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8, 2015

남편의 사진

서랍 속에서 두툼한 사진 더미가 나왔다. 결혼 초에 시어머니가 ‘에따, 네 신랑 사진이다.’며 주신 것이다. 눈에 콩꺼풀이 씌여 결혼을 했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거 큰일이다. 덩치가 큰 가구라도 맘에 안 들면 바꿀 수도 있을테지만, 사람은 어떻게 하랴. '했었다.
첫 눈에 반 해 몇 년을 두고 연애를 했다 해도  결혼하고 얼마 지나면 서로 실망과 절망을 느낄텐데, 중매로 만난지 두 달만에 결혼을 하고는 남편이란 사람이 낯 설기만 해서 난감하곤 했다. 우리는 죽이 잘 맞질 않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걸 난 싫어했고 내가 하고 싶은 건 건 남편이 질색을 했다. 내가 어려운 만큼 남편은 또 오죽했으랴. 그러나 아이가 태어 나자 ‘가족’이라는 철통 같은 울타리를 쳐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사진 정리 조차 우리 집과는 달랐다. 친정 어머니는 내 아기 때 사진들을 까만색 세모난 테두리를 해서 앨범에 붙여 놓고 그 밑에 사진을 찍은 장소라든가 어머니의 감상을 꼭 한 두 마디 적어 넣으셨다. 시어머니가 주신 남편의 사진들은 ‘777 사진관’이라고 쓰여진 보스라질듯 얇은 봉투와 뿌옇게 된 비닐 봉지에 뭉터기로 들어 있었다. 거의가 흑백사진이고 몇개의 빛 바랜 칼러 사진이 있었다. 사진을 대충 둘쳐 보고 나서 그대로 어느 서랍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두 째가 태어나자 성격이 맞네 안 맞네 할 겨를도 없이 하루 24시간이 모자르게 살았다.
오랜 세월 후에 갑자기 튀어 나온 사진더미를 일단 다시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하루 날을 잡았다. 아이들도 집을 떠나 한가한 나날이다. 사진들을 바닥에 쭉 펼쳐 놓고 그 중 가장 어리게 보이는 얼굴부터 골라 앨범에 붙여나갔다.
이게 백일쯤 되겠나, 요건 좀 더 자란 얼굴인데, 어머 돌 사진이네.....하면서 똑 같아 보이는 얼굴 들을 비교하며 순서를 매겼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포근해지며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밉기 만 남편이지만 애기 때는 너무 귀여웠다. 복실한 돐 사진 다음에는 좀 더 여문 애기 얼굴이 나타나고, 엄마 아빠랑 찍은 두 세살 짜리 어린이, 줄무니 쉐타를 입고 대청 마루에 앉은 수줍은 어린 소년의 표정이 아들과 똑 닮아 신기했다. 국민학생 얼굴 몇 장을 챙기고 나니 어느새 남편은 커다란 모자를 쓴 중학생으로 서서히 변신을 한다. 언뜻 언뜻 내 아들 녀석의 얼굴이 비치는 남편의 얼굴 표정에 정이 흠뻑 든다.
새카만 교복을 입은 단체 사진의  깨알 만한 얼굴들 사이에서 기어코 남편 얼굴을 찾 낸다. 동그랗던 얼굴이 길쭉하니 여드름 난 징그러운 청년이 된다. 소나무 밑 바위에 한 발을 얹은 멋쩍은 대학생 모습도 있다. 여자랑 찍은 사진은 없네. 시어머니가 빼 버리셨나. 시어머니가 한복 차림으로 미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 ROTC 복장으로 찍은 사진.  그리고는 미국와서 찍은 몇 장의 칼라 사진들이 있다. 남편이 입은 체크 무늬의 져지 바지를 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맞아 이런거 한 때 유행했지. 이 얼굴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본 그 얼굴과 똑 같구먼. 마치 한참 연애를 한 사이처럼 정다운 남편의 얼굴이다. 
어린 애기가 내 손 안에서 속성으로 어른이 되었다. 잠깐 타임 머쉰을 타고 다녀 온 것 같은데 어느 새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앨범을 덮을 때는 남편 어릴 때부터 한 평생을 같이 살아 온 것 같았다.
이래 저래 이제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사이다.
퇴근 해서 들어 오는 남편에게 바빠서 저녁 준비를 못했으니 나가 먹자고 퉁명스럽게 말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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