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7, 2015

갈퀴 달과 뷔너스

갈퀴 달과 뷔너스


창으로 하늘이 들어 온다. 밤새 또 눈이 왔나. 고개를 들고 무심코 밖을 바라보다 깜짝 놀랐다. 짙은 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가늘게 얼키고 설킨 새 까만 나무가지들 사이에  가느다란 조각 달 하나와 빤짝하는 별 하나가 걸려 있다. 가슴이 뛰었다.
'아. 엄마가 말 하던게 저거구나. '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찾았다.
철컥 철컥. 저 광경이 사라질까봐 빨리빨리 셔터를 누른다. 잠이 다 달아난 김에 내쳐 컴퓨터 앞에 앉아 어머니에게 이 메일을 썼다. ‘엄마, 이거지?  엄마가 말하던 그 달과 별,  맞지?’ 사진을 첨부한다.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바ㅡ로 저 갈퀴 달에다 에스코ㅡ트 하듯 같이 나타나는 금성 뷔너스. 나도  매일 새벽 5. 6시경 동쪽 하늘의 그들과 인사부터 한다요. 네 사진의 달, 내 일기장의 달과 꼭 같고."  
뭉클하다. '엄마는 그 달과 별을 일기장에 그렸구나.'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자주 들려 주던 이야기가 있다. 오빠들이 망원경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별을 바라 보는 것을 보던 어린 마음에 '저 별들이 떠 있는 하늘 너머는 뭘까 ? 또 그 하늘 다음엔 뭐가 있을까, 그 다음엔......' 생각하다가 무서워서 울었다는 이야기다. 
20년 넘게  혼자 사시는 엄마의 중요한 일과는 창 밖 내다보기다. 매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서 부터 건너편 아파트에 불이 켜질 때까지 바쁘게 오가는 바깥 세상 보기를 하신다. 세계의 도시라는 뉴욕 딸 집에 오셔서도 하루 종일 집에 갖혀 지내셨으니 결국은 또 창 밖 내다보기를 하셨다. 우리 집에서의 바깥 세상은 나무로 둘러 쌓인 앞 뒤 집 밖에 없다.
나와 잠시 얼굴이 마주치기만 하면  ‘해가 뜰 때는 저 뒷집 나무 사이에  빨간 점 하나로 시작 된다’라든가, ‘해뜨는 자리가 점점 북쪽으로 옮겨간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다. 새벽부터 창 밖을 내다 보셨던 것이다. 조각 달과 금성이라는 말도 자주 들었지만 그저 응응 하곤 했었다.
요즈음 끄떡하면 창을 내다보는 나를 발견한다. ‘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하던 어머니의 말이 여기저기 맞아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하늘 쳐다보는 일까지 그 나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저녁에 차에서 내려 현관 까지 가는 짧은 시간에도 하늘을 올려다 본다. 집 앞 큰  나무를 가운데 두고 구름과 달과 별 들이 서서히 자리를 바꾸는 것을 바라본다. 유난히 밝은 북극성을 찾아 보고, W모양의 카시오페아와 별 세개로 허리 띠를 한 사각 형 오리온 좌를 찾느라 고개를 돌린다. 한 번은 플로리다에서 초 저녁 비행기를 탔는데  창 밖을 보니, 집에서 보던 것 보다 훨씬 더 커다란 오리온 좌가 검 푸른 바다 속으로 한 발을 담그고 있었다.
눈섶 같은 초생달을 보고, 노을진 하늘에 홀로 빛나는 계명성도 본다. 점 같은 별 하나를 놓고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서서히 다이아몬드 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차가운 빛을 발하며 나에게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별 하나 나하나 별둘 나 둘….. 할 때의 그 별인가.  한 번 반짝한 저 빛이 몇 천만 광년이 걸려 내 눈에 들어 온 것이라고 했던가? 고대 사람들은 바로 저 별 을 보며 세상을 판단했다는 것이지.
태양계를 넘고 은하계를 넘어 그 다음으로 또 그 다음으로 한도 없이 뿌려져 있는 별 덩어리들을 생각하다가, 어머니 처럼 눈물이 날 뻔 한다. 
빅 뱅 이후 38만 년 쯤 지나서의 모습이라는 타원형 우주지도가 색맹 검사 챠트같았다. 이 세상의 생이 끝나면 가는 곳이 저 아름다운 그림 속 어디쯤 일까?
오늘 아침에도 문득 침대 머리 맡 창문을 내다 본다. '갈퀴 달과 그 달을 에스코트 하고 나온 새벽 별 뷔너스'가 있나 하고.  그러나 창 밖에는 해가 가득하다. 아직은 매일 새벽 그들과 인사를 한다는 엄마 나이는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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