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19, 2015

벌거 벗은 임금님

벌거 벗은 임금님


”정치 얘기와 종교 얘기는 하지마.” 가 금문률로 되어 있지만 정치와 종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네 인생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얘기가 잠깐 나오다가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면 누군가가  ‘에구 정치얘기는 관두죠.’해서 중간에 말을 멈추고 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 누구나 자기 생각과 다른 정치와 종교를 조금도 받아드릴 수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한 사람과 종교얘기를 속 시원하게 나눈 적이 있다. “참 이상해요. 뻔히 알면서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하고 그냥 이중생활을 하게 되더라구요.” A 씨 자신의 표현으 로, ’긴 터널을 뚥고 나왔다.’면서 하는 말이다. 그 터널은 종교였다.
처음 만나고 곧 A는  나에게 책 한권을 빌려 주면서 가깝게 다가왔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에 책의 저자가 내 놓은 답은 그저 지금 그대로가 완전하니까 그대로 편하게 살라는거였다. 내 맘에 들었다. 우리는 책 내용을 전개 시켰다. 어느 교회를 열정적으로 오래 다니다가  고민 끝에 나왔다는 A와는  ‘진리가 뭔가’ ‘ 신이 뭔가’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민생활 중에 친지들과 진지하게 나누어 보지 않는 이야기이다. 왠지 A에게서는 한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돌진을 하던 여학교 때 친구가 생각났다. 커다란 눈에 왠지 가냘픈 분위기까지 내 친구를 닮은 A에게 나의 인생론을 펼치기도 했다.
세상은 정말 좁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제 3자를 통해 A가 말한 교회는 흔히 이단이라고 하는 종교단체였음을 알았다. 분명히 A는 교회에 혼신을 다했었고 그러다 우울증에 걸렸으며  답을 얻으려고 사방을 헤매다가  한국에 가서 비로서 내게 빌려줬던 그 책의 저자를 만나, ‘진리는  바로 이 순간에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 이상한 종교단체에서 빠져 나올수 있었다는 것이.
그 다음번  만났을 때 나는  ㅇㅇㅇ라는 곳의 교인이셨다면서요?’  라고 말했다. 남들이 다 아는 비밀을 빨리 벗어 버리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그 얼굴을 바라보기가 민망했다. 털 빠진 채 길가에 떨어져 비를 맞고 있는 참새가 연상이 되었다.  낚시 밥을 스스로 입에 물어 버린 소설 속의 여주인공같았다.
‘ 그동안 아주 길고 긴 깜깜한 터널을 지나온 것 같아요.’라며 자기모순의 정신적 고통을 털어놓았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 교회에는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말을 못하고 그대로 살고 있는 교인들이 있다고 했다. 속속들이 가식으로 꾸며진 것을 훤히 알면서도 자진해서 벌거벗은 임금님 옷이 근사하다고 아우성을 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기 얼굴에 가면을 쓰고 말이다. 가련한 여주인공 A가 , ‘야, 임금님이 벌거 벗었다아~.’ 외친 어리 소년이 된 것이다. 그러자니, 그 군중들 앞에서 털도 뽑혔으리라. 그 아픔들을 진리 추구의 정열로 버텨 냈는가 보다. 
한 동안 A와 좀 뜸하던 차에 그가 새롭게 어느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 잘  되었구나, ‘진리가 바로 내 안에 있다,'를 터득했으니 이제는 좀 편안하게 교인들과 사귀며 만족하는 생활을 하면 좋겠구나 했다. 하지만 뭔가가 석연치 않았던 것은 장로님이 자기의 집을 교회로 사용하며 온 교인이 가족처럼 지낸다는 것이었다. 그 집 모게지는 누가 내는 데? 한 1년 쯤 후에 권사 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축하해 줬는데 또 얼마가 지나서는 '노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라며 그 장로님과의 갈등으로 목사님이랑 함께 그 교회를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예 소식이 끊겼다. 나 역시도 연락하게 되질 않는다. 
우리가 종교 이야기로 마음이 통했던 것이 허상이었나 보다. 금문율이 맞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에 대한 것은 남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보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민주당이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공화당인 것 처럼. 내 남편과 내가 평행선을 그으며 한 지붕아래서 우파 좌파로 나뉘는 것 처럼 각각 자기 세계 속에서 사는 거다.
열정적인 성격의 내 여학교 친구와 참 많이 닮은 A와 언젠가는 다시 차를 마시면서 혹시 또 털이라도 뽑혀가면서 또 겪어 낸 종교이야기...... 결국은 답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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