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그림 그리기

그림 그리기


어릴 때 부터그림을 잘 그렸다. 가장 오래된 기억 중에 하나는 누런 전등 아래서 누런 시험지에다 그림을 그리던 일이다. 학교 들어가기 전 일이다. 어머니는 아예 시험지 한 뭉치를 상 위에 놔 두셨다. ‘여기다 그려라.’ 였다. 아니면, 어머니의 오래 된 스케치 북에내가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스케치 북이 나에게는 재미있는 그림 책이었다. 장 마다 몇 줄 글과 함께 수채화가 그려져 있다. 연필로 아웃트 라인하고 연하게 물감을 입힌 자주빛 자켓을 입은 여자 그림 옆에 써 있던 ‘까마기가 아옥 아옥”이란 글자가 눈에 선하다. 까마귀는 그려져 있지 않았지만 아옥아옥이란 말이 좋았었다. 우리 집안의 역사적 자료가 될 귀한 페이지 빈 자리마다 나는 크레용으로 마구마구 그림을 그렸다. 어두워지면 나가 놀지도 못하고 그저 그림을 그린 것이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반 아이 한 명이 뽑혀 칠판 앞에 서있고 우리는 그 애를 그렸다.선생님은 내 그림을 높이 들어 애들에게 보여 주셨다. 나도  내 그림이 그 아이와 참 비슷해서 놀랐다. 그 애가 입었던 병아리 색 스웨터를 노란 색에 흰 색을 섞어 나타냈었다.
교과서 여백이나 노트 북은 그림으로 채워진다. 여학교 때엔 아예 노트 장에 네모 칸을 치고 만화도 그렸다. 쉬는 시간이면 내가 수업시간 동안 몰래 그린 스토리가 어떻게 되었나 내 자리로 몰려 들었다. 미술대회에 나가 입선과 가작을 했고, 여학교 내내 미화부장을 했다. 미술 대학에 갈수 밖에 없었다. 다른 공부는 못했으니 다른 길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림을 안 그린다. 하지만 늘 그림을 가까히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전시회를 취재하고 화가들을 취재했다. 우리 집 벽에는 다른 사람들의 그림들만 걸려 있다. 왜 나는 그림을 안 그리고 있을까? 미술 대학을 다녔고 미술을 가르쳤으며 또한 뉴욕에 와서도 몇 달간은 그림학교를 다녔다. 그림을 못 그리는 이유가 뭘까. 그것이 의문이다.
이제라도 그림을 좀 그릴까? 심심하지 않도록 노후대책으로 그림을 좀 다시 시작해볼까….를 반복하면서도 시작을 못한다.
왜 그럴까. 악보를 익혀야하는 악기 연주와는 다르다. 혹시 잘 그릴 자신이 없는 것일까. 하얀 공백 위에 무엇이든지 내 맘대로 그리면 되는데. 외어야 될 공식도 없고 정해진 법도 없다. 잘 못 그렸거나 맘에 안들면 고치면 되는 것이 그림 그리기다. 언제건  맘이 내킬 때 그리면 된다는 또 하나의 자만심일까. 
사실은 대학 들어갈 때부터 그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실력이 좀 모자르지만 등록금이 싸고 이름도 좋은 서울대학을 가려고 가장 댓수가 약한 조각과를 지망했었다. 그러나 막상 2차 대학인 홍익대학에는 댓수가 제일 높은 응용미술과를 선택했다. 상업적 그림에는 취미가 없었지만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였다. 대학 1학년 뎃상 시간에 교수님이 하신 말씀 “네 그림은 르노와르 같다.” 에 우쭐했던 기분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돈이나 이름을 생각지 말고 그냥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어야 했었나 보다.
졸업 하기도 전에 조경(landscape )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직하니그림은 자연히 또 밀렸고, 환경 기사자격증을 따고 환경 디자인 대학원까지 다녔다. 그리고는 지방에 있는 대학의 공예과 교수가 되어 도자기를 만들며 시골로 여행다니느라 세월을 보냈다. 뉴욕에 와서 몇 장의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결혼과 함께 그림은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슬슬 그림으로 마음이 간다. 뭐든지 그리고 싶다. 뭐든지 다 잘 그릴 것 같다. 뉴욕에 와서 잠시 아트 스튜던트 어브 뉴욕 미술 학교를 다니며 서양여자를 모델로 그린 자그마한 유화를 볼 때마다 이걸 내가 그렸나 한다.
 나의 후손들이 우리 집의 역사라면서 간직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겠다.
어릴 때 처럼  밥 먹고 나서 할 일이 없어서 그림만 그릴 때가 다가 오는 가보다. 그림그리고 싶은 마음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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