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텅빈 그랜드 센트럴 대합실

텅 빈 그랜드 센트럴


모두들 집으로 향하는 시간에 나는 맨해튼으로 향했다.
가정주부가 무슨 일로 한 밤에 맨해튼엘 가냐고 하겠지만, 멀리서 온 친구를 만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밤 9시, 42가 그랜드 센트럴에 도착했다.
지저분하고 냄새나던 80년대 맨해튼이 나의 고향이라면, 출퇴근 시간 붐비는 인파 사이를 분초를 다투며 달리던 그랜드 센트럴은 고향의 역전 앞이다. 아침엔 수 많은 층계를 오르 내리며 7번 지하철을 향해 뛰었고 퇴근 시간 땡하자 마자 부리나케 회사를 나와 또 지하철과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뛰었다. 10초 20초를 남겨 놓고 기차를 놏치면 다음 차까지 30분은 길기만 하다, 애들 도시락 싸줄 빵을 ‘제이로스(Zaro’s)’에서 사 들고는 대합실 벤치에 앉아 시계를 바라 보던 수 많은 날들. 뉴욕의 명물이라는 그랜드 센트럴이 내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이제 그랜드 센트럴은 더 이상 급하게 분초를 다투며 드나들던 역전이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합실 시계는 한 1분을 빠르게 해 놓았다던가. 이제와서 맥 없이 웃는다. 
세월따라 모든 것이 흘러간다. 

친구를 만나던 그 날은 집에 갈 땐 11시 13분 아니면 11시 45분 차를 타야지, 돌아갈 기차 시간을 느슨하게 잡았다. 새삼스럽게 대합실을 둘러 본다. 내가 언제 이 유명한 관광장소에 신경을 써봤는가. 이 곳에서는 언제나 시간과 시간사이를 뛰기만 했다. 햋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높다란 유리창 벽과 섬세한 선으로 조각된 기둥들, 별 자리가 뒤집어져 그려졌다는 신비스럼을 주는 옥색의 천정과 중세 여성들의 페티코트 같은 샨델리어를 마치 처음 보듯이 바라본다. 하나도 바쁘지가 않다.

역을 나오니 노란 택시가 줄줄이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쁘디 바쁜 거리에서 드물게 보는 장면이다. 택시를 타고 친구 정주가 머물고 있는 55가 호텔로 향한다.

나리 꽃 향기가 진동하는 호텔 로비에 미리 나와 앉아 있는 정주가 있다. ‘그래 잘 있었니?’ ‘어떻게 지냈니’ 이메일과 카톡을 주고 받지만 얼굴을 맞대는 건 또 다른 일이다. 
무드있는 호텔 바에 앉은 우리의 대화는 이렇다. ‘허리가 또 아픈거 있지’,  ‘아무래도  매사에 어눌해 지는가 봐’  ‘온통 잊어 먹는 것 투성이야.’ 이젠 예전같지 않음을 늘어 놓는다. 마티니 한잔으로 발그스레해지는 친구에게 아무래도 뜨거운 물에 담구는게 좋겠다고 권하고, 또 만나자 그래 잘지내자. 호텔을 나왔다.


택시를 타면 11시 13분에 맞출 수 있었다.  택시 타겠냐는 도어 맨의 친절을 마다하고 걷기 시작했다. 바람이 차갑지 않은 가을 밤 맨해튼 거리를 언제 이렇게 걸어 봤을까. 가게 문은 닫혀도 환하기만 한 쇼우 윈도우를 들여다 본다. 인적은 물론이고 차도 잘 안다니는 맨해튼 거리가 한가롭기만 하다.
5번가에서 메디슨 에브뉴로 접어 들고, 몇 블럭을 내려가  다시 파크 에브뉴로  건너 가니 저만치 그랜드 센트럴 건물의 노오란 전등 불 빛이 보였다.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 천천히 걷는다.


그랜드 센트럴의 묵직한 문을 밀고 들어섰다. 대합실이 휑하다. 이렇게 텅빈 그랜드 센트럴은 드믈게 본다. 어쩌다 늦은 밤에 기차를 탈 때에도  ‘와~ 한 밤중에도 사람이 많구나.’ 했었는데, 월요일이라서 그런가 유난히도 한가하다. 시계탑 주변으로 드러나 있는 대리석 바닥이 광활하다.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철컥 철컥 이 장면을 담아 본다. 그리고는 전화를 한다.
‘여보. 12시 반 도착이야. 맘 놓고 자요.10분 전에 깨울께.’  “그래, 나 잔다.”  매점에서 잡지를 둘쳐 보다가 슬슬 개찰구로 향한다. 18번 개찰구는 변함이 없지만, 그 옛날 뛰어 들던 개찰구가 아니다. 사무용 가방을 든 젊은이들이 철벅철벅 지친 걸음으로 들어가고 있다.
저 시계가 1분이 빠르단 말이지? 드 넓은 그랜드 센트럴 기차역 대합실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서서히 개찰구를 향해 걸어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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