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백조의 엄마

백조의 엄마


     희련이랑 함께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신문을 뒤적인다.
     아이가 대학 1년을 다니고 휴학을 하고 집에 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별로 활기가 없길레 갑자기 넓은 세상에 나가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에 걸린건가, 늦은 사춘기를 겪는건가 했었다. 그러다가 딸 아이의 심신이 심각하게 약해져 있는 것을 알고는 당장에 집에 데려다 놓았다.
    애들이 빨리 크기만을 바랬고 대학을 갔으니 이젠 됬다며 자상하게 살피지 못한 무심한 엄마였음을 통탄했다. 지금이라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다. 휴학하는 동안 인턴일을 하고 있는 딸아이와 모처럼의 연휴를 즐겁게 해주려고 궁리를 하던 차였다.
     백조의 호수! 발레 광고가 눈에 들어 왔다.
     한국 식품점에서 빌려 오던 한국 만화영화 '백조의 호수'를 보며 '지그프리드!, 지그프리드!' 공주 목소리를 흉내내며 놀던 희련이는 백조의 호수를 가자는 말에 순순히 오케이를 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앞에 도착할 때부터 딸의 표정이 살짝 들 뜨는 걸 알 수 있었다. 오길 잘했다 싶었다. 
오케스트라가 음을 고르는 듣기 좋은 불협음과 관객들의 웅성거림에 내 마음도 들뜬다. 프로그램을 열어 슬슬 페이지를 넘기며 '옛날옛날 어느 왕궁에 마술사가 나타나서......'로 시작하는 너무나 뻔한 백조의 공주 스토리를 읽다가 한 귀절에서 멈추었다. 뭐라고? 공주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이 호수가 되었다고? 아니, 백조가 떠 있는 그 호수가 엄마의 눈물이라고? 다시 한번 읽는다.  
호수를 이룰 만큼 흘린 눈물. 엄마가 흘린 눈물이다.
매사에 자신 만만하던 아이가 맥 없이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괜찮아. 이제부터 좀 푹 쉬면 되.' 애서 씩씩한 표정을 보여 주었지만 내 속은 무너져 내렸었다. 낯 선 기숙사 방에서 고통을 겪었을 나의 어린 딸을 생각하며 얼마나 울었나. 딸애가 세상 무게를 짊어 지고 헤메는 것도 모르고 난 뭘 했단 말인가. 목욕통에 물을 받으면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길 가다가 까르륵 웃는 딸 또레의 여자 애들을 보면 바짝 마른 내 아이가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천정으로 샨델리아가 올라가며 막이 열리는데 가슴이 메어 왔다. 눈물이 흐르는걸 내버려 두었다.
'백조의 호수' 하면 누가 뭐래도 까만 밤 호수 위에 떠 있는 하얀 백조의 신비스런 모습과 아름다운 공주와 미남 왕자를 상상할 것이다. 그 누가 호수에 대해서 잠시라도 생각을 할까. 호수가 엄마의 눈물이라는 걸 알고나 있을까? 이야기 제목을 백조 공주나 백조와 왕자라고 하지 아니고, '백조의 호수' 라고 지은 사연을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저 멀리 하얀 발레리나들의 물결을 바라본다. 호수는 말 할 것도 없고 백조의 엄마는 4막 내내 한번도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첫 장면서 부터 나는 백조 엄마 만을 생각했다. 귀에 익은 선율에서는 내 자신이 불쌍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드디어 막이 내렸다. 우리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서로 바라본다. 
희련이 내 딸. 너는 우리 집 백조공주다. 네가, 지그프리드 지그프리드 날개 짓을 할 때 엄마 호수는 조용히 너를 받쳐 줄께.아무 걱정말아라. 
희련이가 말한다 " 아, 배고프다. " 
내가 말한다."그래 우리 뭐 먹으로 갈까."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 '백조의 엄마'가 되었었던 '백조의 호수'였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2011년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문인극 대본/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등장인물 :   앙드레 지드, 나레이터, 시인 1, 2, 3, 4, 5, 6 …가수, 무용수 장면 :   거리의 카페 …테이블, 의자, 가로등… 정원 ….꽃, 화분, 벤치  숲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