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맨해튼 냄새

맨해튼 냄새


뉴욕에 도착한 다음 날 낯 선 향내를 맡으며 눈을 떴다. 알고 보니 빨래 비누 냄새였다. 아래 층으로 내려가는데 커피 끓이는 옅은 냄새가 올라 온다. 한국에서 알던 커피 냄새가 아니다. 아, 내가 정말 뉴욕에 오긴 왔구나 했다.
밀크를 듬뿍 탄 커피와 아침을 먹고 나서 공항에 나를 데리러 오느라 빌렸던 차를 돌려 주러 가는 친구를 따라 브롱스에 갔다. 그리고 돌아 올 때는 지하철을 탔다. 아직도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지하철 역에 들어 서자마자 코에 들어 닥친 지독한 냄새. 그 냄새야 말로 내가 정말로 먼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해 주고 있었다.
버스는 넓고 깨끗하고 밖을 내다 볼 수 있어서 좋긴 해도 두 블럭마다 서고 타는 사람천천히 기다리며 세월아 네월아 한다. 지하철을 타면 내가 다니던 미술 학교가 있는 59가까지 30분이면 된다. ‘제일 앞 칸과 제일 끝 칸에 타지 말 것, 꼭 사람이 많은 칸에 탈 것, 기차를 기다릴 때 멀치감치 서 있을 것'. 원숙이의 명령을 명심했다.지하철은 나의 발이었다.
북적대던 맨해튼 생활을 하다가 결혼 하고나서 갑자기 한가한 교외에서 살게 된 생활에 변화에 익숙치가 않았다. 운전도 못 하면서 두 아이 키우자니 어딜 가던 남편이 운전해 주고, 내가 일을 보는 동안 차 속에서 기다려 주었다. 운전을 배우고 나서도 나의 발은 남편이었다. 답답하기가 그지 없었다.
맨해튼에 갈 일이 생기자 용기를 냈다. 남편에게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걱정스런 남편은 역 앞에 날 내려 놓고도 떠나질 못한다. 몇 번의 손짓과 눈 짓 후에 차가 떠나는 걸 보고 지하철 역으로 들어서는데, 헉. 이 냄새! 
까맣게 잊었던 냄새, 맨해튼 냄새다. 지린내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층계를 내려갈 때 머리가 어찔하다. '맞아. 내가 이 뉴욕에 왔던 거였지’ 토큰을 사들고, 철거덕 쇠 문을 밀고 들어서면서는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 희끗한 불 빛이 터널 끝 쪽에서 번뜩이더니 우뢰 같은 소리가 들린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 쉬고, 한 두발 뒤로 물러서서 다가오는 기차를 기다린다.
길 바닥에서 허옇게 뿜어져 나오는 스팀에서 풍기던 흙 냄새, 고층 건물 사이를 감돌던 프랫쯜을 굽는 냄새와 땅콩 볶는 달콤한 냄새. 백화점에서 나는 짙은 향수 냄새. 챠이나 타운 역에 내리자 마지 지하철 안까지 풍겨오는 중국요리 냄새. 맨해튼에 첫 발을 디뎠던 그 해 2월, 이런 냄새들이 맨해튼을 이루고 있었다. 골목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와 홈레스 사람들에게서 나던 역겨운 냄새까지 다 합해서다. 
영화도 보고 읽기도 했고 상상도 했었지만, 뉴욕이 품고 있는 이 냄새야 말로 직접 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지하철 냄새는 말이다. 잊고 있던 지하철 냄새에서 단박 고향을 느꼈다. 그리웠던 곳에 다시 온 바로 그 느낌이다. 처음부터 나를 압도했던 맨해튼이라는 곳은 지하철 냄새까지도 내 머리에 기록이 된 것일까.
‘고향 집 어머니의 밥 짓는 냄새’ 라는 귀절에서 어린시절 전체가 표현 된다. 말로나 글로나 표현할 길이 없는 냄새에 무슨 이론이 있을까마는, 뉴욕에 오자마자 코를 자극했던 온갖 냄새가 내게는 어머니 밥 짓는 냄새다.
가끔씩 맨해튼에 갈 때마다, 모퉁이 포장마차의 입 맛 도는 핫도그 냄새와 쥬얼리를 주렁주렁 단 멋쟁이 할머니의 짙은 향수 냄새가 향수를 달래준다. 물론 지하철 냄새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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