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눈 가리고 아웅


머리 물 들이기에 진력이 났다.
언제건 시기가 되면 시작하려고 세워둔 작전 - 1.머리를 아주아주 짧게 자르고 그냥 내버려 둘것. 2. 가발을 쓰고 다니다가 물들인 자국이 다 없어졌을 때 가발 벗어 던지기.- 중에 하나를 실천할 때가 된 것 같다. 즉 백발작전이다.
아직은 솔트 앤 페퍼 ‘은발’이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은발의 여인이 될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멋지지 않은가. 가만, 그게 아니다. 까만테 안경을 낀 여성 학자라던가, 단상 위의 여성 정치가라던가, 주렁주렁 장신구를 단 히피차림을 한 아티스트 또는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새까만 옷차림의 패션 멋쟁이라면 모를까. 펑퍼짐한 내 모습에 허연 머리라니.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은발의 여인이 될 자신이 없어진다.
흑단 같은 머리일 때 내게 맞는 헤어 스타일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이 이제와서 유감이다. 항상 똑 같은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여자들이 감탄스럽다.
머리가 귀 밑에 서 1센티미터가 넘는가 자로 재어 보던 여학교 6년간의 단발에서 벗어 나면서부터 나는 온갖 머리모양을 다 해봤다. 해방감에서인지 머리를 잠시도 가만 두지 못했다. 짧은머리 긴 머리에 파마 머리도 했다,  헤어밴드를 하고, 머리 핀도 꽂아 보고 또 뒤로 묶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머리모양 하나 쯤은 있어야지.’ 하셨다. 머리는 물론 옷도 울긋불긋 입고 다니는 나에게 아버지가 들려 주신 이야기가 있다. 어느 여성과 한참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는데 그 여성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 여성의 매력적인 인간성 만이 강하게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머리나 옷으로라도 나를 가려야 하는 처지에서는 다 지나간 일이다.
남편에게 물어본다.  “여보, 나 흰 머리 그냥 내버려 둬 볼까?” 당장에 남편은 '노오' ,단호하다, 백발의 와이프는 싫다는 거겠지. 친구에게도 물어본다." 얘, 나 염색하지 말까" 하니까 친구는 “염색을 하고 거울 보면 웬지 생기가 돌지 않니?  ”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미국엘 오시는 친정 어머니가 공항에서 쭈볏대며 걸어 나오시는데, 내 눈에는 어머니의 흰 머리가 제일 먼저 보였다. 남산만한 배를 하고도 어머니 머리를 까맣게 물들였다. 그러나 그 때 뿐 어머니는 염색 약이 눈에 좋지 않다며 염색을 안하셨다. 까만 머리의 시어머니보다 몇 년 아래인 친정 어머니가 더 늙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흰 머리 때문이다.
내 머리가 하얗다고 과연 내 딸아이가 염색 약을 들고 덤빌까. 아마도 별 신경 안 쓸것 같다.
머리 물들이기가 이렇게도 귀찮을 바에야, 흰 머리에 어울리는 멋을 부려보면 어떨가. 까만테 안경? 아니다 그것도 못할 일이다.  아직은 염색을 해야겠다. 허연 머리를 하고 다니며 군중 속에서 유독 나만 두드러지는 것이 두렵다. '흑발의 시어머니와 백발의 며느리’ 라든가 ‘까만 머리 남편과 하얀 머리 부인’ '늙은 동창'이 되는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2개의 백발 작전 중에 하나를 시행할 날짜를 뒤로 미룬다. 아직은 아니다. 
그냥 눈가리고 아웅하며 살자.
애초부터 인간성 만으로 당당한 위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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