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상경
시골 처녀가 서울로 간다. 가족 몰래 밤차를 타고 새벽에 서울역에 내려 두리번 거리고 섰다. 무릎 밑까지 내려 온 치마를 입은 어린 소녀들은 경찰 제복을 입은 여자 앞에 엉거주춤하다.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 눈에 띈 사진이다.
믿는 구석은 오로지 자기 자신 하나다. 먹고 살아야 겠다는 용감함과 뱃장으로 기차를 탔지만, 막상 서울역 앞을 나오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나도 그렇게 뉴욕으로 왔다. 그 옛날 보리고개도 훌쩍 넘긴 1982년이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산 두툼한 나이롱 코트를 입은 서울 처녀는 세계의 서울 맨해튼 한 구석에 헐렁한 이민 가방을 내려 놓았다. 서울역에 내린 금순이는 아니었다. 친구를 찾아왔으니 믿을 만한 구석 하나는 든든했다. 하지만 무작정이라는 차원에서는 똑 같다. 일단 와 보자였으니까. 나 하나 잘 되어 보자는 어리숙한 용감함도 있는데다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허영심도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무작정 한국 탈출이었다.
믿는 구석은 오로지 자기 자신 하나다. 먹고 살아야 겠다는 용감함과 뱃장으로 기차를 탔지만, 막상 서울역 앞을 나오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나도 그렇게 뉴욕으로 왔다. 그 옛날 보리고개도 훌쩍 넘긴 1982년이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산 두툼한 나이롱 코트를 입은 서울 처녀는 세계의 서울 맨해튼 한 구석에 헐렁한 이민 가방을 내려 놓았다. 서울역에 내린 금순이는 아니었다. 친구를 찾아왔으니 믿을 만한 구석 하나는 든든했다. 하지만 무작정이라는 차원에서는 똑 같다. 일단 와 보자였으니까. 나 하나 잘 되어 보자는 어리숙한 용감함도 있는데다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허영심도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무작정 한국 탈출이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비행기를 탔다. 하긴 비행장에서는 뒤 돌아 볼 사람이 없었다.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엄마랑 아버지랑 헤어졌기 때문이다. 한 일년 정도 다녀 올 예정이었기에 학교에 간 동생들과는 공식적인 이별도 없었다.
아버지와는 그 때 집 앞에서가 마지막이다.나라가 가난 한 중에서도 글 쓰는 아버지와 피아노 치는 어머니의 우리 집은 더 가난했다. 억척스럽고 야무지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웠던 유신시절, 생활비가 없어도 보고 싶은 영화는 꼭 봐야만 했던 어머니를 나는 똑 닮았다. 딸만 넷 중에 맞이인데도 어려운 생활을 헤쳐나가는 또순이도 아니었고, 동생들은 고생 안 시키겠다는 금순이도 아니었다.
그래서 30이라는 꽉 찬 여자나이에, 나 혼자만을 생각하고 미국엘 올 수 있었나 보다. 비현실 적인 예술가 부모와 병아리같던 동생들을 두고 떠나 온 것이다. 미국도착 다음날 부터 인생 드라마가 시작이 되었다. 친구 원숙이가 보낸 입학허가서 로 등록한 미술학교는 얼마 다니지 않고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하고 이민자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재미없는 드라마다. 하루 하루가 줄 타기 같았고 마술사의 공 놀이와도 같았다.
아버지와는 그 때 집 앞에서가 마지막이다.나라가 가난 한 중에서도 글 쓰는 아버지와 피아노 치는 어머니의 우리 집은 더 가난했다. 억척스럽고 야무지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웠던 유신시절, 생활비가 없어도 보고 싶은 영화는 꼭 봐야만 했던 어머니를 나는 똑 닮았다. 딸만 넷 중에 맞이인데도 어려운 생활을 헤쳐나가는 또순이도 아니었고, 동생들은 고생 안 시키겠다는 금순이도 아니었다.
그래서 30이라는 꽉 찬 여자나이에, 나 혼자만을 생각하고 미국엘 올 수 있었나 보다. 비현실 적인 예술가 부모와 병아리같던 동생들을 두고 떠나 온 것이다. 미국도착 다음날 부터 인생 드라마가 시작이 되었다. 친구 원숙이가 보낸 입학허가서 로 등록한 미술학교는 얼마 다니지 않고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하고 이민자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재미없는 드라마다. 하루 하루가 줄 타기 같았고 마술사의 공 놀이와도 같았다.
서울에 남겨 진 동생은 언니가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올 줄 알았다고 했다. 비단 구두라니...... 그렇지. 서울역 처녀들은 추석이면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고향을 찾아 갔으리라. 나는 커텐을 뜯어 옷을 만들어 입은 당찬 스카알렛도 아니고, 두 아이를 양 손에 안고 고향 하늘 나라로 날라간 선녀도 못 되었다. 어리숙하게 친구 따라 강남와서 생각없이 삼천포로 빠진 격이라고 자아비판도 했고, ‘유학으로 온 것이지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살자고 남의 나라로 온 것이 아니다’라고 나한테 궁색한 변명도 한다.
남의 나라에서 살아 가려면 굿세어야만 한다는 걸 알아 차리기에는 시간이 꾀 오래 걸렸다. 또순이와 금순이는 되지 못했지만 굿세게 견뎌 내고 있다.
남의 나라에서 살아 가려면 굿세어야만 한다는 걸 알아 차리기에는 시간이 꾀 오래 걸렸다. 또순이와 금순이는 되지 못했지만 굿세게 견뎌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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