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7, 2015

갈퀴 달과 금성

갈퀴 달과 뷔너스


잠결에 내 다본 침대 머리 창으로 밝아 오는 하늘이 보인다. 밤새 또 눈이 왔나. 고개를 들고 밖을 바라보다 깜짝 놀랐다. 가슴이 다 뛰었다. 아 저거구나. 짙은 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까만 나무 가지 사이에  새하얀 조각 달 하나와 빤짝하는 별 하나가 걸려 있다.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찾았다.


철컥 철컥. 랜즈를 쥼으로 하고 다시 철컥 철컥. 창 틀 박에 벌어진 장면이 없어지기 전에 카메라에 담는다. 잠이 다 달아난 김에 내쳐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쓴다. ‘엄마, 이거지?  엄마가 말하던 그 달과 별,  맞지?’ 사진을 첨부한다
답장이 왔다.  <<바ㅡ로 저 갈퀴 달에다 에스코ㅡ트 하듯 같이 나타나는 금성 뷔너스. 나도  매일 새벽 5. 6시경 동쪽 하늘의 그 들과 인사부터 한다요. 네 사진의 달, 내 일기장의 달과 꼭 같고.>> 엄마의 글을 읽으며 뭉클하다. 엄마는 그 달과 별을 일기장에 그렸구나.


내 어린 시절에 엄마가 자주 들려 주던 이야기가 있다. 엄마가 소학교 다닐 때 삼춘들이 망원경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별을 보곤 했단다. 어린 마음에 저 별들이 떠 있는 하늘 너머는 뭘까 ? 또 그 하늘 다음엔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울었다는 이야기다. 

혼자 사시는 엄마의 일과는 창 밖 내다보기다. 매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 내다보기서 부터 건너편 아파트에 불이 켜지는 밤까지 창 밖으로 세상보기를 하신다. 세계의 도시라는 뉴욕 딸 집에 오셔서도 결국은 창 너머 바깥 세상 바라보기를 더 많이 하셨다. 일 끝내고 집에 온 나와 잠시 얼굴이 마주치기만 하면  ‘야. 해가 뜰 때는 저 뒷집 나무 사이에  빨간 점 하나로 시작된다’라든가, ‘해가 뜨는 자리가 점점 북쪽으로 옮겨 간다’는 등 전혀 내 생활과 관계가 없는 말만 하시던  엄마다.  그 중에  ‘새벽 동쪽 하늘, 조각 달, 금성’ 소리도 자주 들었지만 그저 응응 하곤 했다.

요즈음, 끄떡하면 창을 내다보는 나를 발견한다. ‘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하던 엄마의 말이 여기저기 맞아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하늘 쳐다보는 장면까지 엄마 나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저녁에 차에서 내려 현관까지 가는 몇 발작에 하늘을 본다. 우뚝 선 나무를 가운데 두고 구름과 달과 별 들이 서서히 자리를 바꾸는 것을 본다. 국자모양 북두칠성과 W자 카시오페아를 찾고, 세 개의 작은 별로 허리띠를 한 네모난 오리온 좌를 찾느라 고개를 돌린다. 한 번은 플로리다에서 초저녁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가 뜨기 전 창 밖을 보니, 집에서 보던 것 보다 훨씬 더 가깝게 보이는 커다란 오리온 좌의 한 쪽 발이 검푸른 바다 속에 담겨 있었다.


운전하면서도 눈섶같은 초생달을 보고, 노을 진 하늘에 홀로 빛나는 계명성도 본다. 낮에 나온 반달을 보며, 지붕 위에 둥실 뜬 보름 달을 한 없이 바라보는 일이 잦아 진다. 나를 중심으로 해와 달과 별이 매일매일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별 하나를 잡아 빤히 바라다보고 있으면 하얀 점 하나가 차차 다이아몬드 처럼 차가운 빛을 발하며 깝박인다. 나에게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한 번 반짝한 저 빛이 몇 천만 광년이 걸려 내 눈에 들어 온 것이라고 했던가?  


얼마 전 소련 땅에 떨어진 불 덩어리가, ‘’별하나 나하나 별둘 나둘….. 할 때의 그 별이란 말인가? 태양계를 넘고 은하계를 넘어 그 다음으로 또 그 다음으로 한도 없이 뿌려져 있을 별 덩어리들을 생각하다가, 엄마처럼 눈물이 날 뻔 한다. 우주과학자들이 내 놓은, 빅 뱅 이후 38만 년 쯤 지나서의 모습이라는 타원형 우주지도가 영롱한 색깔의 색맹 검사 챠트같았다.
이 세상의 생이 끝나면 가는 곳이 저 아름다운 그림 속 어디쯤 일까? 인간의 생각이 미칠 수 없는 경이로움에 숨을 죽인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문득 창 밖을 내다본다. 혹시 갈퀴달과 그 달을 에스코트 하고 나온 새벽 별, 뷔너스를 다시 볼까하고.  그러나 이미 하늘은 밝은 청색이다. 아직은 매일 새벽에 그들과 인사를 한다는 엄마 나이는 아닌가 보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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