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얘기 하지 말라'면서도 우리는 남의 얘기를 참 좋아한다. 나는 늘 남의 얘기를 한다. 남에 대해서 잘 아는 척 늘어 놓는다. 다행히도 그 것이 져널리스트라는 나의 직업이다. 사실상 우리가 매일 읽고 듣고 보는 것 대부분이 남이 일 아닌가.
한국의 여성잡지사에서 뉴욕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써 보내 달라고 했다. 영어 때문에 잔뜩 스트레스를 품고 있을 때였으니 한국 말로 하는 일이라면 뭐 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써 본 경험이 별로 없었지만 아무 주저 없이 남의 얘기를 쓰기 시작했다. 잡지나 신문에 실린 만한 사람들이 고군분투했을 외롭고 긴 시간들을 몇 개의 문장으로 압축하기 위해 고심하면서 글로 만들어 냈다.
그 옛날 1987년도의 일이다. 원고지와 필림이 든 두꺼운 봉투를 들고 우체국을 찾아가 국제우편으로 보내면 한달 쯤 후에 잡지가 내 손에 들려 진다. 내가 쓴 글이 활자화되어 멋진 사진들과 잡지의 몇 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니 뿌듯했다. 다만 페이지 한 구석에 작은 글자로 적힌 < 글: 노려>에 씁슬했다. 그렇지 이걸 누가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지. 사람들이 관심있는 건 주인공이다.
남의 이야기 하기는 쉽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를 활자로 남겨놓은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져널리스는 색 안경을 벗어야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면 안돼는데도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에 내가 먼저 덤벙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내가 쓴 그 많은 글 속 어딘가에는 슬그머니 나를 엮어 놓았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남 이야기인지 경계도 없이 말이다. 어디까지나 ‘남의 일’인데도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남의 이야기 하기는 쉽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를 활자로 남겨놓은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져널리스는 색 안경을 벗어야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면 안돼는데도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에 내가 먼저 덤벙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내가 쓴 그 많은 글 속 어딘가에는 슬그머니 나를 엮어 놓았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남 이야기인지 경계도 없이 말이다. 어디까지나 ‘남의 일’인데도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 얘기는 소설 몇 편 감'이 결코 아니다. 이역 만리 타향살이에 소설감이 더 구구절절 할 만도 한데 내게는 그런 이야기 거리가 없다. 적당한 선에서 중간 지점을 유지하느라 애를 쓰긴 했어도 놀랍고 감동스런 드라마는 없다.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 얘기를 쓰는 일은 남이 일을 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내 속을 다 들어 내 놓고 챙피할까, 별것을 다 자랑한다고 욕을 먹을까 조심스럽다. 자기 자랑은 하고 싶어도 남이 하는 자랑은 듣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을 좋아 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내 얘기를 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남의 얘기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문이나 잡지, 영화 속 제 3자의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보다. 그렇다면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를 하면 쉬울 것이다. 허공에 외쳐대는 독백은 아니다. 일상의 채바퀴를 한 박자 멈추고 두련두련 나와 나누는 이야기다.
내 얘기를 쓰는 일은 남이 일을 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내 속을 다 들어 내 놓고 챙피할까, 별것을 다 자랑한다고 욕을 먹을까 조심스럽다. 자기 자랑은 하고 싶어도 남이 하는 자랑은 듣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을 좋아 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내 얘기를 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남의 얘기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문이나 잡지, 영화 속 제 3자의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보다. 그렇다면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를 하면 쉬울 것이다. 허공에 외쳐대는 독백은 아니다. 일상의 채바퀴를 한 박자 멈추고 두련두련 나와 나누는 이야기다.
갑자기 순서도 없이 할 말들이 터져나온다. 남의 이야기만 잔뜩 늘어 놓았던 반 작용 일수도 있다. 60년간 둘둘 말린 실타레가 아무데서나 실밥이 풀린다. 삶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있던 작은 조각들이 두서 없이 튀어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이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 까마득했던 어린 시절로 뒷걸음 친다. 지나간 일들이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었다. '이민을 가려거든 고향을 추억할 일이 없는 어린 나이에 가야 한다’라고 했다 던가. 한국서 살아 낸 세월이 짙은 안개가 물러 나듯 모습을 드러낸다. 까맣게 잊은 줄 알았던 일들이 컴퓨터 자판기 위에 다시 살아난다.
내 마음 속에 심겨져 있는 내 어머니가 들려 주시던 이야기가 토씨하나까지 생생하다.
어린시절 저녁 때 부엌엘 가면 할머니가 작은 종지에다 갖 지은 흰밥에 고추장을 비벼 '엣따'하고 주시면 후후 불며 먹었다는 이야기, 여학교 농촌 봉사에 가서 일본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아도 거머리가 무서워 끝까지 논에 들어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14후퇴 피난 길 화장실에 갔다가 꽁꽁 언 손으로 바지 지퍼를 잠글 수가 없어서 기차를 놓친 이야기, 부산 보수동 ‘하꼬방’에서 고구마를 삶아 먹고 나를 낳으러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 나를 안고 집에 오는데 온 동네에서 추석 빈데떡 지지는 냄새가 났다는 이야기......
내 얘기들도 내 아이들 마음 밭에 씨로 심겨 질테지. 먼 훗날 자기들 이야기 속에 비쭉이 싹을 틔울지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니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내 이야기들을 늘어 놓고 싶은 심정이다.
어린시절 저녁 때 부엌엘 가면 할머니가 작은 종지에다 갖 지은 흰밥에 고추장을 비벼 '엣따'하고 주시면 후후 불며 먹었다는 이야기, 여학교 농촌 봉사에 가서 일본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아도 거머리가 무서워 끝까지 논에 들어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14후퇴 피난 길 화장실에 갔다가 꽁꽁 언 손으로 바지 지퍼를 잠글 수가 없어서 기차를 놓친 이야기, 부산 보수동 ‘하꼬방’에서 고구마를 삶아 먹고 나를 낳으러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 나를 안고 집에 오는데 온 동네에서 추석 빈데떡 지지는 냄새가 났다는 이야기......
내 얘기들도 내 아이들 마음 밭에 씨로 심겨 질테지. 먼 훗날 자기들 이야기 속에 비쭉이 싹을 틔울지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니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내 이야기들을 늘어 놓고 싶은 심정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