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7, 2015

캔들 라이트 인

캔들 라이트 인


늦은 밤 우리 부부가 자주 가는 곳이 ‘캔들 라이트 인(Candlelight Inn) 이라는 맥주집이다. 이곳은 1982년 가을, 우리가 9월에 만나 11월에 결혼하기까지 딱 한번 와 봤던 곳이다.
어느 부부든지, 어떻게 만나셨어요 라는 질문 한마디에 곧바로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 가곤 한다. 저 쪽에서 하도 쫓아 다녀서 얼마나 도망을 다녔는지, 양가 집의 반대를 얼마나 무릅썼는지, 별것 아닌 일로 둘이서 얼마나 싸웠는지를 줄줄이 엮어낸다. 7년간 하루도 한 빼고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다던가, 서로 바래다 주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는 식의 러브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경우는 나이 들도록 제 짝을 못 만난 남자 집사님과 나이 다 들어서 유학 온 쳐녀를 목사님이 단번에 엮어 주신 케이스다. 남편은, ‘이민 생활에 저 만한 여자 만나기 어렵다’고 부추기는  바람에 얼떨결에 오케이를 한 모양이다. 나는 더 얼떨결이었다.  대책 없이 뉴욕에 온 나에게 여름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주신 목사님이, 사택으로 불러 저녁까지 먹여 주시면서 한번 만나보라고 하시니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날 마중하러 공항에 올 때 목사님 차를 빌렸으니, 첫 순간 부터 신세를 진 처지다. 목사님은 남자네가 뼈대있는 집안이라며 어쩌면 미술하는 여자는 별로 안 좋아할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덫 붙이셨다. 약속 날까지 이 남자의 얼굴도 몰랐다.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단 만나만 보고, 간곡하게 거절할 작정이었다.
내가 일하던 신문 사 앞 정해진 시간에 차에서 내리는 동양 남자를 보는 순간 마음을 정했다. 목사님에게는 나하고는 맞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말해야겠다고. 차를 타고 가면서 분명히 서로 어색한 말을 나누었을 것은 분명하지만 전혀 기억에 없다. 어쨋든 남자 집사님은 나를 맨해튼에서부터 뉴져지의 어느 이태리 식당으로 데려갔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이태리 해물 요리를 가운데 놓고 ‘이거 맛있어요.’ ‘이거 한번 먹어 보세요.’ 자꾸만 내 접시에 음식을 날라다 놓는 바람에 긴장이 풀렸는가보다.
내 눈 꺼풀에 콩 깍지가 씌어진 것이다. 그날 뉴욕으로 건너와서는 콜롬비아 대학 앞 브로드웨이 어느 바에서 2차를 하고 나를 142가 친구 집까지 태워다 준 집사님에게 두번 째 만날 약속을 했으니 말이다.


며칠 후에 다구치는 목사님에게 좀 더 생각을 해봐야 겠다고 말하자, 목사님의 전화 목소리에 신경질이 섞였다. “ 아, 거...노려 씨, 나이생각 좀 하시라요.”  나이! 그러네.하긴 남편감으로서 이 정도면 크게 나무랄 점이 없기는 한데...... 망설이다 국제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는 ‘들어 보니 대충 괜찮구나. 네가 좋으면 됬지. 너의 판단을 믿는다.’고 하신다. 이래서 '부모님이 반대하셔요.'도 못해봤다. 그렇다면, 한 살 더 먹기 전에 결혼 날을 잡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연애가 아닌 결혼 준비용 데이트를 몇 번 했다. 어느 일요일 성가대 지휘자 부부와  ‘메이시즈 파크(Macy’s Park)’엘 놀러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남편감 집사님이랑 지휘자는 네온 사인이 반쩍이는 어느 맥주집 앞을 지나치지 못했다. '한잔 씩 하고 갑시다.' 벽에 텔레비젼이 걸려있는 어두컴컴한 식당 안에 그저 엉거주춤 앉았던 기억 밖에는 없다.

결혼하고 애들 키우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고도 또 한참을 지낸 어느 날이다. 집에서 가까운 큰 길에서 그 맥주집이 눈에 들어 왔다. 붉은 색 개인 주택처럼 생긴 맥주 집이다. 촌스러운 촛불 그림이 벽에 그려져있고, ‘CANDLELIGHT INN’이라고 써있다. 어, 여기가, 우리가 한번 들렸던 곳 아닌가? 맞아. 여기였구나.어디 멀리 갔었는줄 알았는데 여기였네. 그걸 몰랐네. 그런데 아무런 감회도 아무런 추억도 솟아 나질 않았다. 
‘캔들 라이트 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그러게….우린 정말 너무 쉽게 결혼했나봐. 괜히 서둘렀어.’ 하는 후회의 마음을 발전시키지 않으려고 빨리 고개를 돌렸다. 
중학교 스포츠 팀에 들어간 아들아이가 자주 캔들라이트 인에 가는 것 같았다. 게임 후에 이 곳에 가서 치킨 윙을 먹는 것이 스포츠 팀의 전례라고 한다. 알고 보니,’캔들 라이트 인’은 1956년 부터 이 자리에 있는 동네의 명소였고, 타운의 베스트 치킨 윙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면 그러라지 뭐. 시간은 눈코 뜰새 없이 지나갔다.


결혼 20주년 날 우리는 캔들라이트 인에 갔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의 선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구경하고 나서이다.  이 날 역시 로멘틱하고는 거리가 멀다. 용케 졸지 않고 오페라를 잘 구경한 남편이, 기지개를 펴며  ‘어디 가서 한 그릇 먹자.’한다. “이 시간에 맨해튼 어딜 가. 괜히 값만 비싼데. 또 파킹은 어떻하구.” 하다가 불현듯, “’여보 우리 캔들라이트 갈까?” 했다. 불현듯 떠오른 발상이었다. 
늦은 밤, 캔들라이트 인에는 사람들이 빽빽히 서서 기다리고 있다. 벽에 달린 웨이팅 리스트에, ‘James, (2)라고 적어 놓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드디어 웨이트리스를 따라 식당 안에 들어가니,20년 전과 마찬가지로 벽에 걸린 TV에서는 스포트경기가 방송되고 있었다. 뒷 사람과 등이 맞다을 정도로 비좁고 시끄러웠다. 우리는 치킨 윙과 와인 한병을 시켰다. '치킨 윙이 진짜 맛있네’ 하며 닭다리를 뜯는데 와인의 효력이 서서히 나타나는 듯 했다.

그 때부터 캔들라이트 인은 우리의 단골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누가 먼저 말을 꺼내든 '캔들라이트 갈까?'에는 뜻이 맞는다. 한번은 무릎까지 눈이 와서 맥도날드 조차 문을 닫던 날, 장화를 신고 모자와 머풀러로 중무장을 하고 한 밤중 산책겸 집을 나섰다. 눈 치우는 차가 밀고 지나간 큰 길은 적막하고 광활했다. ’캔들라이트 열었을까?’ 내 말에 남편이 셀폰으로 “What Time do you Close tonight?’ 하더니 휙 방향을 돌린다. ‘3시까지 한데.’ 씩씩하게 앞서 걷는다.

몰아치는 눈 바람을 온 몸으로 받으며 시베리아 벌판을 걸어가는 지바고와 라라를 그 누가 말릴 수 있었으랴. 폭설도 아랑곳 않고 모여든 젊은 애들이 바글 거리는 사이에서 우리는 가슴 끓는 연애가 아닌 황혼의 데이트를 푸근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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