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무작정 상경

무작정 상경


시골 처녀가 서울로 간다. 가족 몰래 밤차를 타고 새벽에 서울역에 내려 두리번 거리고 섰다. 무릎 밑까지 내려 온 치마를 입은 어린 소녀들은 경찰 제복을 입은 여자 앞에 엉거주춤하다.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 눈에 띈 사진이다.
믿는 구석은 오로지 자기 자신 하나다. 먹고 살아야 겠다는 용감함과 뱃장으로 기차를 탔지만, 막상 서울역 앞을 나오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나도 그렇게 뉴욕으로 왔다. 그 옛날 보리고개도 훌쩍 넘긴 1982년이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산 두툼한 나이롱 코트를 입은 서울 처녀는 세계의 서울 맨해튼 한 구석에  헐렁한 이민 가방을 내려 놓았다. 서울역에 내린 금순이는 아니었다. 친구를 찾아왔으니 믿을 만한 구석 하나는 든든했다. 하지만 무작정이라는 차원에서는 똑 같다. 일단 와 보자였으니까. 나 하나 잘 되어 보자는 어리숙한 용감함도 있는데다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허영심도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무작정 한국 탈출이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비행기를 탔다. 하긴 비행장에서는 뒤 돌아 볼 사람이 없었다.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엄마랑 아버지랑 헤어졌기 때문이다. 한 일년 정도 다녀 올 예정이었기에 학교에 간 동생들과는 공식적인 이별도 없었다. 
아버지와는 그 때 집 앞에서가 마지막이다.나라가 가난 한 중에서도 글 쓰는 아버지와 피아노 치는 어머니의 우리 집은 더 가난했다. 억척스럽고 야무지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웠던 유신시절, 생활비가 없어도  보고 싶은 영화는 꼭 봐야만 했던 어머니를 나는 똑 닮았다. 딸만 넷 중에 맞이인데도 어려운 생활을 헤쳐나가는 또순이도 아니었고, 동생들은 고생 안 시키겠다는 금순이도 아니었다. 
그래서 30이라는 꽉 찬 여자나이에, 나 혼자만을 생각하고 미국엘 올 수 있었나 보다. 비현실 적인 예술가 부모와 병아리같던 동생들을 두고 떠나 온 것이다. 미국도착 다음날 부터 인생 드라마가 시작이 되었다. 친구 원숙이가 보낸 입학허가서 로 등록한 미술학교는 얼마 다니지 않고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하고 이민자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재미없는 드라마다. 하루 하루가 줄 타기 같았고 마술사의 공 놀이와도 같았다.
서울에 남겨 진 동생은 언니가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올 줄 알았다고 했다. 비단 구두라니...... 그렇지. 서울역 처녀들은 추석이면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고향을 찾아 갔으리라. 나는 커텐을 뜯어 옷을 만들어 입은 당찬 스카알렛도 아니고, 두 아이를 양 손에 안고 고향 하늘 나라로 날라간 선녀도 못 되었다. 어리숙하게 친구 따라 강남와서 생각없이 삼천포로 빠진 격이라고 자아비판도 했고, ‘유학으로 온 것이지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살자고 남의 나라로 온 것이 아니다’라고 나한테 궁색한 변명도 한다. 
남의 나라에서 살아 가려면 굿세어야만 한다는 걸 알아 차리기에는 시간이 꾀 오래 걸렸다. 또순이와 금순이는 되지 못했지만 굿세게 견뎌 내고 있다.
사진 속의 서울역 처녀 애들은 그 나마 순경 아줌마를 만났으니 다행이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더라도 새벽 기차를 탔던 그 마음을 잃지 않고 굿세게 잘 견뎌 내었을 것이라고 무작정 믿고 싶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2011년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문인극 대본/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등장인물 :   앙드레 지드, 나레이터, 시인 1, 2, 3, 4, 5, 6 …가수, 무용수 장면 :   거리의 카페 …테이블, 의자, 가로등… 정원 ….꽃, 화분, 벤치  숲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