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2, 2015

Locking Eyes with Columbus

There I was, grazing my hand along the robe of Christopher Columbus.
            My children had suggested that for my birthday we meet for dinner in Manhattan. That sounded like any other birthday; shouldn’t we do something special? That’s what I wanted to say, at least.
            I didn’t need a banquet in my honor, but it felt like my 60 years, which had passed in ebbs and flows like wind and waves, should be marked with something special. And they were, because I met Columbus.
While New York City was celebrating the 120th anniversary of it Columbus statue, I celebrated my own milestone.
The southwest corner of Central Park is known as Columbus Circle because of this statue. Even Mayor Michael Bloomberg, who lived in New York for five decades, confessed that he had rarely ever looked up at it. Most New Yorkers would probably say the same thing. In the countless times that I passed through the busy intersection, I never felt the urge to stop and consider the figure in the middle. I just lumped it in with all the other statues around the city.
This statue, that so many people had ignored, became the subject of sudden interest because of Tatsu Nishi, the Japanese artist who created the installation called “Discovering Columbus.”
After standing up high for over 100 years — in the snow, rain and wind — Mr. Columbus for the first time found himself in a warm home, a cozy living room. Once lonely atop his towering column, he was now being continuously sought out by visitors. Even after purchasing our tickets online, we had to endure a long, snaking line before climbing the temporary stairs and entering the room Nishi had built.
With a coffee table covered in magazines, a plush sofa, and a television set, it was like any other American living room. But in the center of it stood Columbus, enormous and proud — a truly extraordinary sight.
Paying no attention to the people crowding his room, Columbus stared into the distance. Can you see the land on the far end of ocean? As I approached closer, I noticed the sharp gaze of his eyes puncturing his concrete expression.
Those eyes discovered America.
Columbus landed on these shores in 1492. Almost 500 years later, in 1982, I landed in New York. In 1952, 60 years after the statue of Columbus was erected, I was born, and today, exactly 60 years later, I was standing in front of him.
When I rested my hand on his robe, I sensed through my fingers that this was a new land for us both. And, in a way, it was thanks to him that I was able to be here. Because I was born in the same season as Columbus Day, I was able to view this exhibition on my birthday. Nishi, it turned out, was the same age as me.
These connections felt predestined.
After descending the stairs, we walked across the street to have dinner at an Italian restaurant inside the Time Warner Center. Sitting there, we could still see the lights in Columbus’ living room outside. It felt grander than receiving bows at a traditional banquet table.
To me, Columbus is no longer just a gray statue. He and I are now acquaintances. Though I doubt I will look into his piercing eyes again, we will always be connected. Now, whenever I pass through Columbus Circle, I lift my eyes to see him. He is still staring at the land on the far end of the ocean. What are you looking for? If not for you, would I be here now?

I look up with a glint in my eye.

Saturday, June 20, 2015

김송희 선생님

구슬을 끼우는 인연


시인 김송희 선생님과 나는 실에다 구슬을 한알 한알 끼우는 인연을 갖고 있다.
정확하게 27년 전, 친구 원숙이의 소개로 그 분을 만나 시화전 그림을 그려 드렸다.
신문 삽화를 그려 보겠냐고 권하셔서 한국일보사에 하루 나가서 한 주일 분 삽화를 그리는 일을 시작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미술 기사까지 쓰면서 사흘로 늘어 났다. 1 주일에 4번 출근하는 파트 타임 직은 없다고 해서 두 아이 놓고 기자노릇하기가 어렵긴 해도 풀 타임으로 일했다. 
김송희 선생님과 함께 보람 있고 즐겁게 신문 일을 했고, 나는 아직도 신문 일을 하고 있다.
선생님은 늘 나보다 반 발짝 앞에 서서 뒤를 돌아다 봐주시고, 또 반 발짝 뒤에서 내가 내 발걸음을 재촉하게끔 해주신다. 그것이 지금까지다.
이제 책 하나 만들어 보지 않겠냐고 하셨다.
책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민기적 거릴 때 마다 선생님은 고운 말씨로 권면해 주셨다.

뒤늦게 책을 엮는 다는 건 화가들의 회고(Retrospect)전 처럼 또는 가수들의 히트곡 (greatest hit )앨범처럼 지나간 세월을 한 자리에 모아 놓는 것과 같다.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글로 쓰다보니 누가 챙겨주지 않은 내 삶을 스스로 정리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 히트곡 앨범을 만들 듯 리스트를 작성해 나갔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히트곡일지라도.
구구절절 인생조각들이 책 한 권에 모아졌다. 내 눈에는 오색의 구슬들로 끼어 만든 목걸이 같다. 
비단 채찍을 손에 들고 옆에 서 계셔 주신 김송희 선생님 덕분이다. 
28년, 29년, 30년....한알씩 한알씩 끼어나갈 인연은 다음 생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 때엔 내가 선생님의 선생님이 되어 드리면 좋겠다.



Friday, June 19, 2015

벌거 벗은 임금님

벌거 벗은 임금님


”정치 얘기와 종교 얘기는 하지마.” 가 금문률로 되어 있지만 정치와 종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네 인생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얘기가 잠깐 나오다가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면 누군가가  ‘에구 정치얘기는 관두죠.’해서 중간에 말을 멈추고 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 누구나 자기 생각과 다른 정치와 종교를 조금도 받아드릴 수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한 사람과 종교얘기를 속 시원하게 나눈 적이 있다. “참 이상해요. 뻔히 알면서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하고 그냥 이중생활을 하게 되더라구요.” A 씨 자신의 표현으 로, ’긴 터널을 뚥고 나왔다.’면서 하는 말이다. 그 터널은 종교였다.
처음 만나고 곧 A는  나에게 책 한권을 빌려 주면서 가깝게 다가왔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에 책의 저자가 내 놓은 답은 그저 지금 그대로가 완전하니까 그대로 편하게 살라는거였다. 내 맘에 들었다. 우리는 책 내용을 전개 시켰다. 어느 교회를 열정적으로 오래 다니다가  고민 끝에 나왔다는 A와는  ‘진리가 뭔가’ ‘ 신이 뭔가’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민생활 중에 친지들과 진지하게 나누어 보지 않는 이야기이다. 왠지 A에게서는 한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돌진을 하던 여학교 때 친구가 생각났다. 커다란 눈에 왠지 가냘픈 분위기까지 내 친구를 닮은 A에게 나의 인생론을 펼치기도 했다.
세상은 정말 좁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제 3자를 통해 A가 말한 교회는 흔히 이단이라고 하는 종교단체였음을 알았다. 분명히 A는 교회에 혼신을 다했었고 그러다 우울증에 걸렸으며  답을 얻으려고 사방을 헤매다가  한국에 가서 비로서 내게 빌려줬던 그 책의 저자를 만나, ‘진리는  바로 이 순간에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 이상한 종교단체에서 빠져 나올수 있었다는 것이.
그 다음번  만났을 때 나는  ㅇㅇㅇ라는 곳의 교인이셨다면서요?’  라고 말했다. 남들이 다 아는 비밀을 빨리 벗어 버리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그 얼굴을 바라보기가 민망했다. 털 빠진 채 길가에 떨어져 비를 맞고 있는 참새가 연상이 되었다.  낚시 밥을 스스로 입에 물어 버린 소설 속의 여주인공같았다.
‘ 그동안 아주 길고 긴 깜깜한 터널을 지나온 것 같아요.’라며 자기모순의 정신적 고통을 털어놓았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 교회에는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말을 못하고 그대로 살고 있는 교인들이 있다고 했다. 속속들이 가식으로 꾸며진 것을 훤히 알면서도 자진해서 벌거벗은 임금님 옷이 근사하다고 아우성을 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기 얼굴에 가면을 쓰고 말이다. 가련한 여주인공 A가 , ‘야, 임금님이 벌거 벗었다아~.’ 외친 어리 소년이 된 것이다. 그러자니, 그 군중들 앞에서 털도 뽑혔으리라. 그 아픔들을 진리 추구의 정열로 버텨 냈는가 보다. 
한 동안 A와 좀 뜸하던 차에 그가 새롭게 어느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 잘  되었구나, ‘진리가 바로 내 안에 있다,'를 터득했으니 이제는 좀 편안하게 교인들과 사귀며 만족하는 생활을 하면 좋겠구나 했다. 하지만 뭔가가 석연치 않았던 것은 장로님이 자기의 집을 교회로 사용하며 온 교인이 가족처럼 지낸다는 것이었다. 그 집 모게지는 누가 내는 데? 한 1년 쯤 후에 권사 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축하해 줬는데 또 얼마가 지나서는 '노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라며 그 장로님과의 갈등으로 목사님이랑 함께 그 교회를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예 소식이 끊겼다. 나 역시도 연락하게 되질 않는다. 
우리가 종교 이야기로 마음이 통했던 것이 허상이었나 보다. 금문율이 맞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에 대한 것은 남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보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민주당이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공화당인 것 처럼. 내 남편과 내가 평행선을 그으며 한 지붕아래서 우파 좌파로 나뉘는 것 처럼 각각 자기 세계 속에서 사는 거다.
열정적인 성격의 내 여학교 친구와 참 많이 닮은 A와 언젠가는 다시 차를 마시면서 혹시 또 털이라도 뽑혀가면서 또 겪어 낸 종교이야기...... 결국은 답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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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웨이크닝

어웨이크닝 awakening


소설가 케이트 쇼팽이란 이름을 북클럽에서 처음 들었다.
1899년 발표 된 ‘어웨이크닝’이란 작품은 악평을 받았다고 한다. 주인공 여성이 보통 가정의 정숙한 부인으로서는 생각 할 수 없는 자유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1879년 노라가 집을 뛰쳐 나갔다는 이유로 연극 공연까지 취소되었던 ‘인형의 집’ 이후 아마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여자가 남자의 인형노릇에서 벗어난 이야기였는가보다. 어쨋든 웬만큼 작가로서 알려져 있던 케이트 쇼팽은 그 소설로 인해 출판계에서 외면을 당했고 5년후에는 세상을 떠난다. 

잊혀졌던 ‘어웨이크닝’이 70여년이 지나 재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특히 패미니스트들에게는 필독서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북클럽 선생님인 영문학 교수는 이 책을 대학 1학년 때 과제로 읽었는데 20대인 그 때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뭘 알고 숙제까지 써 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년에 가까운 북클럽 맴버들은 가정에서 부터 남녀 불평등을 겪는 이야기와 요즘 한국의 젊은 여자들이 커리어를 갖기보다는 돈 많은 남자에게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할 수 없이 인형으로 사는 것 하고 자진해서 새장 속으로 들어가는 새하고는 천지차이다. 하긴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인형인줄 모르고 살고 있다. 까마득한 원시시대 언젠가에 모계사회가 있었다고 배웠다. 그것이 무슨 이유로 끊어져 버렸는지 모르지만 창세기부터  이 세상은 남자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100년도 안 됀 짧은 역사 속에 여성의 위치가 조금씩 변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100년 세월이 더 걸리면 남녀가 완전 평등한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과연 남녀 평등이라는 것이 존재할런지.
케이트 쇼팽은 여자가 남자의 종속 물로 살고 있는 것에서부터 나오라고 외쳤을까? 아니다,
주인공 에드나 폰티엘리가 어느날 밤 울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감정의 움직임에 충실하여 외간 남자를 불러 내고, 서서히 남편에게서 독립하는 것 까지,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까지, 케이트 쇼팽은 여자에게 '깨우치라'고 속삮이고 있었다.
'…………. 한마디로, 미세즈 폰티엘리는 이 우주속에서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이 세상과 자신과의 관계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28살이라는 젊은 여성이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지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여성들에게나 내려주시는 성령의 은혜로우신 지혜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다…………'
어린시절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 뛰쳐 나와 초원을가로 질러 뛰어 간 일을 회상하는 에드나는, 그 때 처럼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목적없이 안내자 없이 초록색 들판을 뛰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유독 여자여서만은 아니다.우리는 뚜렷한 의식을 갖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끈에 메여 살고 있지 않은가.  불행으로 끝나는 소설의 주인공은 적어도 생애 처음으로  ‘자유’의 느낌을 누린다. 1899년에는 여자가 자유의 느낌을 맛 본것을 탓했다. 지금은 달라진 세상이다. 여자가 자유롭게 산다지만, 과연 나는 진정한 '자유'를 알고 있는가. 진정한 자유를 누려봤을까?

케이트 쇼팽이 말하는 것은 여성이건 남성이건 이미 세세히 그어진 인생잣대에서부터의 순수한 해방이 아닐까.

어웨이크닝을 읽으며 내 자신이 새삼스럽게 어웨크닝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눈 앞에서 온 세상이 뱅뱅 돌며 시시각각으로 요동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가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내가 찾아내야 할것은 내 자신이며 그것을 각성하는 일이 급하다는 생각이다. 짧은 인생을 산 케이트 쇼팽이 흘리고 간 한마디 ‘어웨이크닝’이 60년 넘은 나른한 잠에서 나를 깨워준다.


2011년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문인극 대본/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등장인물 :   앙드레 지드, 나레이터, 시인 1, 2, 3, 4, 5, 6 …가수, 무용수 장면 :   거리의 카페 …테이블, 의자, 가로등… 정원 ….꽃, 화분, 벤치  숲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