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산입의 거미줄

산입에 거미줄 치랴
“캐쉬가 들어오는 비지네스를 해야겠어.” 가게를 하자는 것이었다. 남들처럼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자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 때 남편이 말을 들으며 난감했던 심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가게를? 기가 막혔다. 장사를 한다고? 장사라니......암만 그래도 장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 초에 미국에 다니러 오신 친정 엄마는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 한국에서는 교수다 디자이너다 하던 딸의 미국 친구들이 다 야채가게, 구둣방, 세탁소, 손톱가게를 한다고 하셨다. ‘정말 그러네.’ 재미로 들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느니, 뭘 해도 감사함으로 하라느니 온갖 인생진리를 다 동원해 봐도 장사는 정말 못 할 것 같았다. 내 소질과 적성과 취미를 다 동원해봐도 맞질 않는 일이었다. 남편의 마음은 움직이질 않았다. 남들처럼 와이프랑 오손 도손 가게에 앉아서 돈을 펑펑 벌고 싶다면야 별 도리가 없었다.  
     우선 야채가게, 생선가게는 리스트에서 뺐다.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하기도 쉽고 보기에도 괜찮고 돈도 잘 벌리는 가게를 찾았다. 극장 앞 ‘하겐다쯔’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가봤고, 백 만불이 벌린다는 잡화상도 가 봤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밤 11시 까지라서 접었고, 브롱스에 있는 99센트 잡화상은, 그 근처에 사는 이태리 사람이 딸이 몇 살이냐고 묻더니 ‘딸 결혼식에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들어 가야지.’했다. 그 동네에는 500불만 주면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란다. 당장 그가게는 포기했다. 여기 저기 다녀봐도 돈도 잘 벌리고 품위있는 가게는 없었다.
 결국 문방구를 시작했다. 가게를 찾다가 별치 않는  일로 남편과 다투기 일쑤였다. 아무런 가게라도 해야겠다고 할 무렵에 맨해튼에 한국 사람이 하는 사무용품 가게를 만났다. 종이와 팬 ! 낯 익은 물건들이라 만만했다. 추운 날씨에 몇 번이고 맨해튼엘 가면서 시간을 끄는 가게 주인과 흥정을 하는 동안 가게를 먼 곳에 하는 건 무리라고 접었다. 또 다시 이런 저런 가게를 가 보고 도 번번히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무래도 제가 오만한가 봅니다.” 봄이 되어 가까운 곳에 자그마한 문방구가 나타났다. 예쁜 학용품과 고급스런 사무용품들을 판다. 3시 이 후엔 애들을 돌 볼 수 있으니 무조건 ‘오케이’했다. 
가게를 찾는 일보다 운영하는 일이 더 어려웠고, 남편이 나보다도 장사를 더 못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팔을 걷어 붙였다. 캐쉬 레지스터 쓰는 법을 익히느라 고생하던 우리는 몇 년 후엔 비지네스를 늘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미 메가 스토어와 인터넷 비지네스에 소매업들이 밀려나고 있는 줄을 몰랐고, 때 마추어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졌다. 가게 손님은 줄었고 두 아이 대학에 들어 가는 돈은 막대했다. 1920년대 이후 최대의 불경기라고들 했다. 
아침 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 설 때면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 보다 더 부담스럽다. 쇼우 윈 도우를 장식하는 일도 싫었다. 매일 두 세잔씩 던킨 도너츠 커피를 사다 마시며 한가하게 책을 읽는다. 갤러리나 뮤지엄을 다니지 말고 그 시간을 장사 하는 일에 썼다면 돈이라도 좀 모아 두었을까? 방학 때 아이들에게 가게 일을 좀 시켰더라면 부자가 되었을까? 
두 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나니, 학자금 융자 액의 자리 수가 길다. 하나님은 나의 오만한 마음을 없애 주시지 않았나 보다. 예쁜 물건 취급하며 손 쉬어 보이는 작은 가게를 시작했던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남편은 자격 시험을 보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주유소를 시작했다. 오밀조밀 문방구보다 남편 적성에 잘 맞는듯 했다. 이제 문방구를 팔려고 내놨으나 팔리질 않는다. 구식 가게를 살 사람이 나타나질 않았다.
조용한 가게에서 창 밖을 바라다 본다. 가로수의 하얀 꽃 잎이 눈 처럼 흩날린다. 종업원도 해고 시키고 나 혼자다. 아침에 커피를 사들고 가게 문을 열자마자 자동적으로 라디오를 튼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며 근근히 가게를 유지해나갔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도 시시하게 지내고 서서히 꽃이 피고 있는데 뾰죽한 수가 없다. 멍청히 밖을 내다 보고 있는 내 모습에 내가 놀란다. 
아니,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거지? 왜 이러구 있는 거지? 이러구 있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다. 이유가 뭐냐구. 아니, 내가 굶을 까봐? 정신이 버뜩 들며 '산입에 거미줄 치겠어'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맞아. 이 가게 내일 당장 문 닫자.남편에게 말 해야지.갑자기 마음이 밝아진다. 까짓꺼 문 닫으면 될꺼 아냐.
그 날 저녁 ‘여보, 이 가게 그냥 문 닫지 뭐.' 말이 쉽게 나왔다. ' 가게를 팔아서 꼭 돈을 챙겨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그 동안 이 만큼 잘 먹고 살았으면 됬잖아.'남편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힘을 얻어 한마디 더 한다. ‘여보.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남편의 눈도 반짝했던 것 같다. 우리는 오랜 만에 흥겹고 맛 있게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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