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8, 2015

뮤지움 어브 이노선스

뮤지움 어브 이노선스

빠듯한 2박 3일 이스탄불 여정에 ‘뮤지움 어브 이노선스(Museum of Innocence)’를 포함시켰다. ‘뮤지움 어브 이노선스’ 는 말 그대로 뮤지움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제목이다. 노벨상을 받은 터어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자신이 쓴 소설에 나오는 온갖 생활 용품들을 모아 미술관을 만들었다. 한 마디로 자기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소설가 자신이 꾸며 낸 소설 뮤지움이다.
‘뮤지움  어브 이노선스’ 웹 싸이트에는 이 책을 갖고 오면 무료 입장이라고 했다. 짐을 덜어 볼까 계산해보니 책 값과 입장료가 비슷하다고 보김 씨가 급히 책 두권을 샀다. 그러나 여행 전에 이 책을 읽어볼 겨를이 없었다.

영행을 결정하고 얼마 후에 오르한 파묵이 쓴 '이스탄불'이라는 책을 샀다. 약속과 약속 사이의 남ㄴ는 시간에 들른 대학교 앞 작은 책방에서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이라는 책을 발견한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한번도 이스탄불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이스탄불 토박이인 세계적인 작가가 쓴  ‘이스탄불’이니 얼마나 잘 썼을까 했다.
'이스탄불'은 관광책자가 아니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삼춘 고모들과 함께 살던 4층 집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스탄불이 분위기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앞 부분에 할머니가 쓰던 방을 ‘뮤지움’같다고 한 부분이 있다. 그릇장이며 탁자위의 물건들이 남에게 보일려고 놓여져있다는 점을 간파한 오르한 파묵이었다.

‘뮤지움 어브 이노선스’가 저녁 8시까지 오픈을 했던 것은 행운이었다. 궁전과 신전과 몇 백년 된 거리들이 있는 올드 타운에서 보스포로스 강을 건너가니 이 곳은 서울의 강남과는 다르게 마치 명륜동이나 삼청동 같은 오래 된 부촌이었다. 좁다란 언덕 길에 다닥다닥 붙은 3, 4층 건물 중에 아무 특징도 없이 끼어 있는 ‘뮤지움 어브 이노선스’를 처음엔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어둠이 깔리는 골목길에서 엽서만한 간판이 겨우 눈에 띄였다.
우리는 책 뒷 장을 펼쳐 입장허가 도장을 받았다. 소설 주인공 남자의 실제 인물이 살던 집이라고 했다. 그와 그의 애인이 피운 담배 꽁초 수 천개가 마치 컨템포러리 아트처럼 뮤지움 1층 벽 한면을 채우고 있다. 립스틱이 묻어 있는 담배 꽁초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처절한 사랑을 암시해주는 듯 했다.

층층 마다 1970년대 터어키 중산층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느 그릇장과 다를 바 없는 호마이카 그릇장 안에 찻잔, 접시, 핸드 빽, 안경, 인형, 시계, 낡은 사진과 신문 조각, 통조림 통, 포도주 병,구두와 여행가방, 부로치, 반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뮤지움에 전시될 물건들이 아니다. 소설의 장면에 맞추어 미니에츄어 가로등과 건물로 거리를 묘사해 놓기도 한 철저하고 꼼꼼한 작가의 손길이 구석 구석 배어 있었다.

이스탄불의 특미라는 애플 티(Apple Tea) 유리 잔은 여러 곳에 놓여 있다. 우리도 토카피 궁전 카페에서 애플 티를  맛 보았던 터라 오르한 파묵이 전시해 놓은 애플 티잔에 눈이 갔다. 아마도 남녀 주인공이 애플 티를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한 젊은 여자가 층층마다 열심히 관찰하며 노트를 하고 있었다. 분명 문학도이다.

어서 빨리 이 소설을 읽어야 겠다. 아니 미리 소설을 읽었어야만 했을까? 그래야 작가가 철저하게 기획해 놓은  온갖 물건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소설의 세계로 빠져 들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나쁘지는 않다. 뒤 늦게 소설을 읽으면서 한 중년의 부자 남자와 가난한 젊은 여자의  연애 이야기의 장면장면이 생생하게 그려 질테니까. 어쩌면 애플 티를 예쁜 유리 잔에 따라 마시면 책 읽는 재미가 더하리라.
뮤지움 어브 이노선스를 나와 600년전에 세워졌다는 갈라타 타워로 갔다. 관망대에서 바라본 강 건너 올드 이스탄불의 성전 건물들은 관광객을 위해 오색찬란하게 밝혀져있었다.
'뮤지움 오브 이노선스'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이스탄불 거리를 거닐어 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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