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숲 속의 한 나무



숲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 때 숲이란 저 멀리 보이는 숲이 아니고, 숲 속에 들어가서 보는 숲도 아니다. 그 옛날 유럽의 시인들이 시 한 줄 읊어 내던 그런 사색의 숲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햇빛 자락이 겹겹이 포개어져 나무사이로 뽀얀 사선을 긋는 포토제닉한 숲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달리는 차 속에서 내다 보는 숲이다. 매일 매일 일터로 오고 가는 하이웨이에서 바라 보이는 그 평범한 숲을 말한다. 동네 길을 나서자 마자 둥그런 곡선으로 이어지는 6차선 하이웨이 양 쪽은 숲으로 벽을 이룬다.  멀리 보이던 숲이 눈 앞으로 다가오기가 무섭게 뒤로 사라지면서 계속해서 숲은 조금 씩 모습을 달리하며 펼쳐진다.
하루에 1시간만 더 있으면 좋겠다며 허둥지둥 살며 내가 왜 이렇게 초라한가 답답하던 때였다. 어느 날, 인라이트먼트가 따로 없다, 운전하고 가면서 차 창으로 지나치는 나무들을 무심코 바라 보다가, 아하!  했다.
숲 속 나무들을 좀 봐라. 하나 하나는 다 다른 모양의 나무들이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잖아. 그렇구나.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무슨 나무인지도 구별이 안돼는 어떤 자그마한 하나의 나무, 내가 바로 그런 존재다.  
웅장한 자태의 소나무가 있고 잎이 무성한 떡갈나무도 있다. 이렇게 눈에  띄는 나무 말고는 나머지는 모두가 다 이름 없이 한데 섞인 나무들 뿐이다. 가까히 가서 보면 제나름 대로 개성있는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뜻 눈에 띄였다가는 순식간에 무한대의 풍경화 속으로 파묻혀 버리는 나무 한 그루. 깨우침이 따로 없다. 그게 나다. 
나무들 사이에는 이름 모를 수풀이 우거지고 나무를 타고 덩쿨이 엉겨 있다. 마른 가지에는 버섯이 움틀것이다. 크고 작은 바위와 호수가 있고 시냇물이 흐르며 노루 사슴이 뛰 놀고 있을 것이다. 늑대도 곰도 있다고 들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저 안에서 생명은 약육강생의 자연 원리대로 움직이며, 예상 못한 별동 별이 떨어 지던지 태풍과 폭설과 산 사태를 당하면서 변화무쌍하다.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 보면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더라' 하신 오색창연한 별이다.
여름이 지나기도 전에 새빨갛게 물을 들이는 나무가 있고 나뭇잎이 다 떨어진 후에는 늘 푸른 상록수가 돗 보인다. 오랫 동안 같은 길을 다니다 보니 한 덩어리로 보이던 숲 속에서 독특한 모양의 나무를 알아 보기도 한다. 겨울이면 그 동안 감추어 져있던 숲 속이 드려다 보인다. 쓰러진 나무들이 많다. 언젠가는 썩어서 거름이 될 것이다. 온통 흰 눈에 덮힐 때 광경은 환상적이다.  그러다 어느날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보일듯 말듯 연두빛 물이 오르면 '아 또 한 바퀴 세상이 돌아가겠군.' 한다. 시커먼 땅 속에서 씨들이 말 없이 떡 잎을 피우고 있을 것이 감지된다.
하이웨이를 달리며 시시로 숲 속에 있는 나를 찾아 보곤 한다. 큰 나무들 사이에서 제대로 크지 못한 나무가 보인다. 옆으로 휜 나무도 있다. 덩쿨에 둘둘 감긴 나무도 있고 가지가 꺾인 나무도 있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내 나무는 저 뒤쪽에 저 것일까? 꿈도 크다. 덤풀 사이에 섞인 풀 한 포기일 수도 있다. 피식 웃는다. 
그러나 분명히 저 속에 내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도 일하러 가는 하이웨이에서 양쪽 시야에 HD 화면보다 선명하게 펼쳐지는 대 자연의 3D 파노라마를 즐기며 내 모습을 관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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