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그리니치 빌리지 멕두걸 스트릿에 방을 얻었다. 내가 뉴욕에 오자마자 원숙이가 아주 오래된 유명한 찻집이라며 데리고 갔던 '레지오Regio' 카페가 있는 거리다. 콩 깍지 만한 아파트에 룸 메이트와 함께 사는 딸 희련이를 보러 그리니치 빌리지를 세월을 거슬러 걸었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모습은 세월 만큼 달라졌지만, 그 카페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더 커지지도 깨끗해지지도 않았다. 1920년대에 문을 연 레지오 카페 주인이 카푸치노를 처음 미국에 소개했다고 한다. 우리는 카프치노와 피칸 파이를 먹었다. 그 때 나는 카푸치노를 처음 맛 보았다. 그러나 피칸 파이는 한번 먹어 본 터였다.
미국에 오기 직전이었다. 경복궁 앞 현대화랑 옆에 있는 '준'이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도로에서 한 층 내려가 자리 잡고 있던 '준'은 넓은 유리창과 하얀 색조로 꾸며진 그 당시로서는 최 첨단의 다방이었다. 대학 시절, 피터 폴 앤 메리의 노래를 잘 부르며 유난히도 히피스러웠던 동창생 이광조를 미국으로 떠나 오기 직 전에 만난 곳이다. ‘그래. 다들 미국으로 가는구나.’하는 말에 나는 ‘그냥 한 일년 쯤 있어 볼까 해.' 했었다. 이광조는 피칸 파이를시켰다. 나는 그 때 달고 고소한 피칸 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먹어 봤었다.
마지막 잎새를 생각하며 멋있는 낭만의 거리로 생각했던 '그리니치 빌리지'는 생각보다 평범한 곳이었다. 뉴욕의 수천만 얼굴 중의 한 얼굴이었다. 나는 혼자서 블리커 스트릿의 싼 영화관에도 가고, 재미있는 물건들을 구경하러 그리니치 빌리지를 기웃 거렸었다.
희련이가 서 너살쯤 되었을 때, 이광조가 뉴욕에 왔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동원 되어 반가운 동창생에게 맨해튼 구경을 시켜줬다. 당연히 그리니치 빌리지에도 갔다. 주차가 어렵기도 했지만 두 살난 아들과 함께 남편은 차에서 기다리고, 딸 만 데리고 유명하다는 우리 셋은 '르 피가로 카페'를 찾아가 급히 커피 한잔 씩을 마시고 나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친구에게 좀 미안하다. 청바지 통기타 시절 그렇게도 꿈에 그렸을 밥 딜란과 오 헨리의 그리니치 빌리지를 웬 아줌마와 남편과 두 어린 애까지 동행을 했으니 말이다. 자유와 사랑과 낭만의 거리를 수선스럽게 관광객처럼 훌터 봤으니 말이다. 오히려 내가 대학시절로 돌아간 듯 기분이 둥실 떳었다. 차에서 젖 병들고 애기보고 있는 남편 신경도 쓰면서 말이다.
이광조는 그 후 뉴욕엘 오면 꼭 연락을 하더니, 차차 그가 뉴욕을 다녀 갔다는 걸 후에 뉴스에서 알곤 했고 이제는 연락이 끊어진지 오래다. 언제부터인가 카푸치노를 찾기 보다는 레귤러 아메리칸 커피에 만족하고, 설탕 덩어리 피칸 파이는 얇게 한 조각을 맛 보기는 해도 될수있으면 살 찔까봐 멀리한다.
얼마 전 ‘르 피가로 카페’가 문을 닫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희련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 ‘카페 레지오’는 그대로 있을까?
남자 동창생과 온 가족의 그리니치 빌리지 나들이 이야기가 오헨리의 소설 감이나 될까 모르겠다. 딸아이를 찾아가는 그리니치 길목에서 한 조각 피칸 파이와 카푸치노에 스며있던하도 싱싱해서 떫기까지 했던 젊음이 되살아난다.
미국에 오기 직전이었다. 경복궁 앞 현대화랑 옆에 있는 '준'이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도로에서 한 층 내려가 자리 잡고 있던 '준'은 넓은 유리창과 하얀 색조로 꾸며진 그 당시로서는 최 첨단의 다방이었다. 대학 시절, 피터 폴 앤 메리의 노래를 잘 부르며 유난히도 히피스러웠던 동창생 이광조를 미국으로 떠나 오기 직 전에 만난 곳이다. ‘그래. 다들 미국으로 가는구나.’하는 말에 나는 ‘그냥 한 일년 쯤 있어 볼까 해.' 했었다. 이광조는 피칸 파이를시켰다. 나는 그 때 달고 고소한 피칸 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먹어 봤었다.
마지막 잎새를 생각하며 멋있는 낭만의 거리로 생각했던 '그리니치 빌리지'는 생각보다 평범한 곳이었다. 뉴욕의 수천만 얼굴 중의 한 얼굴이었다. 나는 혼자서 블리커 스트릿의 싼 영화관에도 가고, 재미있는 물건들을 구경하러 그리니치 빌리지를 기웃 거렸었다.
희련이가 서 너살쯤 되었을 때, 이광조가 뉴욕에 왔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동원 되어 반가운 동창생에게 맨해튼 구경을 시켜줬다. 당연히 그리니치 빌리지에도 갔다. 주차가 어렵기도 했지만 두 살난 아들과 함께 남편은 차에서 기다리고, 딸 만 데리고 유명하다는 우리 셋은 '르 피가로 카페'를 찾아가 급히 커피 한잔 씩을 마시고 나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친구에게 좀 미안하다. 청바지 통기타 시절 그렇게도 꿈에 그렸을 밥 딜란과 오 헨리의 그리니치 빌리지를 웬 아줌마와 남편과 두 어린 애까지 동행을 했으니 말이다. 자유와 사랑과 낭만의 거리를 수선스럽게 관광객처럼 훌터 봤으니 말이다. 오히려 내가 대학시절로 돌아간 듯 기분이 둥실 떳었다. 차에서 젖 병들고 애기보고 있는 남편 신경도 쓰면서 말이다.
이광조는 그 후 뉴욕엘 오면 꼭 연락을 하더니, 차차 그가 뉴욕을 다녀 갔다는 걸 후에 뉴스에서 알곤 했고 이제는 연락이 끊어진지 오래다. 언제부터인가 카푸치노를 찾기 보다는 레귤러 아메리칸 커피에 만족하고, 설탕 덩어리 피칸 파이는 얇게 한 조각을 맛 보기는 해도 될수있으면 살 찔까봐 멀리한다.
얼마 전 ‘르 피가로 카페’가 문을 닫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희련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 ‘카페 레지오’는 그대로 있을까?
남자 동창생과 온 가족의 그리니치 빌리지 나들이 이야기가 오헨리의 소설 감이나 될까 모르겠다. 딸아이를 찾아가는 그리니치 길목에서 한 조각 피칸 파이와 카푸치노에 스며있던하도 싱싱해서 떫기까지 했던 젊음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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