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27, 2023

소설 같은 이야기 8

가십 Gossip


스테인레스 커피 메이커 앞에 설탕가루가 흩어져 있다.

오영이가 커피 메이커 꼭지를 누르자, 피지직 소리에 커피 찌꺼기가 섞인 커피가 나온다.  우유가 담겨 있던 컵도 비어 있었다. 커피 잔을 들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지만, 오영이가 자리를 떴었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뭐랬어 내가, 그러니까. 그러면 안돼. 절대로 먼저 말하면 안된다고. ”

김권사가 두째 손가락을 저으며 목소리를 낮춘다.

“그렇지만…애들이 힘들 건 뻔한데...”

신미숙 집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김권사가 “처음에 꿰어들면 영영 못 빠져나와.” 라고 했지만 신 집사도 집요하다. “걔네들 고생도 고생이지만, 아, 내가 가고 싶은 거지요. 애기가 보고 싶어서요.” 한다.

“그러니까 독하게 맘 먹으라는 거지. 이게 다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야.”

찰라같은 침묵을 깨며 김 권사 옆에 앉아 있던 박혜영집사가 몸을 앞으로 기운다. 

“맞아요. 저도 항상 애들이 부르기도 전에 만일을 다 제쳐 놓고 갔어요. 그러면서도 혹시 엉뚱한 시간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고, 나 간다 미리 알려주고 말이예요. 그리고 갈 땐 또 얼마나 싸 들고 가는데요. … 근데…” 박 집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근데? 거봐요. 결과가 뭐냐구? 응?” 김권사의 의기가 양양하다.


오영은 무의식 중에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 가며 여자들이 말을 할때마다 번갈아 바라보면서도 한 마디도 껴들지를 않는다. 할말이 없었다. 어떻게 자기 자식이 낳은 아이를 봐주는 일이 저렇게도 어렵다고들 하는지...

“ 나를 봐요. 그렇게나 손자를 봐준 이 에미한테 눈치가 없다는 등, 뭘 고장트렸다는 등, 나참. 배신감이 들더라구요” 배신을 당한것 같다고 말하는 박혜영 집사는 오히려 신이 난듯하다.

"아니, 며누리가 그래요?" 신미숙 집사 눈이 반짝한다.

"아들이 그러지요. 하지만 누가 그랬겠어요. 뻔하지요 뭐."

“딸은 안 그럴 것 같지. 어림없어요." 김권사의 의기가 계속 더 양양하다.

"며느리보다 더해. 완전히 자기 엄마가 무슨 파출부나 되는 양 부려 먹어. 그러니까 아예 첨부터 애 봐준다는 소리는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봐 달라고 지들이 먼저 부탁 할 때 생색을 내야 하는거라구.”


삼삼 오오 앉은 여자들 사이에서 돌아가는 세상을 한발작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오영이 교회에 오는 이유 중에 하나다. Based on the true story 로 꾸며볼 소설 감이다. 예배가 끝나고 삼삼오오 다과실을 향하면서부터 세상 사가 시작되며 커피 테이블에 줄을 선채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테이블에 앉으면 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딱 주말 연속극이다. 옷차림이며 장신구들이 배경으로 한 몫을 하면서 말이다.


누군가의 “오늘 주집사 안 보이네.” 말 한마디에 곧장 대하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러네요. 지난 주엔 왔는데, 예배만 보고 그냥 간거 아닌가.’

‘그렇잖아도 지난 주에 그러더라구요. 가게  리즈가 끝나가는데 랜드로드가 랜트비를 올리려는지 소식이 없다고 하던데’

‘저런, 그 집 아직 대학다니는 애들이 있는데 말이예요 .’

‘그 애는 벌써 몇 년째나 대학을 다니고 있는 거예요?’

걱정이 아니라 집요한 호기심이라는 걸 아는 오영은 언젠가 주집사 세탁소에 한번 갔었던 일을 생각을 한다. 


집 가까운 한국인 세탁소에 갈 때 마다 오영은 번번히 “네에. 저어, 그냥 30불만 주세요.”하는 주인 여자랑 싱겡이를 한다. 주인 여자가 들고 있는 쪽지를 뺏어보면, 42불이라고 적혀있다. 재빨리 20불짜리 두 장을 주고는 도망나오듯 세탁소를 나오곤 한다. 한번은, 울 스웨터 몇개와 실크 스카프 몇 장을 들고, 한국사람이 아니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몇 블럭 더 먼 세탁소에 갔었다. 스페니쉬 종업원이 세탁물을 받았다. 그러나 찾으러 갔을 때, 크림색 스카프 한 구석 헝겊이 밀려 있는 걸 지적하자 종업원이 주인을 불렀다. 뒤 쪽에서  한국 여자가 나오며 “아 그거 우리 애가 받았을 때 그렇게 되어있다고 하던데.” 한다.

오영이 '이제 여기는 끝이네' 했었는데, 얼마 후 그 여자를 교회에서 만났다.

그러나 둘 다 다 서로 모른 척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다과실의 옅은 녹두색 벽에 걸린 그림은 아무런 특징이 없는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고들 하는 풍경화지만, 자세히 보면 검푸르게 우거진 숲과 짙은 초록색 수풀과 이름모를 풀사이로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는 그 그림을 오영은 다과실로 들어서면서 꼭 한번씩 지긋이 바라보곤 한다. 지금 보면 너무나 잘 알겠는 너무나 미국적인 풍경인데도 이 그림을 볼 때 마다 젊은 시절 어딜 가나 이런 그림을 보던 한국이 생각이 난다.

한 구석에 놓여 진 작은 그랜드 피아노며, 골동품스런 탁자와 쿠션이 푹 꺼진 소파에서 그 옛날 이 교회의 전성시대가 보인다. 정장으로 차려 입은 백인 남녀가 도너츠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화기애애하다. 그들이 쓰던 사기 커피잔과 그릇 세트가 다과실 앞 팬트리에 가득하다.


높은 첨탑에 높다란 천정까지 닿는 스테인드 글래스 창을 통과한 햋빛이 성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는 이 교회 건물을 거저 갖다싶이 차지를 한 한국교인들이 지금 뒤 늦게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오영의 남편은 남자들 자리로 가고, 오영은 늘 앉는 자리로 가서 일단 커피 잔을 놓고는 좀 뜸을 드리다 앉는다. 다과 당번이 미리 갖다 놓은 머핀이나 삶은 계란이랑 클레멘타인이 사기 그릇에 담겨 있는 테이블에 너무 일찍 앉아도 미안하고, 그러다 자리를 빼앗기면 잘 모르는 사람들 옆에 가 앉아야 하니까.

오영을 제일 반가와 하는 사람은 늘 김 권사다. “아이고, 잘 지냈어?” 반말이지만, 워낙 카리스마가 있어서인가 어색하지는 않다. 그리고 신 집사 박 집사가 핸드백을 상위에 놓고, 커피를 가지러 간다. 그 옆자리에 앉는 여자신도들과도 눈인사는 나누지만 이야기를 할 때엔 늘 이 세사람들과 하게 된다. 실은 오영은 말을 별로 하지 않지만, 그 들이 커피 잔을 들고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무슨 말을 꺼내는가가 그날 대화의 주제가 되곤한다.


오영이 이 교회에 온지 어느 새 2년이 되었다.

딸이 살고 있는 이곳으로 오기로 할 때 뭐든 다시 시작을 하겠다는 각오였고, 교회를 나가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었기에 이 교회 문을 들어서는 첫날엔 돌아온 탕자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했다.


예배시간에 새교인 소개를 받긴 했지만, 친교실 입구에서 좀 머뭇거리고 있을 때 김권사가 다가와 손을 끈다. “여기, 여기 앉아요. 오늘 새로 오셨지.” 구세주였다.

남자들 테이블에서도 새로온 교인을 반겨주며, 다과 접시를 앞으로 땡겨 주더라고 말하는 남편도 약간 흥분해 보였다. 오영은 이 교회 고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교회를 다녀오면  오영은 즉시 다시  교회에 갈 준비를 했다. 마음 준비다.

처음부터 어디서 무엇을 하다 이 교회에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시간이 갈수록 부담스럽기도 했다. 갑자기 등장한 교인이 어떤 과거를 갖고 있는지를, 본인이 말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는 건 실례라는 건 한국 교회의 불문률의 하나인가.   처음에 오영은 필라델피아에서 살다가 화학자인 남편이 IBM으로 오게 되어 왔다고 했고 자기는 시내에 있는 미국 변호사 사무실에 사무원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고 자진 신고를 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자세히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교회에 갈 마음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말문이 터지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릴 여신도들을 맞아야 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여신도들 대화는 우선 고생스럽다 걱정스럽다로 시작하여 결국은 자랑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뭐든 잘 모르겠다 힘들다면서도 실은 얼마나 자기가 잘하고 있는가를 이야기 하는 건,  오영이 별로 끼어들지 않았던 전에 다니던 교회와 별 다를 바는 없다. 진흙 바닥에 두 발을 넓게 딛고서서 격렬하게 억척스레 살아내고는 아들은 변호사다 딸은 치과의사다 아들은 방 6개 집에 산다 딸은 빠리 지사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하며, 전화기에서 손자손녀 사진을 보여주는 여자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했었더라면…..한다.


손녀 아이 봐주러 간다고 한마디 했다가 궁지에 몰려 있는 신집사를 흘끔 보면서, 이때다, 오영이 “저는 요.” 입을 열자, 세 여자가 동시에 오영을 바라본다. 

“저, 저는 요. 아예, 애기 봐주겠다고 딸한테 말했어요. 결혼도 안 했는데요.”

워낙 말이 없는 여자가 말을 하니까 다들 놀란 듯이 오영을 바라본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정말 놀랐는지 아무도 아무 말이 없다.


‘아, 경험자의 이야기를 듣고도 생뚱맞은 소리를 하네. 어디 애기 봐 주게 생기지도 않았는데 뭐….’라고 하는 말이 들리는 듯 했지만, 오영이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숨을 크게 들여쉬는데, 다른 테이블의 교인들이 한둘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영의 테이블도 술렁한다.

김권사가 오영의 눈치를 보며 “아, 왜들 벌써 일어서? ” 하자, “네에 아들네가 와서요.”  “장 좀 보고 가려구요.” 신집사 박집사가 동시에 말을 한다.

오영은 벽시계를 바라본다. 밤색 나무 가장자리가 희끗해진 골동 시계지만 시간은 잘 맞는다. 보통 이 시간이면 다과시간이 끝난다.

역시 마무리는 김권사다. 다정하다할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김권사가 말한다.

“아직  결혼도 안한 딸이라고? 에구 두고 봐요. 그게 쉽지 않은 일이야.” 웃는 소리가 크다. 

뒷 모습을 보인 신집사 박집사로부턷 일부러 내듯한 웃는 소리가 들린다.

오영도 천천히 일어선다.

'언제 또 이렇게 이야기를 할 찬스가 오겠는가.'

자연스럽게 과거를 말하려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허무가 살며시어깨를 내려 누른다.


가끔은 오영도 숫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며 밥 같이 먹자는 여신도들과 똑 같이 웃고 떠들고 싶었다. 살림을 못한다면서 대학원까지 다닌 자랑도 좀하고, 영어가 어려워 고생하면서 영어로 된 책을 읽어야 하는 직업으로 단 한번도 편히 살지 못했다는 걸 은근히 알리고 싶었고 그리고 남들처럼 딸 흉을 보면서 아이비 리그를 간 딸 자랑도 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정체를 좀 더 밝혀야만 하는데. 감히 어떻게  이혼녀라는 말을 할수 있을까. 그것도 30년 산 남편을 버리고 19살 첫사랑을 찾아갔다는 거, 지금 첫사랑 남편이 IBM에 다니는 건 맞지만, 화학자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하는 말단직이라는 거, 그리고  또 하나, 자기가 미국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게 아니고, 실은 집에서 글을 쓰며 번역일을 하고 있다고 이실직고를 할 수 있냐 말이다. 남편 직장 따라서가 아니라, 엄마에 대한 반항으로 집을 나간 딸을 찾아왔다는 말을 어떻게 한단말인가.


여신도들 사이에서 손자 손녀 봐주는 이야기 끝에 '딸'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마자, 내 딸은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을 했다는 얘기로 말문을 트려고 했다.

모든 걸 털어놓고 편해지고 싶었다. 이혼보다도 더 어려웠던 딸과의 문제가 이제는 엉킨 줄이 풀리듯 풀렸는데도, 매 주일 만나는 여자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자기를 풀어주고 싶었는데...


딸과 연락두절로 지낸 세월이 먼먼 옛날일로 느껴진다.

'오늘도 소식이 없다.' '여기도 연락이 안된다.' 하루씩 지워 나가던 어느 날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띵!하며 “Umma, how are you” 텍스트 메시지가 튀어나온다. ‘엄마’라는 단어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Umma I miss you’....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자판기 위의 손가락이 벌벌 떨린다. 'where are you?'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이 인생 이렇게 사는 게 맞는건가?

진즉, <이 남자랑 살지 않을테니 속히 집으로 오너라 >했어야 했는데, 왜 못했냐구.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오영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이 남자와 옆자리에 앉았었다. 다음날 첫번 데이트를 했고 다음날 또 만나고 그다음날도 만났다. 눈에 보이는 것 알고 있는 것 무엇이든 이야기를 시작하면 둘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할수 있었다. 아니 아무말 없이 그냥 이 남자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좋았다. 오영은 처음부터 사투리를 쓰는 이 남자와 만난다는 걸 숨겼지만 오래 가지 않아 언니한테 들켰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집안이 비슷해야한다는 설교를 들었다. 그래도 계속 몰래 만다다가 결국, 지쳐서 정식으로 헤어졌다. 교정에서 마주칠때 오영의 얼굴을 감싸쥐듯하는 남자의 눈빛에 멍든 살을 만지듯 아팠던 가슴. 어느날 이 남자가 마구 앞으로 다가와 '나 군대가'라고 한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때 아무 대답도 못한 것이 가슴 아래 맺혀있는 오영에게 졸업도 하기 전에, 미국 유학생이 색시감 찾으로 나왔다는 중매가 들어왔다.

미국에 가면 이 남자를 잊어버리겠지 했다. 미국가서 공부하여 꼭 성공하리라 결심을 하며, 양가 가족들에게 활짝 웃어 보이며 김포공항을 떠나왔었다.  


낯선 곳에서 산 나날의 숫자만큼 오영의 가슴에는 이 남자의 못이 박혀있다는 걸 깨달았던 때에는 딸아이가 막 대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두 손에 움켜지고 있던 딸이 손가락 사이로 물이빠지듯 떠나가는 것 같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기만 한 남편에게서 가슴이 돌덩이가 되는 답답함을 느끼던 때였다. 오영이 미술교실 강사직을 하고 있던 윌밍톤 시니어 센터에서 이 남자를 만났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20년 만에 마주쳤다. 얼굴보다 먼저 본 것은 뒷 문을 배경으로 걸어오는 이 남자의 실루엣이다. 둘은 얼어붙었다.

아내가 세상 떠난지 2년이 되었다고 했다. 시니어 센터 디렉터로 있는 친구를 찾아왔다가 오영을 만난 이 남자는 매 주말이면 뉴욕에서 버지니아로 찾아왔다. 어차피 둘은 몰래 만나는 것에이력이 나있었다. 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며 꽃 봉오리가 맺히는 듯 했던 오영은 그러나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굉장한 인내심이었지만, 20년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얘, 엄마 옛날 얘기 좀 해줄까 ?” 딸과 같은 나이였을 때의 절절한 한국식 사랑이야기를 듣는 딸은 은 '오 와우. 홧 어 라이프.' 뻘금한 얼굴이었다.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며 결혼관계를 끝냈을 때 오영은 딸의 행방을 알수 없었다.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한국 커뮤니티 안에서 오영은 움츠러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던 교회 생활은 물론, 한국 식품점에 가는 일도 두려웠다. 


오영의 새살림은 윌밍톤과 뉴욕 중간 지점 어느 외딴 도시 작은 아파트에 차렸다. 이 남자의 아들들은 외롭던 아버지가 옛날 연인을 만난 것에 안심을 한 듯했다. 그러나 깜깜 무소식 딸아이가 자기 아버지와는 연락을 한다는 소리가 들렸을 때 오영은 과연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연애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신도들에게 잃었던 딸 찾아서 이리로 왔다는 말을 하면 흥미로워서라도 잘 들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차마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 “아 딸도 소용없어. 이것들이 엄마를 완전 파출부로 여긴다고.” 맞아. 아마 그렇겠지. 딸의 그 당돌한 얼굴  표정을 떠 올리면 얘도 능히 그럴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먼저 엄마를 찾았잖아.  자기도 곧 엄마가 될 생각에 엄마를 찾은 것 아니겠어. 맞아 엄마는 엄마야. 

10살 위의 미국 남자인 딸의 애인을 만났을 때, 아니 얘가 이 늙은 남자와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를 먼저 걱정했는데, 어느 날 딸의 “Umma, I got pregnant” 텍스트에 오영은 뛸 듯이 기뻤다. 그래 내가 아가를 봐 줄께. 변호사일이 얼마나 힘든 지 내가 잘 아는데….했었다. 


딸의 아이를 봐주겠다는 건, 옛사랑 때문에 가정을 저버렸다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지워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건 지워질 일이 아니다. 낯선 곳에서 언어마저 어설프게 키워낸 딸을 위해 뭐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더구나 엄마에 대한 갈등까지 겪어낸 딸이라서 더욱더 무조건일 뿐이다. 이말을 여신도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과연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이 세상에 내보내는 이치에는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 이것이 무슨 본능이란 말인가.  딸의 연락을 받고부터 오영은 저절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죄 없는 남편을 무정하게 버렸지만, 헬레나가 엄마를 찾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둘도 없는 엄마로서 살수 있게 해주세요.’ 했었고, 요즈음은 ‘하나님 내가 죽어서 내 몸이 다시 사는지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분명하게 알수 있는건 헬레나 속에 들어있는 나의 존재입니다. 하나님, 헬레나가 낳은 아가 속에도 내가 끊임 없이 부활해 나간다는 생각에,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편안히 여신도들과 풋사랑 때문에 백년가약한 남편을 저버린 말을 해볼까도 했던 오영이, 다과실을 나와 교회 주차장으로 걸어가면  풋사랑 첫사랑 남편을 보며 새삼스럽게 그의 거므스름한 얼굴에 흰머리가 돋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셀폰의 Mute를 해제하려는데, 띵! 딸의 텍스트가 들어온다. “I have to go to the hospital. Steven is not here.” 


“ 아이고. 창식아. 빨리 가자.” 오영이 남편한테 명령을 하고는 곧 전남편에게 텍스트를 보낸다.

“헬레나가 병원에 갔대요. 지금 병원으로가요.”

GPS에 142 E. 23rd st. 을 입력하는 데 전남편 메시지가 들어온다. "연락 기다릴께."

운전을 거칠게 하는 이 남자를 보면서 말리기는 커녕 오영은 헬레나의 아가를 볼 마음이 급하기만 하다. 아니 애 봐주는 일이 뭐 그렇게 큰 문제라고, 아니 애 봐주기가 수다감이 되냐구. 뭐 부모자식간에 거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영은 여신도 아줌마들에게 이 복잡한 인생 스토리를  말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말할 필요가 뭐 있어. 말한다고 이해해 줄 사람들이 아니야. 어디 얼마나 가자 보자 테지. 그들의 겉과 속이 더 달라질 뿐이겠지. 재미있는 가십거리만 만들어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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