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8, 2015

구름에 달 가듯이

구름에 가듯이

          '  따라서 가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착한 마음 씨의 사람들과 밤 새워 얘기하리라......' 대학 때 친했던 가수 이광조의 대뷰 곡 노래 말 처럼 유유자적  나라 유럽을 다녀왔다. 매일 매일 해야 할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방랑객 처럼 길을 떠날 있었던 것은 만큼 오랜 세월 쌓여진 여행에의 갈망이 이상 숨을 참지 못했던 때문이리라.
          방학이면 의례히 인천 해수욕장, 덕적도, 설악산, 온양 온천 같은 휴양지라든가 친구네 과수원엘 가서 며칠 놀고 왔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끄덕하면 지방 출장을 가던 나에게 어머니는 잘도 다닌다. 여행이라고는 피난 밖에 못가 봤는데.’하셨다.
          그러다가 아주 여행이 미국으로 오고 말았다.
          곳엘 보는 것하고 곳에서 사는 것하고는 천지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젊은 시절 막연히 동경하던 미국이 치열한 삶의 장소가 되어 버렸고 여행을 다니는 마음의 사치는 사라져 버렸다. 가끔 식구가 여행을 다니긴 했어도  살림을 객지로 옮겨 가는 일이었다.
          한참을 살고 둘러 보니 남들은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었다. 세계 구석구석을 안 가본 곳이 없는 같았다. 내가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유럽도 그들은 벌써 오래 전에 다들 다녀 오고 나서는 이제는 다시 동유럽이다, 북유럽이다 나누어 샅샅이 다녀들 온다. 대부분이 단체 여행들이다. 여행사들이 한국신문에 전면 광고를 하는 이유를 같다. 그러나 왠지 나는 어릴 부터 책으로 상상하던 멀고 먼 나라의 이미지를 수학 여행처럼 다니면서 깨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께 여학생인 내게 환상의 세계로 다가 왔던 유럽이다. 전혜린이란 이름 만으로도 깊은 지성과 열정이 떠오르지만, 내가 그에게서 얻은 것은 정열도 학구열도 아니었고 그저 유럽 나라에 보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소설 속의 나라가 아니라 한국의 젊은 여자가 직접  온 몸으로 경험해 낸 곳인데 나라고 못 갈까...라는 동경이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카페, 그 곳에 모인 베레모 쓴 아티스트들, 중세의 낡은 건물들이 줄지은 거리. 짙은 회색 빛 음울함으로 써 내려 간 전혜린의 글 속에서 나는 오로지 유럽의 낭만 만을 찝어 냈었다.
          처음으로 유럽 대륙에 발을 디딘 곳은 친구와 함께 간 비엔나였다. 친척 유학생이 있는  곳으로 갔다가 기차를 타고 빠리와 스페인, 포르투갈을 구경했다. 30년 전이다. 우리는 온갖 실수를 저지르며 모짜르트의 무덤을 찾아 갔고 피카소 집을 가려다가 빠리의 골목길을 헤메었다. 바르셀로나 식당에서는 말이 통해 남이 먹는 것을 손으로 가르켜 시키기도 했다. 전기 난로를 두었던 리스본 어느 뮤지움, 메트로를 타고 간 빠리의 벼룩시장 들이 전리품 처럼 기억의 창고에 들어 있다. 때문에 유럽에 다녀 적이 있지만, 모두 3,4 빠듯한 여정이었다.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 파 뭍혀 버리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지만 실현이 어려웠다. 나이 드신 어머니를 보러 한국엘 자주 가게 되니까 남편을 두고 또 놀러 다닌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그러던 차에,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보김 씨의 느닷 없는 여행 제안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이렇게 떠나는 길은 어디라도 좋았다. 보김 씨가  알고 있는 유학생도 볼겸 영국 버밍햄으로 가는 길에 이스탄불을 들리자고 했다. 
영국에서는 셋이서 스코틀랜드까지 1주일 동안 차로 돌아 다녔다. 하루는 나 혼자서 계획에 없던 런던다녀왔다그야말로 발 가는 대로 구름에 달 가듯이 다녔다.
런던 고속버스 터미날에 내려서는 지도 한장을 들고 용감하게 빅토리아 거리로 나섰다. 소멸해가던 젊음이 살아 났다아무런 관광 명소도 찾아 보지 않고 곧장 테임즈강을 건너 ‘테이트' 뮤지움 향해 하염 없이 걸었다. 강변 헌책 노점 상에서 책들을 둘쳐 보고, 배고플 때에 친구가 싸준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아, 이런 곳이구나. 현대 미술의 높은 성곽이기도 한 ‘테이트 모던 진미는 잠깐 사이에도 충분히 전해진다. 이날 런던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고속 버스터미날로 돌아 가는 택시 안에서 내다 보이는 화려한 궁전을 운전수에게 물어 보니버킹검 팰러스.라고 했다.  빨간 모자를 군인들이 교대하는 장면을 보진 못했지만 이 또한 전리품이다.
어둑어둑해진 버밍햄에 와서는 아침과는 반대 방향으로 마을 버스를 타고 150년 된 하숙집으로 돌아 왔다.  친구가 특별히 만든 두툼한 햄과 라면 정식에 와인 까지 곁들인 성찬에 느슨이 피곤이 몰려 들었다.  
뉴욕으로 돌아 오는  남편에게 텍스트 메세지 보냈다. ‘뭐니 뭐니 해도 당신 덕이야.’ 
케네디 공항에서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남편과 동네 식당에서 가서 이거 먹을까 저거 먹을까…. 스트레스를 쌓는 일상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가다가다가 지치면 다시 돌아 오리라. 웃는 얼굴로 반겨 주는 그대의 정든 품으로......' 노래 말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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