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얼+꼴

얼 + 꼴


요가 선생님이  “한 껏 우주를 들여 마십니다.” “허파 속으로 마음을 보냅니다.” “발 끝으로 숨을 내 보내세요.” 한다. 그런 척 따라 해 본다. 손바닥을 맞대어 쎄게 비비고는 그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이어서 머리를 주무르고 나서 이마와 눈 주위, 코 잔등, 코방울, 뺨, 입 언저리, 턱, 귀 주변, 목까지 손가락 끝으로 톡톡 친다. 
얼굴 하나에 이렇게 많은 부분이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의식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은 세수할 때 귀와 귀 뒤, 귀 속 그리고 손가락 마디 마디를 하나씩 하나씩 세심하게 닦곤 한다.  하루끼의 기상천외한 스토리 중에 자주 등장하는 얼굴 닦는 묘사가 머리에 남아 있다.  아마 나의 세수가 대충 비누칠 해서 비비고 물로 몇번 헹구는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서 온 친구가 ‘얘, 제니퍼 애니스턴이나  아담 샌들러같이 입가에 이쁜 주름이라면 그냥 둬도 좋은데…’라면서,  내 입 한 쪽으로 길게 잡힌 주름을 두고 '좀 없애라.'고  솔직하게 충고를 한다. 그 주름이 이젠 양쪽으로 발란스를 이루고 있다. ‘ 이게 나야?’  사진 찍기가 싫었던 때도 있었다. 그것도 오래 전일이다.
뒤 늦은 감이 있지만 요즈음 아침 저녁 마주보는 거울 속 내 얼굴을 향해 무라카미 하루키식의 정성을 쏟는다. 열심히 찍어 바르고 문지르고 두드리고 마사지도 한다. 요가도 열심히 한다. 한바탕 어려운 동작을 하고 나서는 앉아서 숨을 고르며 몸을 앞으로 눕힌다. 가슴에 모았던 손을 쭉 뻗었다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다시 끌어 당기며 일어나 앉는다. 요가 선생님은 이동작이 바로 '절'이라고 했다. "절은 저의 얼을 말해요. 절을 하는 것은 자기의 얼을 부르는 거지요."했다. 우주를 들이 마시라는 식의 구름 잡는 소리 같으면서도 왠지 마음이 땡겼다. 
저의 얼이라?   물론 나에게도 얼이 있겠지. 한국의 얼이라던가, 조상의 얼이라는 말은 당연하게 들린다. 나이가 들수록 판소리나 대금연주에 전율을 느끼곤 하는데 그 것을 한국인의 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나 만의 얼은 뭐란 말인가. 그 얼을 나에게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정신을 말하는 건가 죽으면 남는 다는 혼을 말하나, 아니면 흔히 기(氣)라고 하는 에너지일까. 성령일까. 그냥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
과연 얼이 뭘까 하던 중에, 우연이었을까, <얼굴>의 우리 말이 <얼꼴>이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과 꼴이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내 얼굴은 내 얼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하 그래? 말이 되는 듯 했다.
쉽게 생각하자. 내가 아침저녁 바르고 두드리는 내 얼굴이 내 얼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지금 내 얼굴, 이 순간 이 모양이 바로 나의 얼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주룸진 양쪽 입 가에, 양 미간과 눈 가와 눈 밑과 그리고 쳐진 뺨에 내 얼이 어려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할 수 없이 택했던 타협과, 그래도 이거 하나는 꼭 붙들려고 했던 자존심, 결국은 쓰잘데 없었던 고집들. 빙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교만, 질투와 욕심. 그 뿐인가. 게을음과 무절제. 그리고 간간히 시도해 봤던 회개와 참회까지 다 합쳐져서 숙성되어진 나의 모습. 그 꼴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것이 내 얼굴이다. 맞네. 내가 만들어 낸 모습이네.
이 얼굴이 싫다고 댕기고 자르고 부풀리고 한다면 오랜 세월 희노애락 고스란히 담은 나의 인생 나의 얼은 어디로 가는 걸까.
거울을 드려다 본다. 눈가에 서린 팽팽함이 보인다. 입가에 잡힌 안간힘도 보인다. 뻣뻣이 세운 목에 힘을 빼고, 어깨를 축 내려뜨리면서 고개를 동그랗게 돌려본다. 우주 안을 돌듯 고개를 돌리며 내가 구겨온 내 얼굴을 펴 본다. 빈 내 얼굴에 . '그래 수고 많다.' 내 마음이 간다.
몸을 땅에 납작 업드리면 마음도 땅에 닿는걸 느낀다. 손을 쭉 뻗어 나의 얼을 손 바닥에 담는다.그 두손을 맞잡고 가슴으로 당겨 본다. 맑고 신선한 태초의 얼이 고스란히 내 가슴으로 들어 오는 것 같다. 그 얼이 내 얼굴로 승화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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