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와 환갑
콜럼버스의 옷 자락을 슬쩍 만져 본것은 무슨 인연일까.
애들이 ‘엄마 생일에 맨해튼에서 뭐 하나 구경하고 맛있는 저녁먹자’라고 하는데, 보통 생일 때에도 그정도는 했잖아. 이번에는 좀 더 크게 잔치를 해야 되는거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손으로 부터 큰 절 받는 것은 아니더라도, 바람과 파도를 거쳐 온 60년 생일은 좀 특별하기를 기대했다.
기대는 채워 졌다. 콜럼버스를 만나 본 것으로 특별한 날이 되었다. 콜롬버스의 동상이 뉴욕에 세워진지 꼭 120년이 된 해를 기념하는 전시를 보며 나의 환갑還甲을 더불어 기념했기 때문이다.
샌트럴 파크가 시작되는 서쪽을 컬럼버스 서클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 동상 때문이다. 50년을 뉴욕에 살았다는 마이클 불름버그 뉴욕 시장도 일부러 콜럼버스 동상을 올려다 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고 아마 대부분 뉴요커도 그랬으리라. 나 역시도 그 복잡한 컬럼버스 서클을 수 없이 지나 다녔어도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동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미국 어디에나 있는 흔한 동상 중에 하나로 여겼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콜럼버스 동상에 새삼스럽게 눈을 돌리게 한 것이 일본 작가 다쮸 니시(Tatzu Nishi)의 ‘컬럼버스를 발견하다.Discovering Columbus’라는 설치작품다.
100년이 넘도록 공중에 서서 눈 비 바람을 맞아 온 콜럼버스 씨에게 처음으로 따스한 안식처, 아늑한 리빙 룸이 생겼다. 높다란 기둥 위에서 홀로서서 외로웠던 그에게 사람들이 줄 지어 찾아 올라왔다. 우리도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리고 나서야 가설해 놓은 층계를 올라가 다쭈 니시 씨가 만들어 놓은 리빙 룸에 들어갔다. 잡지가 놓여진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와 텔레비젼 세트 등 아주 평범한 미국 집이다. 다만 방 한 가운데 거대한 콜럼버스 씨가 버티고 서있는 것이 기발함이다.
자기 집 방안에 이렇게 사람들이 꽉 들어차도 아랑 곳 않고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컬럼버스 씨. 지금 바다 끝 아른거리는 땅 덩어리가 보이십니까? 가까히서 보니 큰 바위 얼굴처럼 거대한 콩크리트 빛 얼굴에 뻥 뚫린 눈동자가 강열하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눈이다.
그가 미국 땅에 발을 디딘 해는 1492년, 나는 500여년 후 1982년에 뉴욕 땅에 발을 디뎠다. 동상이 세워진 60년 후 1952년에 내가 태어 났고 정확히 60년이 지난 오늘, 나의환갑일에 콜럼버스 앞에 서있다. 그의 옷자락을 스칠 때 아메리카는 그에게나 나에게나 낯 설은 땅이었다는 공통점이 손 끝으로 전해온다. 분명한 건 이 사람 덕분에 내가 미국에 온 셈이다. 커다란 인연이다. 내 생일이 컬럼버스 데이와 같은 가을이라서 이 전시를 바로 내 생일 날에 볼 수 있었던 것, 일본인 작가가 나와 동갑으로 그도 환갑이라는 것 까지도 참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콜럼버스는 회색빛 동상이 아니다. 옷자락을 스친 사이다. 설치 작가의 의도가 바로 이 것이었을까. 인간 콜럼버스와의 인간적인 만남. 그렇다면 그의 예술은 성공이다.
이제 더 이상 콜럼버스는 회색빛 동상이 아니다. 옷자락을 스친 사이다. 설치 작가의 의도가 바로 이 것이었을까. 인간 콜럼버스와의 인간적인 만남. 그렇다면 그의 예술은 성공이다.
콜럼버스의 리빙 룸에서 내려와 길 건너 타임워너 빌딩에서 콜럼버스의 불켜진 방을 바라 보면서 마신 칵테일과 이태리 음식은 잔치상 보다 좋았다. 그의 뚫는 듯한 눈빛을 언제 다시 가까히서 볼 수 있을까마는, 그 날 후로는 가끔씩 콜럼버스 서클에 갈 때마다 일부러 고개를 들고 동상을 올려다 본다.
아직도 바다 저 끝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육지를 바라 보고 있는 컬럼버스 아저씨. 뭘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 보십니까. 눈 웃음을 보낸다.
아직도 바다 저 끝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육지를 바라 보고 있는 컬럼버스 아저씨. 뭘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 보십니까. 눈 웃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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