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와 카타리나 다방
세상을 떠들석 하게 했던 맥도날드와 한국 할아버지들 뉴스에 홍대 앞 카타리나 다방이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들이 매일같이 새벽부터 맥도날드에 가셔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신 모양이다. 99센트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하루 종일있다가 메니저가 경찰을 불러 쫒겨 나면 좀 있다 슬그머니 다시 들어오는 우리 할아버지들의 서글픈 모습에서 오랫 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다방이 생각난 것이다.
카타리나에서는 하루에 한 번만 커피를 마시면 암만 여러번 들락거려도 아무 말 안한다. 어쩌다 오후 늦게 처음 다방엘 들어가면 영낙 없이 쟁반을 들고 주문을 받던 기억력 천재 미스 김을 모두 좋아했다. 대학 4년을 출석 체크나 하듯 매일 카타리나 다방을 다녔다.
맥도날드의 노인들도 그 옛날 한국에서 단골 다방이 있었을 것이다. 마담과 레지 아가씨가 ‘아이구, 어서 오세요. ’ 애교로 반기던 한국의 그 다방 말이다. 아마도 날 계란 넣은 쌍화차를 드셨을 테지.
하드 록 음악으로 귀를 멍멍하게 해주던 카타리나 DJ는 장발 단속 경찰이 들어오면 재빨리 ''동백아가씨를 틀었다. 나팔 바지에 주렁주렁 구슬 목거리를 하고 히피 흉내를 내던 우리들은 어두컴컴한 다방 안에서 귀중한 시간을 다 보냈다. 한 구석에서 고개 숙이고 음악 듣던 단발머리 서강대학 남학생은 나중에 유명한 텔레비젼 방송국 PD가 되었고, 가수 송창식도 카타리나 다방에 자주 들렸다.
강의실로 가기 전에 의례히 카타리나에 먼저 들렸다. 친구들은 여기서 삼각 관계를 고민하고 인생을 논했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돌리던 짝사랑 학생도 있었다. 학교 과제를 한답시고 스케치북 펼쳐놓고 앉았다가 배고프면 짜장면 한 그릇 사먹고 다시 와서는 또 멍청히 음악만 듣다가 가는 일이 다반사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이 바로 다방이었다. 플러싱 할아버지들처럼 누굴 만나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면 그야말로 맥도날드 밖에 없었다. 커피 한잔에 한 없이 노닥거릴 수 있는 우리의 그 다방이 그리웠다.
약소민족 차별이라며 한인들이 데모까지 벌인 맥도날드 사건의 양쪽이 다 이해가 된다. 할아버지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컸을까. 내가 주인이라도 자리 차지하고 있는 그 노인들이 눈에 가시였을것이다. 하지만 힘 없는 할아버지들을 상대로 경찰을 부른 맥도날드도 너무 했다. 메니저랑 말다툼하고 경찰관이랑 실렝이를 할 때 할아버지들은 얼마나 콩글리쉬를 하셨을까. 아 이민의 아픔이다.
타운마다 시니어 센터에 프로그램이 넘쳐 나지만, 한국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다. 이민 1세들은 한국 정치서부터 교회 이야기, 골프이야기, 자식이야기, 건강 이야기, 또 TV드라마 이야기를 마음 껏 한국말로 늘어 놓는 그런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어디 조용한 곳에다 내가 카타리나 다방을 차려 보면 어떨까. 손님들은 하루에 한 번만 커피를 마시면 된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도 눈총을 주지 않을 것이다. 세시봉 흘러간 노래가 나오는 ‘카페 카타리나’에서는 한국말 신문 잡지를 읽을 수 있다. 벽에는 손님들이 도네이션 한 한국 서적들이 꽂혀 있다. 물론 바둑이나 장기도 할 수 있고 수 놓고 뜨게질도 할 수 있다. 메뉴에는 꼭 계란 쌍화차도 넣을 것이다.
혹시 그 옛날 카타리나 출신들이 찾아 오지나 않을지? 혹시 내가 남몰래 좋아했던 남학생이 나타나면. 내 뺨이 사과 처럼 동그랗던 카타리나 추억이 한 보따리다.
맥도날드 할아버지들도 청춘 시절 울고 웃던 인생 극장이 연출되던 서울의 뒷 골목 그 다방을 못내 못 잊어서 오늘도 또 플러싱 사거리에서 기웃 기웃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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