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7, 2015

세탁소 아저씨와 대통령

대통령과 세탁소 아저씨

클린톤 대통령이 내 앞에서 양복을 입고 벗고 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좋은 이웃이 되어주고 있는 클린톤 부부, 언제까지 이 곳에 살 것인지?'라는 뉴욕 타임즈 기사 
에 실린 몇 개의 사진 중 하나에 내 시선이 멈추었다. 빌 클린톤과 나란히 선 한국인의사진이다.  사진 설명에는 클린톤이 다이어트로 살이 빠졌을 때 양복을 줄여 준  단골 세탁소에 걸린 사진이라고 했다. 클린톤 부부는 힐러리가 뉴욕 주 상원위원에 출마할 무렵에 우리 집에서 가까운 챠파쿠아라는 곳에 이사왔다.
뉴욕 세탁소의 대부분이 한국사람이 운영하고 있으니 미국의 대통령을 한 사람이 한국인 세탁소의 단골이라는 건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한국신문에 내고 싶었다. 그 세탁소에 전화를 했다.  ‘이게 뭐 기사꺼리가 되겠어요.’하는 세탁소 주인 정대웅 씨는 우연히도 예전에 같은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다. 미국사람들로부터는 ‘정, 이제 유명인사가 되었네’라는 인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전화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기사를 쓸 생각도 했지만,  별로 멀지 않은 그 세탁소를 한번 가 보고 싶었다.
약속한 날 세탁소에 가니, 바로 조금 전에 클린톤 집에서 옷 줄일 것이 있다고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함께 가도 괜찮을 거라고 한다.  아니 이런 차림으로 어떻게 대통령 집에? 그러나 두 번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호젓한 길을 잠시 운전해 가니 평범한 한 저택에 다다렀다. 정문 옆 수위실에서 경비아저씨가 나왔다. 좀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나를 바느질 조수로 알았는지 운전 면허증 맞기라고 하고는 가만히 있는다. 곧 이어서 비서인 듯한 젊은 남자가 나와 우리를 맞는다. 정대웅 씨가 나를 같은 교회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자 여기도 무사통과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한 구석에 책 꽂이 앞에 앉아 있는 웬 늘수구레 한 아저씨의 뒷 모습이 보였다.  미처 빌 클린톤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하이” 하는 귀에 익은 쉰 목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덜컹했다. ‘에구. 저 사람이 클린톤이네’  라벤다 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저 사람이 그 유명한 빌 클린톤 대통령이란 말이지. 그는 책에서 얼굴을 들지 않은 채, 비서에게 옷들 다 준비했냐고 묻는다.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아 이상할 정도였다.
옆 방을 향해 가면서 나는 더 이상 내 신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실은, 나는 한국 신문 기자인데, 뉴욕타임즈 기사를 읽고 우리 한국 커뮤니티에 대통령의 단골 세탁소를 알리고 싶어서 함께 왔다.”고 이실직고 했다. 비서가 별 일 아니란 듯이 쉽게 오케이한다. 대통령도 내 말을 들었을텐데 아무 말 않는다.
양복이 가득 걸린 길다란 철봉같은 옷 거리 맨 끝의 옷 부터 하나씩 클린톤 대통령이 꺼내 입고 서있으면 정대웅 씨는 옷 깃을 접어 바늘을 꽂는다.  바지 차례가 되면 옆 방으로 가서 갈아 입고 나오곤 한다.  세탁소 아저씨가 내게 작게 속삭인다. “노선생님 때문에 저 방에 가서 입고 오는 거예요. 내 앞에서는 그냥 바지를 벗거든요.”
소매를 당기고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분필로 긋고 바늘을 꼽는 세탁소 아저씨에게 온 몸을 맞기고 선 빌 클린톤 대통령은 " 이 바지는 참 잘 맞았었는데, 이제 헐렁해졌다. 하긴 늙은 사람 바지들이 다 이렇지 않느냐." 술술 이야기를 한다.  
내가 서서히 질문을 꺼내자 대답도 술술이다.   ‘힐러리랑 오랜 만에 주말을 같이 보내게 되어서 오랜만에 강아지 데리고 이 근처로 하이킹을 할 것'이라면서, 다음 주엔 시카고로 갔다가 곧장 아프리카로 가는 스케쥴이 잡혀 있어서 멀리 안가는 것이 우리에겐 제일 좋은 베케이션이라고 근황을 말한다. 그리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웨체스터가 미국 내에서 가장 녹지가 많은 주택가라는 걸 아느냐.'는 대통령 다운 말도 한다.
몇 년 전 딸 챌시의 결혼식에 나타난 날씬해진 빌 클린톤의 모습에 세상이 다 놀란 적이 있었다. 건강문제도 있었지만 딸을 데리고 들어가는 날씬한 아버지 역할을 하고 싶어서, 그 좋아하던 정크 푸드를  멀리하며 24파운드를 뺐다고 했었다. 그러나 2010년도에 또 한번 심장 수술을 하고 나서는 철저하게 채식주의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또 옷을 줄이게 된 것이다.  
‘정은 항상 믿음직 해요. 들쑥 날쑥한 내 바쁜 시간을 다  맞추어주거든요.” 하는 미국 대통령과 시종 웃는 얼굴인 한국인 세탁소 아저씨라는 커다란 차이에 두꺼운 신뢰가 채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클린톤 부부가 이사와서는 비밀로 몇 군데를 세탁소를 다녀보고 정대웅 씨 가게를 정한 이유는 가장 약속시간을 잘 지켜서라고 한다. 
마지막 옷을 옷걸이에 걸었는데 대통령이 “잠깐만.”하더니  2층으로 올라가 베이지 색 양복을 들고 내려 온다.  “이거  1992년 뉴욕 전당대회 때 입은 것이지…...”감상에 젖는 표정이다. 이제는 다 끝났나 했더니, 아참참. 대통령은 또 후다닥 2층으로 올라 간다. 손에 바지 두어 개가 들려 있다. 갖고 있는 옷을 다 줄이는 것 같아서 물어 봤다. “옷이 안 맞으면 새 옷을 살 수있는 가장 정당한 핑계가 되는데요.” 대통령의 대답은 “우리는 경제 대공황을 지낸 가정에서 자라서 내핍생활이 몸에 베어 있습니다.”였다. 고치고 있는 옷 대부분이 선물 받은 것이라고 했다. 비서가 보여주는  양복 안 주머니에 수 놓아진 각 나라의 이름들이 다채롭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양복 몇개를 직접 들고 오랜 친구처럼 우리들을 현관까지 배웅을 하는 빌 클린톤 전 대통령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건강하세요.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한 내 말은 진심이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친숙함을 갖게 하는 힘이 아마도 핸섬하고 마음 좋은 이웃집 키다리 아저씨같은 빌 클린톤의 카리스마가 인가 보다.
내가 쓴 기사는 나름대로 특종이 되었다. 나는 어쩌면 수 없이 옷을 벗고 입는 미국 대통령 앞에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눈 유일한 저널리스트일지도 모르겠다. 클린톤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아이들에게도 보내고 한국의 친정 어머니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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