의 일원이 된 내 아이들이, 투명한 벽에 부딪치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오바마의 엄마나 어느 흑인 엄마의 마음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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