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26, 2022

기자의 눈 / 말못하는 사연

 말 못하는 사연 

2016

동네 헬쓰클럽엘 들어서는데, “엄마. 음...그거 음 그 게 어,언제 받은거냐구……” 굴리는 발음으로 떠듬거리는 한국말이 들린다. 서류를 손에 든 아줌마가 보인다. 분명하다. 영어 못하는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뭔가를 따지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들 옆을 급히 지나쳤다. 내 동양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 장면을 보고 싶지가 않았던 때문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80년대 초 미국에 오자마자 한국 교회 여름 성경학교 선생을 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신기하기만 하던 나는 거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에게 한국말을 하고 아이는 영어로 대답하는 것이 더 신기했었다. 그 이후 내가 아이를 갖게 되자 그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나도 내 아이와 의사소통을 잘 못하며 살겠구나. 조금이라도 미국 말을 잘 해야겠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당장 눈 앞의 일이 더 급했던 시절이다.

내 아이들 쪽에서도 한국 학교를 다니긴 했어도 한국말을 잘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뱃 속에 아이를 두고 걱정했던 대로 서로가 말이 불충분 채로 살아왔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아이의 가정은 좀 다르다. 부모자식간에 자연스럽게 한국 말을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부모 대신 영어를 해주는 일이 흔했다. 야채가게 하는 부모님의 온갖 서류를 번역해주며, 학교를 빼먹고 랜드로드를 만나 통역해주곤 했다는 50대의1.5세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뉴욕에서 4 시간 걸리는 대학을 다닐 때에도 걸핏하면 부모에게 불려 복잡한 일을 해결했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통역을 시키거나 서류를 해석해 달라고 해보지는 않았지만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영어 앞에서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미국사람과 대면을 할 때 마다 콩글리쉬를 하지 않으려고 미리부터 고민을 하는 것은 30년 전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어느 젊은 종교인에게 전화를 할일이 있었다. 스마트 폰에 뜬 낯선 번호를 보고 내 전화를 받지 않더라도, 이 사람이 한인 시니어 공동체를 지도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길레 한국 말로 메시지를 남겨 놓으면 된다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자 벨이 두세번 울리자 전화를 받는다. “핼로우.” 나는 당연히 “여보세요.”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또 ‘핼로우’를 한다. 잘 안들리나, 다시 분명하게 큰 소리로 ‘여보세요.’를 하자 이번에도 ‘핼로우’로 답을 한다. 할수 없이 영어로 ‘저는 뉴욕 한국일보의 노려라고 합니다.’ 나를 소개했는데 대답이 없다. 나는 머뭇했다. 그 다음말을 뭐라고 해야 하나? 문법에 맞게 “ OOO씨와 통화할 수 있냐.” 또박또박 말을 하자 저쪽에서 또 미국식으로  “스피킹.” 한다. 세상에, 이 사람 한국말 못하나? 두서없이 영어로 용건을 말하기 시작하자 그가 갑자기 한국말을 하기 시작한다.  휴. 살 것 같았다. “지금 제가 밖에 있는데요. 한 시간 후에 전화드리겠습니다.”한다.  전화를 끊고 났는데, 한국사람한테 엉성하게 영어를 한 것이 챙피했다. 아니 그렇게 한국말 잘하면서 왜 핼로우를 고집했을까. 떨떠름했다.

 

이민 초기에는 ‘때르릉’전화가 울리면 긴장을 했다. ‘핼로우’ 해 놓고는 상대방이 쏼라 쏼라 영어를 시작하면 알아 듣지를 못해 당황했었다. 물론 한국 사람은 내가 핼로우를 해도 여보세요 한다.  시대가 변화에 감에 따라 전화벨이 울려도 상대가 누군지를 알기 때문에 많이 편해졌다. 하지만 ‘핼로우’와 ‘여보세요’로 전전긍긍하기는 전지전능한 스마트 폰을 쓰는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잘 알지 못하는 젊은 한국 사람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이 사람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지 영어 밖에 모르는지 걱정을 한다.

아무래도 언어장벽이 더 높아지기만 하는 것 같다.

벙어리가 아닌 다음에야 ‘말하기’가 답답하면서도, 이걸 운명처럼 순순히 받아드리고 살아온 내 모습이 갑자기 초라해진다.  어려운 서류는 사전을 찾아보며 해결했고, 급하면 미국 사람들하고도 분명하게 뜻을 나눌수도 있으니 이 정도면 된거지. 이제와서 뭘 어떻게 더 하랴. 여기서 멈추어 있는 게을은 내 모습이 보였다.

물론, 여기서 학교 다니고 미국 직장을 갖고 있는 한국 사람들도 영어보다는 한국말을 하는 일이 더 편안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영어를 잘 하면서 모국어가 편한 것 하고, 영어를 잘 못해서 첫 마디 ‘핼로우’에도 전전긍긍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래 지금 부터라도 영어공부를 하자.

은퇴를 하면 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섹스폰을 배우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 동안 안돼는 영어로 살아 왔는데, 이제는 좀 편하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남은 인생을 편하게 즐겨보고 싶어하는 마음일테다. 하지만 은퇴 후에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직도 영어 땜에 주눅이 드는데, 일선에서 아주 물러서고 나면 자꾸 더 안으로 오무라드는 내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 못했던 일도 인간의 근본인 ‘말하기’를 못하면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그래 알았다. 영어공부다. 마음을 굳힌다. 공부 방법을 찾아 본다. 방법은 수천가지다.

왜 진작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1.5세 쯤 되는 그 종교지도자가 나를 당황하게 했던 것이 오로지 언어장벽 만은 아니었음이 후에 밝혀졌다. 한 시간 후에 전화하겠다던 약속을 어긴 그에게 다음날 다시 전화를 하자 그는 또 ‘핼로우’를 두어번 고집했고, 내가 그 단체의 행사를 취재하고 싶다고 하자 유창하다 못해 완벽한 네이티브 스피커의 한국말로 ‘신문에 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저는 아닙니다.’라며 신문에 기사가 나가는 걸 꺼려하더니 나중에는 자기 전화번호를 내게 알려준 사람까지 비난을 했다. 몇 마디가 오고 가고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전화를 끊는다. 그 때 내 기분은 떨떠름이 아니다. 분노였다. 핼로우와 여보세요의 문제가 아니고 인격의 문제였다. 영어 잘 못하는 나이든 한국 사람들을 지도하면서 마치 자기가 높은 자리의 인간이나 되는 줄 망각을 한, 격이 낮은 사람임을 뒤 늦게 알아차린 나를 후회했다.

하지만 더 큰 후회는, 내가 미국에서 일제 강점기 만한 세월을 살고도 아직도 ‘핼로우’에 갈등하는 게을음이다.

오케이. 두고 보자. 나, 영어 공부 열심히 할 것이다.


Monday, August 1, 2022

소설같은 이야기 7 : 먼길 가는 길

 



        박일용을 처음 만났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서 더듬거렸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던 그의 차를 타고 갔다. 그의 짐이 많았으니까. 

까만색 가죽 케이스가 가장 큰 덩어리이고, 웬만한 1박 2일 여행 백 크기의 쑥 색 캔버스 가방과 우산같이 생긴 길다란 기구에다가 둘둘 감긴 두꺼운 전기 줄 뭉치가 하나 더 있다. 

내 핸드 백 속에는 수첩과 팬이 들어있을 뿐이다.

하긴 그의 차를 타는 건 멀리 갈 때의 이야기다. 그와 먼 길을 간 적은 두 번 뿐이다.


  • 소호


첫 작업은 맨해튼에서 였다. 서브 웨이 프린스 스트리트 역에서 거리로 올라서면 이름 붙일수 없는 맨해튼 냄새가 덥 친다. 슬쩍 스치는 향수냄새와 뭔가 가 썩는 깊숙한 냄새 그리고 차이나 타운에서부터 풍겨오는 지글거리는 기름냄새다. 프라다 매점 앞에는 프라다, 샤넬, 구찌를 파는 노점상 아저씨가 젓가락으로 느긋하게 중국음식을 퍼먹고 있다. 

꽉 들어찬 차들은 파란 신호등에도 움직이지를 않고, 양쪽 인도에는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인파가 밀물 썰물이 섞이듯 한다. 소매가 없는 꽃무늬 셔츠에 무릎까지 오는 까만색 부츠를 신은 여자의 노란색 머리카락이 춤결같은 몸 동작에 맞추어 출렁인다. 

소호를 의식하고 갖은 멋을 다 부리고 나왔지만 이 거리에서는 맥을 못 춘다. 누군가가 “한국 분이세요?” 다가올 것 같은 영락없는 한국 아줌마다. 

가로수 잎사귀조차 하나씩 색을 칠 해 붙인 듯한, 갤러리가 들어찬  머서(Mercer) 스트리트는 서브 웨이 역 바로 옆 그린(Green) 스트리트로 한 블록 걸어가면 나온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하우스튼 스트리트를 향해 걸어가다가 121이라는 작은 숫자가 붙어있는 회색빌딩을 발견하고는 두리번거렸다. 좀 있다가 어깨엔 큰 가방을 메고 양손에 작은 가방을 들고, 겨드랑이에는 길다란 우산이 끼고 걸어오는 그가 보인다. 뛰어가서 뭐든 들어주려고 하자, 괜찮습니다 하는 그는, 두 번 째 만남인데도 첫 번과 마찬가지로 내 얼굴을 잘 쳐다보질 않는다.

한국 잡지사에서 그를 소개했다. 나의 대학 동창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한 그에게 대학 후배인 잡지사 사장이 내 전화번호를 준 것이다. 즉 뉴욕에 있는 갤러리 전속작가를 인터뷰할 나에게 사진을 찍을 사진작가를 소개한 것이다.

구내전화를 받자마자 후닥닥 층계를 내려가는데 리셉션 데스크 앞에 한 남자가 보인다. 곱슬한 머리에 마른 듯한 남자다. 내가 안녕하세요 하자, 내 얼굴을 빤히 보며 “아, 저.... 저, 바, 박. 요....음… 박, 일용입니다.” 한다.

망신을 하려면 자기 아버지 이름자도 안 나온다는 말은 있지만 자기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왜? 이렇게 이쁜 여자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혹시 한국에서 들었을 나에 대한 이미지가 아니었을수 있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단발머리에 까만색 테두리 안경을 쓴, 혹은 빨간색 립스틱을 한, 그리고 손에는 막 쓰고 있던 팬을 놓을 틈새 없어 들고 있을 그런 여자와 너무 달라서? 헐렁한 티셔츠 차림이 너무 평범해서? 어쨋든, 예술가 답게 첫 대면을 하려던 의도가 빗나가서 당황한 것은 분명하다.

 

신문사 카페테리아에서 동려들에게 그를 사진작가라고 소개했고 우리는 정식으로 약력을 주고 받았다. 나보다 먼저 뉴욕에 왔고, 롱 아일랜드에서 살고, 36가에 스튜디오가 있고, 여섯 살 네 살 아들 둘이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그의 개인전 이야기 그리고 이번에 같이 할일에 대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하면서 나는 속으로는 자꾸 웃었다. 아니 자기 이름을 더듬다니. 

새빨간 무나물과 버섯무침과 시금치나물 위에 계란 후라이가 얹힌 비빔밥을 먹으면서도 그는 나를 잘 쳐다보질 않았다.

 

그가 짐을 건물 앞에 내려 놓기도 전에 나는 #3 초인종을 눌렀다. 삐익 열린 문을 잡고 서있는 동안 그는 짐을 좁은 현관 안으로 들여 놓았고, 내가 먼저 층계를 올라가 문 앞에 나와있는 집 주인과 인사를 하는 동안 그는 가파로운 층계를 한칸씩 두번에 거쳐 올라왔다. 

등받이 높은 의자가 한 열개쯤 바짝 땡겨져 놓여있는 길다란 나무 테이블과 유리로 된 나즈막한 커피 테이블 하나 그 이외의 가구는 안 보인다. 벽에는 그림 한점이 없다. 절간 같은 로프트가 갑자기 어수선 해진다. 자연스레 보이지만 실은 철저하게 기획된 흐트러짐으로 몇권의 잡지가 놓여진 테이블 옆에 짐을 푼다. 내가 그를 도와주는 사이, 영화라도 찍을 듯한 장비를 본 집 주인 화가는 어느 새 셔츠를 갈아입고 나타났다. 

 

그가 꺼낸 카메라가 ‘핫셀블라드Hasselblad’다. ‘이런 카메라 알기나 해요?’ 가 아니고, ‘물론 이건 알고 있겠지?’하는 얼굴. ‘모르는데요’하면 ‘아니 이걸 몰라?’ 놀라는 그런 얼굴로, 카메라를 신주단지처럼 테이블위에 살살 놓는다. 나는 그 하셀블라드를 잘 알고 있다.

 

내가 23살 때, 그러니까 20년전이다. 한 남자가 바로 이 핫셀블라드 카메라를 들고 “미쓰 노. 이거 얼마짜린 줄 알아?”하며 내게 다가 왔다. 캐논 올림푸스 나이콘 정도는 알았지만, 핫셀블라드라는 카메라는 몰랐었다. 진부령 스키장에서그 남자가 찍어준 사진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나는 푸른 보라색 자켓을 입고 있다. 3 X 4 사진 속의 내 얼굴. 팽팽하다 못해 터질듯한 뺨이 빨갛다. 눈 바람 때문이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웃을 수 없다는 듯 활짝 웃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난 핫셀블라드가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 만날수록 거리는 더 가까워 졌다. 하지만 나를 바라볼 때에 그 동그란 눈이 깜빡 깜빡하는 걸로 바뀌었을 뿐, 그는 끝까지 나를 똑 바로 바라보지 않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끝까지라는 것이 한 20년 세월이 지난 후, 그를 다시 한국에서 잠시 만났을 때까지다. 애매모호했던 에피소드들을 다 모으면 답이 나오려나.

 

소호에서의 특집기사를 잡지사에서 좋아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진을 썼다. 창문의 그림자가 길게 비치고 있는 반짝이는 마루바닥이며, 커피 테이블에 놓인 ‘아키텍츄어’잡지 표지의 극히 작은  한부분의 클로즈 업이, 집안에 자기 그림하나 걸어놓지 않은 화가의 감춰진 라이프 한 구석을 돋보기로 들여다 보는듯 했다. 

박용일과 나를 콤비로 잡지사 일이 줄지어 들어왔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식당의 오더블 담당 한국여자, 차이나타운 끄트머리 코딱지만한 스튜디오에서 그림그리는 막 떠오르는 화가. 거리에서 줏은 물건으로 작업을 하는 부르클린의 설치미술가.잘 나가다다 한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가수 양희은까지.

 

맨해튼에서 작업이 끝나면, 수 십개의 필름통을 들고 사진 현상소에 같이 간다. 두어시간이면 필름이 나온다. 두어시간을 ‘딘 앤드 델루카’ 같은 왁자지껄한 카페에서 얼굴을 가까이 하고 서로의 약력을 조금 씩 더 파고 들어가곤 했다. 

한번은 32가 설렁탕 집에 갔을 때 그가 웨이트레스한테, “미원빼고 해주세요.”하고는  ‘우리집이 식당을 하기 땜에 잘알아요.’했다. 

식당하는 집 아들이구나. 무슨 식당? 물어보질 못했다. 

 

현상소로 가서 수백개의 길다란 필림 중에서 몇 개를 가위로 쑥딱 잘라 나에게 건내준다. 나는 집에 와서 사진 박스 위에 네가티브 그림을 올려놓고 빛과 그림자를 뒤집어 상상하면서 질문에 열심히 답을 해준 주인공의 느낌을 찾아 낸다.

사진 현상소를 같이 갈수 없을 때는 그가 따로 잡지사로 필름을 보낸다. 하지만 그가 찍고자 하는 장면을 미리 폴라로이드로 찍을 때 나도 옆에서 폴라로이드 필름을 흔들면서 서서히 나타나는 사진을 보고 또 보고 했었기 때문에, 완성품을 보지 않아도 전혀 문제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스토리이니까, 스토리는 내 손에 달린거니까.



  • 캐이프 메이

 

뉴저지 남쪽 케이프 메이에서 이탈리안 식당을 하고 있는 한국인 여자 셰프를 찾아갈 때, 포트 리 쇼핑몰에 내 차를 세워놓고 그의 차를 탔다. 가는 시간 3시간 오는 시간 3시간, 돌이켜 보면, 가든 스테이트 파크웨이로 줄기차게 달리던 이 시간이 그와 나와의 황금시간이다. 약력이 아니라 살아온 이야기가 늘어진다. 주로 그가 이야기를 했지만.

“부모 앞에서 아이를 죽이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했었어요. 그 사람들을 죽이면 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게 아니니까요. 그들에게 지독한 아픔을 주고 싶었어요.” 

계모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위해 아버지에게 중상모략을 해 박용일을 따돌렸다는 거.

 

핫셀블라드 말고 또 다른 데자뷰가 떠 올른다.

대학 다닐 때의 한 남자. 조원석. 이름이 생생하다. 여고 친구랑 데이트하던 연세대 학생, 하얀 얼굴에 동그란 쇠테 안경을 낀, 한국에서 내놓으라하는 제약회사 아들이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조원석이랑 내가 왜 한강변 절두산 벤치에 앉아있었는지. 아마도 우리가 다닌 대학들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어둑해지는 한강을 바라보며, 그는 조곤조곤 자기의 엄마가 친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등학교 1학년때 알게 되었고, 자기에게 그렇게나 냉정했던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라서 그랬다는 걸 알고는 약을 먹고 죽으려고 했다고 했다. 지금은 화학과를 다닌다고.

 

얼마후 여고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원석이 너를 만났다고 하더라.

그 뿐이다. 그 시점에서 양쪽으로 다 끝이다.

여고 친구는 대학 졸업과 함께 중매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았을 때 회사생활을 하던 나는 병원을 찾아갔었다. 아가는 보질 못했고 친구 얼굴에 실핏줄이 터져있는 걸 보며 아이 낳는게 저런 일이구나 했던 기억은 쎄게 남아 있다.

 

 

한국 여자 셰프가 져지 토마토가 맛있다면서, 브라운 백 두개에 밭에서 막 딴 울퉁불퉁한 토마토를 싸 주었다. 토마토 줄기에서 나는 쌉사름히 싱그러운 풀내가 차안에 꽉 차있었다.

“그 때 내가 산 기도원에서 내려올때요. 그거 아세요? 구름을 걷는 기분이라는거. 내 발 밑에서 땅이 안 느껴졌어요.” 

집에서 결혼하라는 여자를 피해 사진 공부한다고 미국에 와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 교회에서 집안에 대한 반항으로, 아니면 거듭난 마음으로 여자를 만났다는 건 - 자기 보다 10살이나 어린 여자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 그가 미주알 고주알 말을 다 안해도 그의 인생을 알만했다.

나는 그 이후로 마켓에 가면 져지 토마토라고 써있는 걸 찾는다. 드믈지만.

 

그와 만나는 횟수가 늘수록 그가 나를 처음 만났을때 왜 그렇게 당황했는지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상상을 해보곤 했다. 어쩌면 자기 첫 사랑 여자와 내가 비슷하게 생겨서 일까? 어떤 여자였을까. 분명 사진한다고 껍정대며 베이스볼 캡을 쓰고 멜빵 달린 청바지를 입고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니던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 예술이라는 걸 한다는 여자들이 좀 다 그랬다. 가장 첨단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잘 안다. 그렇다면 나와는 썩 다르다. 왜 그랬을까.

 

진부령 스키산장의 핫셀블라드 남자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부장이었다. 거므스름하고 기름한 얼굴 그리고 키가 무척 컸다. 짜증이 나는 오후면 어떻게 알고 내 책상에 ‘커피?’라고 쓴 메모지를 놓고 가곤 했다. 나는 회사 지하실 다방에 가서 부장과 커피를 마시며 그의 인생사를 들었다. 자기 부인은 메이퀸을 한 여자라면서 따로 산다고 했다. 그가 오스트리아에서 스키를 배우고 와서 산골에 스키장을 짓는 일에 집념하다보니 아이들 교육서부터 가정을 지키지 못한다고 했다.

진부령 스키산장 주인인 우리 회사 자재부 부장이랑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유석이 나오는 디너 파티에 갔었다. 서유석이 우리자리에 왔고 양희은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날 크리스마스라고 초록색 스웨터를 입고  하얀색 루프 귀걸이를 하고 다 같이 찍은 증거 사진이 있다. 그 뿐. 그 뿐이다. 남들 생각하고는 영 다르다. 나는 그 진부령 남자와 손 한번 잡지 않았다.

양희은도 그렇게나 좋아하던 서유석과는 맺지를 못하고, 미국에 와서 뉴저지에서 살았다. 남편과 맨해튼에서 야채가게를 하면서.

양희은을 취재하던 날 박용일은 워싱톤 브릿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가 뒷걸음을 하면서  “아 바로. 그 자리. 거기에 서 보세요.”했다. 필름이 남아서 찍은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그가 노란색과 회색의 가로 줄무늬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을 5X7 사이즈로 인화해서 주었으니까.



  • 캐츠킬

 

아트 크리틱 부부의 캐츠킬 서머 하우스로 가는 날 우리는 용커스 87하이웨이 선상 샤핑 몰 던킨 도너츠에서 만났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레인지 로버를 샀어요.” 했다. 레인지 로버는 작은 트럭만한 하얀색 미끈한 차였다.

 

내가 옆자리에 앉아서 약도 메모지를 꺼내든다. “일단 87 North로 가는 건 아시죠. 87노스로 가다가, 엑시트 8 에서 빠지는 거예요. 거기서 부터 한 3마일가서 오른쪽에 베어마운틴 엑시트가 나와요.”  미스터 골드스미스가 이메일로 보내준 주소를 카피해서 프린트한 종이를 들여다 보고, 밖을 내다보고, 바쁘다. 

 

“시카모어 로드로 들어섰지요. 여기서 부터 9마일가는 거예요.” 

9마일. 자 이제 좀 숨을 쉬자. 레인지 로버는 산길을 신나게 달리면서도  랜드로버 처럼 흔들리지를 않는다. 차 좋다. 좋죠? 

갈수록 산길이 좁아진다. 이름 모를 푸른색 꽃과 잡풀이 우거진 길 한쪽에 팻말이 붙은 바스켓이 눈에 띈다. 그가 차를 멈춘다.

바스켓에 마분지에 쓴 Wild Daisy Honey $ 2.00가 꽂혀있고 대여섯개의  꿀병이 있고,  1달라 짜리가 몇장 돌에 눌려있다. 차로 돌아와 가방을 들고 가서 5불짜리를 돌맹이 밑에 끼어놓고 두 병을 갖고 왔다. 이것이 미국 시골길의 매력이야… 그런데 나와야 할 메이플 레인이 10마일이 넘었는데도 나타나질 않았다.

전화를 걸고 나서야 알았지만, 9마일은 < . 9> 마일이었다. 그 유태인 아저씨는 왜 0.9마일이라고 안 쓰고 .9라고 썼는지, 산 자락 밑 오막집에서 미국 부부가 해주는 더덕으로 점심을 먹고, 근처 작은 폭포까지 다녀오고 나서는 숫자를 쓰는 스타일에 대한 유감은 까맣게 잊어먹었다.

 

용커스 쇼핑 몰에 도착했을 때에는 한 여름 해가 넘어가 버렸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부랴부랴 헤어지느라 꿀병 하나를 가져와야 하는걸 까맣에 잊어먹었다.

 

그가 중국을 다녀온 후에 가졌던 소호 브룸 스트릿의 비좁은 갤러리 개인전에 남편이랑 같이 갔었을 때, 그 와중에, 그가 내게 한말을 나는 두고두고 써먹는다.

“나랑 친한 사진 작가가 그러는데요. 중국 어느 도시에 가면 나처럼 생긴 사람이 많이 살더래요. 쌍꺼풀 지고 코가 오똑한 동양얼굴들이요. 중동의 피가 섞인 거지요. 맞아요. 우리 노씨가 중국에서 왔다고 하더라구요.”

거기 까지다.

 

그 후부터 그에게 연락이 안되었고, 뒤 소문으로는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어떻게 나한테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잡지사에서는 디지탈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젊은 사진작가들을 소개했고, 계속해서 한국으로 보내는 기사는 썼지만 그와의 소식은 두절이 되었다.

 

하지만 라이프는 두절되지 않는다. 대학 당시 그가 쫓아다니던 연극하는 여학생이 그의 친구와 결혼 했다는 이야기는 그에게서 들었었는데, 그 연극하는 여학생이 알고 보니 내 친구의 친구였다. 인연의 인연이다. 우연같은 인연에 무슨 필연이 엮여있을까.

연극하는 미녀는 뒤 늦게 뉴욕에 와서 친구의 친구인 나를 찾았다. 

그 여자를 통해서 박용일이 내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꿰 맞춘다. 

 

그는 내 어린시절 부터 있던 명동의 이층짜리 건물 레스토랑 ‘신정’의 아들이었고. 새 어머니를 물리치고 아버지가 명동과 강남 비지네스를 박용일에게 물려주었다는 것. 그래서 거의 20년을 뉴욕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다가 한국에 부랴부랴 갔다고 하는. 뉴욕에서 같이 산 여자는 고등학교도 안나온 여자였다는. 암만 여러번 만났었더래도 내가 도저히 엮어낼 수 없는 라이프 스토리다.



  • 예술의 전당

 

그를 깡그리 잊어먹고 한참을 살았을 것이다. 살기가 바쁜 이민생활이니까.

그러다가 한국에서 그를 만났다. 잡지사에 들리니 그 동안 박용일 씨가 찍었던 사진을 이용해서 Then And Now 특집을 하자는 것이다. 잡지사 사장이 “잠깐만” 하더니, 그에게 문자를 보낸다. “노려 왔어요” 즉각 올라온 답 “ 갈께요.” 를 잡지사 사장이 눈을 찡긋하며 내게 보여준다. 

 

서울 근교에 산다고 하는 박용일이 당장 한남동에 나타났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곱슬머리가 길어진 것 말고는.  그는 놀란 듯 눈을 깜빡이며, 약간 더듬거리며 “아, 아 안 달라졌네요” 거짓말을 한다.

멀리 한강 다리의 불빛을 바라보며 세명이서 와인 세병을 가볍게 마셨다. 다음날, 그와 나는 예술의 전당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뉴욕 여자와는 헤어지고 20살 아래의 여자와 산다고 했다. 그 사이에서 딸이 하나. 너무 이쁘단다. ‘신정’은 누나에게 맞겼단다.

잡지사 일을 뉴욕에 가서 하려면, 지금 갖고 있는 1800년대 사진기라는 쌀뒤지 만한 나무박스에 헝겊이 덮힌 이상한 카메라를 갖고 가야하는데, 그건 특별 화물로 운반해야 한다고 했다. 그 사진기로는 사진을 찍자 마자 15분 안에 인화를 해야하는데 인화하는 도구를 실으려면, 레인지 로버가 또 있어야 한다고.

프로젝트를 접었다. 

 

내가 뉴욕으로 돌아온 후 몇 달후 잡지사 사장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박용일이 죽었어. 자동차 사고로.> 스포츠 카 경기에 나가려고 자신의 스포츠 카를 찾아서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800년대 카메라로 찍은 사진 전시나, 사망에 대한 미디아의 글에는 그가 평소에 한 말이 인용 되어있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어쩌면 마지막 옛 모습일 수도 있는 그곳의 시간과 공간을 사진을 통해 간직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한 순간 밖에 없는 옛 모습을, 팬 하나로, 아니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글을 통해 간직하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어딜가나 예쁜 여자를 좋아한 그가 나를 좋아했었는지 그 답을 얻지 못한체 그와의 문이 닫혀진 것이 좋다. 언제든지 케이프 메이의 져지 토마토와 그의 차에 두고 내린 캐츠킬 꿀병을 꺼내 보면서 그의 깜빡이는 눈을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2022-2

Semi Auto Biograph…….this is not a story, only life. <알리스 문로>




소설같은 이야기 6: I know Everything

“I Know Everything”

 


이스 커튼 사이를 통과한 햇살이 옷장 문에 얼기설기 그림을 그린다. 맑은 날 아침 나절,  밤색에 가까운 주홍 빛과 검은 회색의 어른거리는 무늬가 서서히 옆으로  움직이며 빛이 점점 희게 변하는 걸 알아챌 사이 없이 어느 새  없어진다. 지금, 창문을 때리는 빗 소리를 들으며 숙현이 보고 있는 것은 신기루인가.

숙현이 손잡이에 손을 대는 순간 찌릿한 것이 느껴진다. 손이 아니라 온몸이 찌릿했다. 아니 머릿 속 일것이다.

텅 비어있을 것을 알면서 문을 열려고 마음을 먹을 때 부터 숙현은 누군가가 옷장 안에 숨어 있을 것 같았다.

 

************

 

미시즈 리가, 머리 끝서부터 발끝까지 차려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글래디스가 약한 불에 올려있던 오트밀 냄비에 다시 불을 키고, 계란 흰자위 오믈렛을 미리 데워 놓은 접시에 담는다.  드리퍼에서 마지막 방울이 떨어진 커피 머그를 미시즈 리 자리에 놓을 때,  다른 커피 머그를 숙현이 들고가  미스터 리 앞에 놓는다. 

미스터 리가 “아 냄새 좋군. 어때, 잘 되고 있나?” 한다. 답을 기다리는 질문은 아니다. “지금은  90년대 슬라이드를 작가별로…” 숙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시즈 리가 조용히 말을 한다. “미스터 파인스틴이 온다했어요. 같이 메트에 갈거니까, 미스터 김이랑 먼저 들어오세요.” 

 

드라이브웨이를 빠져 나가는 차를 바라보고 나서, 숙현은 팬에 남아있는 오믈렛을 접시에 담고  글래디스가 포코레이트에 끓여놓은 커피를 따라, 싱크가 달린 아일랜드에 앉아 급히 먹는다. 숙현이 부엌을 나서기도 전에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글래디스의 콧노래가 들린다. 멀리서 잔디 깍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들이 딴 방을 쓴다는 걸 안 것은 숙희가 오고 나서 며칠 후다.

운전수 미스터 김이 양 손에 두 세개씩 든 샤핑 백을  2층으로 올려다 놓고 내려오자, 미시즈 리가 층계 위에서  “숙현, 나좀 도와줄래?’ 한다. 방으로 들어 선 숙현은 숨이 멎는듯 했다.  한 쪽 벽을 다 차지하고 있는 그림은  - 소매에 주름이 넓게 잡힌 흰 블라우스를 입은 중세의 젊은 남자가 벽난로 옆에 서있는 - 에드와드 앙드레이 초상이 아닌가? 저 그림이 진짜라면 수 백만 달러 일텐데. 웬지 작아보이는 침대가 하나 덜렁 놓여있을 뿐 넓은 침실 어느 벽에도 그림 한점이 안 걸려있다. 

그리고 어디에도 남편 미스터 리의 흔적은 없다.

 

미시즈 리가 샤핑 백에서 옷을 꺼내며  “이것들을 옷장에다 좀 걸어줄래?”한다. 글래디스가 내일 쉬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옷장 안은 마치 일부러 만들어놓은 설치 미술작품 같다. 높은 천정에서 부터 바닥까지 가득찬 옷이 - 거대한 페이브릭 칼러 샘플 북처럼 - 자로 잰듯한 선을 이루며, 숙현이 끼어들 빈틈을 주지 않는다.

‘엄마가 이 아줌마와 정말 친한 사이일까?’ 건네주는 옷을 하나 씩 걸을 때 미시즈리가 무슨 말인가 하는 것 같았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미안하다라는 소리겠지했다.

미시즈 리가 옅은 스카이 블루  스카프를 탁탁 털어 반듯하게 접고는 “가만있자. 아, 저기 유리 서랍 보이지. 블루 칼라 쪽 맨위에 놓아요.”

 

방에 돌아온 숙현은 잠을 이룰수가 없다. 옷장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자로 재듯 반듯 반듯 천천히 이루어지는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나고 그들이 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방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안으로 들어가자 풍기는 은은한 향기에 가슴이 둥둥 거렸다. 

옷장 손잡이를 잡고 양쪽으로 밀자 너무 쉽게 열리는 바람에 또 가슴이 둥둥거린다.  

 

흰색에서 회색과 검정색, 그리고 울긋불긋한 옷의 색들이 조화를 이루며 길이 순서대로 걸려있다. 양쪽 벽 선반 위에는 핸드백들이 색과 사이즈 별로 일목요연하고 바닥에는 구두들이 한 줄로 나란하다.

옷을 하나 꺼내어 가슴에 대고는 거울을 바라본다. 옷걸이를 잡아 꺼낼때 마다 그 옆의 옷에 닿지 않도록 완전한 슬로우 모션이다.  핸드 백을 들고 그 자리에 잘게 자른 마스킹 테이프를 살짝 붙인다. 어깨에 메어보고는 제자리에 다시 놓을 때 테이프를 뜯어낸다.

숨을 멈춘채 사르르르 미끄러지는 옷장문을 닫고 살살 방문을 나설때 숙희는 이마를 만진다. 땀이 난 것 같아서이다. 

 

미스터 리의 방 쪽을 힐끗 바라다보면서 층계를 내려 올때, 윙윙 베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었던것 같은데 집안은 조용하다. 

‘수키, 겟 유어 런드리즈.” 글래디스가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숙현의 방으로 뛰어가는데, 주머니 속에서 전화가 울린다. 몇시지? 엄마가 아직도 안 자네. 

“엄마, 왜?” 한손으로 침대 위의 쌓아두었던 옷을 잡는다.

“아니야. 두 분 다 나가셨어. 아줌마가 얼마나 잘 해준다고. 엄마한테 하는 것 처럼 한다니까. 알았어. 응. 그래 그렇다니까….”

플라스틱 통에 빨래감을 던져 넣으며 “ 응. 엄마. 걱정마. 잘 할께. 알았어. 응, 안녕.”

전화가 끊어지는 걸 확인한다. 글래디스가 빨래 통을 들고 간다.

 

*******

“정숙이, 걔네 아주 부자야. 부자니까 당연히 너한테 잘 해준다고 생각말고 열심히 일을 잘 해야 한다.”

숙현은 미시즈 리가 엄마와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을 다니며 같은 서클 활동을 하며 아주 친했다는 것, 미시즈 리가 대학 3학년때 미국으로 유학 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 굉장히 고급스런 화랑을 경영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엄마가 말 할때에 숙현은 멀리 보이던 별이 가깝게 보이는 것 같았다. 뉴욕 아트 세계가 꿈이었다. 꿈이 손에 닿는다. 

“ 그집 아저씨는?”

“ 어, 이진수 씨. 무슨 사업을 한다고. 듣고도 잘 모르겠네. 아 델리? 하여간 그런걸 여러개 갖고 있다던데….”

 

미스터 리가  “넌 정말 네 엄마 젊었을 때 모습을 그대로다.”했을 때에야 미스터 리도 엄마와 대학 동창생이라는 걸 알았다. 사실 정숙이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숙현이 뉴욕으로 가겠다고 하고 나서야 말해주었다. 아 참, 뉴욕에 내 동창있어. 라고.

숙현은 엄마가 왜 미시즈 리 이야기를 안했는지 알것 같았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딸을 위해선 뭐라도 하는 엄마라고 다시 마음에 새긴다.

숙현은 엄마에게 미스터 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엄마도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

‘개천에서 용난다더니' 

미라  언니가 ‘와아’ 소리를 지르자 영자 아줌마가 울먹이며 한 소리다. 

숙현이 문을 열자마자  큰소리로  “엄마”하며 가게 뒤쪽으로 곧장 걸어오는 걸 본 엄마는 짐짓 고개를 숙이며 뭔가를 찾는 척 했었다. 엄마 눈앞에 입학허가서를 디민다. 언니들 나 예일합격이야.  뒤 쪽에서 커다란 양동이를 든 박씨 아저씨까지 후루루 나온다.

입학원서를 냈다고 하니까  ‘그래 떨어져도 실망은 말아라. 예일대학이 왜 예일대학이겠냐. 대학원은 더 들어가기가 어려운거 아니야?’라던 엄마다. 일하는 언니들과 손님들이 왁자지껄 하는 걸 들으며 엄마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묵묵하다. 남들은 겸손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엄마. 나, 친구들 만나. 먼저 밥 먹어.” 숙현은 떠들석한  ‘파라다이스 미용실’ 문을 나선다.

 

화가는 배가 고파. 

아냐 엄마 그건 옛날 말이야. 

아니다. 지금도 그림 그린다면서 밥 잘 먹고 사는 사람 봤어? 

물론…  엄마 처음엔 다 고생하지, 그렇지만. 요즘 얼마나 화가들이 잘 사는 지 알아?  

 

숙현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 않는 아버지도 화가였다는 건 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그림들은 다 태워버렸다고 했다. 숙현은 활활 불타는 아버지의 그림을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빈 종이에 불타는 아버지의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별이 흩어진 밤 하늘이기도 하고, 앙상한 나무이기도 하고, 길게 늘어진 풀잎이기도 하다. 어떨땐  까만 색 긴머리 여자의 옆 모습이나, 어깨가 넓은 남자의 뒷 모습이다.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의 가장자리 또는 캔버스 전체가 불에 휩싸여 있는 그림이다. 학교에서는 숙현이 미대로 진학할줄로 알고 있었다.

 

숙현은 인하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했다. 그림 안 그린다고 약속했지만 미술이라는 말이 들어있다는 것 때문에 숙현은 늘 엄마 앞에 조마조마한 자신을 발견한다. 

엄마는 숙현이 서울로 간다고 할까봐, ‘거긴 너무나 경쟁이 심한곳 아니니,  여기선 조금만 잘 해도 크게 보이는데…’서울도 못가게 했었다. 숙현에게 엄마는 우주였다. 아니 차가운 태양이었다. 엄마를 뺑뺑 돌며 인천 시립 박물관에서 일하던 숙현은 이제는 엄마와 타협하지 않기로 입술을 꼭 깨문다. 미국으로 갈꺼야.

 

“우리 애가 너의 화랑에서 일좀 할수 없을까” 했을 때 미시즈 리는 “어쩌면 이렇게 타이밍이 맞을 수가. 그렇지 않아도 사람을 찾고 있었어.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는 건데,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었거든. 우리 집에서 해야 할 일이라서.” 했다. 

 “이 일이 끝나도 우리 집에서 학교 다녀도 되. 여기 두 사람 뿐이니까.” 했다고 엄마가 좋아했을 때 ‘왜 내가 엄마 친구 집에서 학교를 다녀.’ 숙현은 엄마가  커네티컷이면 다 커네티컷인줄 아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숙현이 처음 엄마 친구 집에 도착 하던 날, 까만색 티셔츠에 하얀 앞치마를 한 40대로 보이는 스페니시 아줌마 글래디스가 현관문을 열고 숙현이 들어서도록 손잡이를 잡고 서있었다. 대리석이 깔린 현관에 곧장 이어진 층계 참에 천정을 찌르고 있는 스테인리스 조각 작품이  마치 어느 잡지 사진 안에 들어 온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층계로 남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하이, 미스터 리. “ 글래디스가 깍듯이 인사를 한다.

회색 머리 회색 옷의 미스터 리가 영화 속에서 튀어 나온 것만 같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박..숙현?”

“네, 저.” 

“와이프가 늦는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아, 미스터 김 수고했어. 가방 저쪽 끝 방으로.” 

운전기사가 가방을 들자,  “미스터 김 집안 안내를 좀 해주지. 아! 숙현학생, 저녁은?” 한다.

“네 비행기에서 뭘 많이 먹어서..”

 

*************

 

케네디 공항, 조용히 웅성거리는 군중 속에서  ‘박 숙 현’이라고 한글로 쓴 작은 종이를 들고 서 있던 남자를 보고는 애인이나 만난듯 했다. 밀리는 287이라고 쓴 하이웨이에 차가 한 없이 서있는 듯 할때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숙현을 보며, 목을 가다듬는다. 

“뉴욕은 처음인가요. 아니 커테티컷이요.” 한다.

짧게 “네” 하고는 숙현이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 봤고, 기사 아저씨도 아무 말도 않았다. 

숙현은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어떻게 개학 할때까지 몇 달을 엄마 친구 집에서 살지? 전혀 모르는 나이든 사람들이랑 어떻게 지내나. 마치 동생을 만난듯 반가와하며, 짐을 뺏어 끌고 가면서 계속 뒤돌아보며 숙현이 잘 따라오는가를 챙기며, 차 뒷 문도 열어주고 뒷 자리에 탈 때까지 기다려 문을 닫아준 친절한 기사 아저씨 뒷 머리에, 왠지 마음이 간다.

 

글래디스가 식탁에 놓인 뚜껑 덮힌 접시를 숙현에게 손으로 가리키고는 앞치마를 벗어 접는다. 미스터리는 “그럼. 푹 쉬어요.” 층계를 올라간다. 

숙현이 미스터 리를 쳐다보고 있는 걸 아는지 미스터 리가 층계 중간에 멈춰서서 뒤를 보며 고개를 끄덕한다. 숙현은 뚜껑을 열어보고 햄과 치즈가 끼어있는 작게 썬 얇은 샌드위치 접시를 들고 미스터 김이 간 쪽으로 걸어간다. 

 

“저 2층에는 두 분 침실이 있구요. 아랫층엔 화장실이, 여기 하나” 그리고 복도를 지나 문을 열며 “여기도  ….”  까만색 스트라이프 벽지 화장실 세면대 위에 하얀 백합 다발이 꽂혀 있다. 미스터 김은 숙현이 신기해하는지를 살펴본다.

 “네 고마와요. 정말로 수고 많으셨어요.” 

 “그럼 푹 쉬도록 하세요.” 미스터 김이 나가자 숙현은 가방을 바닥에 눕히고 지퍼를 열기 전에 방안을 둘러본다. 

 

다음 날 아침, 부엌 식탁에서 미시즈 리에게서 받은 차가운 느낌은 아마도 하얀 블라우스와 까만색 커다란 구슬 목걸이 때문이었을까. 앵두만한 진주 귀걸이가 오만하고 냉정하다. 

공항 식당에서 허겁지겁 비빔냉면을 먹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주름진, 그러나….. 촛불처럼 파르르 흔들리는 동그란 눈과 도톰한 입술, 손으로 살살 빚은 듯한 콧망울. 아름다운 얼굴이다. 

 “어머니가 아주머니 드리라고 김치를 보내셨어요.” 하자 미시즈 리가 당혹한 얼굴을 한다는 걸 눈치 챈 숙현이 “엄마가 밭에서 오개닉으로 키운 갓으로 만든거라고...”하면서 냉장고쪽으로 움직이는데, 미시즈 리가 덜컥 높은 목소리로 말한다.  “꺼내지 말아요. 무거운 걸 들고 왔군.” 자세를 고쳐 앉으며 미시즈 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낸다.

“그래, 여행은 괜찮았어요? 식사하고 나서, 지하실 스튜디오로 내려와요.” 

 

무도 없는 집안, 숙현은 지하실 방에서 사진과 그림과 책과 씨름을 한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서있는 숙현의 눈 높이까지 책과 종이와 작은 박스들이 쌓여있었다. 지금은 많이 낮아졌다. 오늘 저녁에는 두 부부가 다 일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며 기지개를 켠다. 영원이 여기서 살면 좋겠다.

 

58가 화랑에 갔었다. 노란색 머리를 뒤로 묶은 새파란 눈의 갤러리 남자 직원이 호들갑스럽게 다정하다. 버그도프 굿맨 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을 한 미시즈 리는 숙현에게 미스터 김이랑 먼저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맨해튼에서 커네티컷 그리니치까지 두 시간 넘는 드라이브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티스트인가요?

아니요. 아트의 역사를 공부해요.

그럼 갤러리에서 일할껀가요?’ 

몰라요. 아직은. 대학원 마치고 봐야지요. 미스터 김께서는 아트에 관심이 있으세요?

저, 그림 그립니다.

네? 그러세요? 어머나 언제….  어떤 그림을요? 유화?. 

시간이 될 때마다 손바닥만한 작은 스케치북에, 볼펜으로 그려요. 

어머나. 미술 공부하셨어요?

고등학교 때 이민왔어요. 고모네 야채가게에서 일하면서 퀸즈 커뮤니티 대학을 다니다가………..

 

“그림 한번 보고 싶네요.” 

“기회가 되면.”

 

***********

 

집에 손님 초대가 있는 날이 아니면 부부가 함께 저녁을 하는 날은 드믈다. 미시즈 리가 늦는 편이라 숙현은 미스터 리와 저녁 식사를 하곤 했다. 글래디스가 준비해 놓은 식사를 차리는 건 숙현이다. 냅킨을 깔고 숫가락을 놓을 때 미스터 리가 거든다. 둘이 마주 앉는다. 반 백의 머리를 뒤로 넘긴 미스터 리는, 잃어버린 젊음을 찾아 나선 듯, 대학시절 이야기에 몰두하다가 어느 순간엔 마치 젊음을 찾은 것 처럼 숙현을 뚜러지게 바라보곤 한다. 

그 옛날 나의 엄마를 생각하는 걸까? 

 

식사 시간이 늘어진다. 어느 새 글래디스가 퇴근을 한 모양이다. 보통은 설거질을 해놓고 집에 가는데. 슬쩍 사라졌다.

접시를 치우는 숙현을 거들다가 숙현의 몸에 부딪치자 미스터 리가 흠칫하고는 어색하게 허허 웃는다. 갑자기 두 손으로 숙현의 두 팔을 잡는다.

 

부부가 다 밖에서 저녁을 한다는 날, 운전수 미스터 김이 두개의 커다란 박스를 들고 들어온다. ‘사모님이 숙현씨 방에 갖다 놓으라고 했어요.’ 

미스터 김이 숙현 방에 들어오기는 첫 날 이후 처음이다. 책상위의 가지런한 카타로그 파일과 서류들을 둘쳐본다.

“ 사모님이 20년 전에 벌써 외국작가 전시를 하셨네.” 

“ 미스터 김 그림을 사모님에게 한번 보이지 그러세요.”

“ 에이 뭘”

“ 와이 낫?”

 

미스터 김이 방을 나갔다가 와인병과 잔 두개를 들고 온다. 

 

***********************

 

인간이 별에서 만들어졌다는 말을 들었을때, 숙희가 처음 생각한 것은, 그럼 죽으면 다시 별로 돌아가나? 였다. 여기서 말하는 별은, 빅 뱅 때 만들어진 원자보다 작은 요소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가상이겠지만, 숙희는 오래 전 설악산에 올라갔을 때 본, 칠흑같은 하늘에 촘촘히 흩 뿌려진 별도 아니고, 언젠가 속초 암흑같은 바다 위에 떠있던 주먹만한 별도 아닌, 지금 창문 밖 그 별을 생각한다. 

마치 방안을 드려다 보는 것 같은 별이 숙희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깜빡하는 것 같았다. 

저 별 말이다. 저별에 아버지가 계실까? 자기 목숨을 끊은 사람이 별에 못 간다고 해도 아버지는 가셨을거야. 별 그림을 많이 그리셨다잖아. 나도 갈수 있을까, 아니 지금 갈수 있을까.

 

침대가 흔들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새벽까지 그 별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손이 숙현이 허리에 와 닿는다. 따듯하다. 시계가 새빨간 빛으로 2시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불을 둘치며 일어서려는 숙현의 허리를 다시 감싸는 손. 따듯한 손. 숙현이 허리에 감긴 손을 잡으며 돌아 눕는다.

 

*******************

 

창 밖으로 미시즈 리가 차에 탈 때까지우산을 받치고 서있는 미스터 김이 보인다. 

차가 미끄러지듯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 숙현은 아침 커피를 끝낸다.

 

향내나는 방에 들어가 조심조심 화사한 옷가지를 꺼내어 얼굴에 대어 보는 절차를 지켜야한다. 자기 모습에 감탄을 하는 그 차례를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해야만  앞으로 당당하게 잘 살아갈수 있다. 나는 언젠가는 정말로 내 옷을 입을 자격이 있다. 

떨어질 듯 줄타기 밤을 지낸 아침이면 더욱 더 이 의식이 필요하다.

 

그렇게나 별이 빛나던 밤인데 오늘은 이렇게나 비가 오네. 

그림자를 본것 같은데. 왠일인지 옷장문 손잡이를 쥔채 한참이나 망설인다. 숙현은 하얀 옷장 문을 연다. 쭈루룩. 한발짝 들어선다. 언제나 처럼 황홀하다. 

 

“숙현아”

몸이 굳었다.

하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본 여인이 소금기둥이 되었다고 한 전설은 사실에 근거했었던 것 같다. 숙현은 똑 바로 서있는다. 영원의 시간이 흐른 뒤, ‘숙현아’ 부른 사람이 다시 ‘숙현아’ 한다. 굳어있던 숙현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무릎이 맥없이 꺾인 것이다.

 

나즈막한 절규의 소리가 들린다.

“ 나는 네 엄마에게 사죄할 기회가 생긴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었어.” 

미지스 리의 첫 마디를,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있는 숙현은 듣지 못하는 것 같다.

 

“ 이진수가 네 엄마와 나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 걸, 내가 확 끌어당긴거였지. 끌려올수 밖에 없지. 미국에 아파트와 비지네스까지 다 마련해 놓았으니 같이 가자고 했거든. 정권이 바뀌면 다 뺏길 우리집의 재산이었어. “ 목소리가 높아진다.

“진수네 집이 가난했거든 찢어지게. 온 몸으로 자기를 사랑한 혜주를 돈과 바꾼거야.” 웃는 소리가 들린듯 하다.

“우리가 미국가서 결혼한다니까 아랫배를 가리며 백지장이 된 너의 엄마, 그 얼굴 이제 나 잊어 버릴꺼야. 잊을 수 있어. 이제 안 미안해.”

미시즈리가 오열한다. “나쁜 자식, 비겁한 놈.”

 

“컴언 미시즈 리, 나우. 유 고.” 처음서 부터 그 옆에 서 었었던 글래디스다. 

 

숙현을 일으켜 세우며 글래디스가 속삭인다.

“ 아이 노 디스 클로젯 라이크 아이 노 마이셀프. 아이 노우, 하우 매니 와인 바틀스 인 디스 하우스. 유 노우?” 숙현 귀에 더욱 바짝 대고 한마디를 더한다.

 “아이 노우 에브리씽!”

숙현을 붙 잡고 층계를 다 내려온 후 글래디스가 크게 “오케이. 수키, 기브 미 유얼 런드리즈.”한다.

숙현은 고개를 흔들며 허공을 걷듯이 방으로 간다.

 

전화가 울린다.

“숙현아. 숙현아.”

“으응… “

엄마의 목소리가 아주 밝다.

“정숙이가 전화를 다 하네. 네가 일을 벌써 다 끝내고 아주  잘 했다고, 만족한다고.”

“아, 으응.”

“그래서 더 이상 네가 자기 집에 있을 필요 없구, 학교까지 멀어서, 예일 대학 앞에 너 있을 아파트를 계약했다는 거야. ”

“응.”

“그런데 숙현아. 저, 으음, 이진수 아저씨는 어때? 너에게 잘 해주시던?” 엄마 목소리가 떨린다.

“으응”

“많이 늙으셨나?”

 

*******************

 

숙현이 부엌으로 갔을 때 빨간 원피스를 입은 미시즈 리가 자리에 앉아있다. 

포크와 나이프로 접시를 뒤적이며,  “이따가 운전수 미스터 김이 너를 기차역에 데려다 줄꺼야.”

“ 아, 그리고… 아저씨가 아파트에 가 있을거다.” 하고는 소시지 조각이 꽂힌 포크를 입에 가져간다.

 

미스터 리 자리는 비어있다. 

 

숙현의 머리 속에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활활 타들어가고 있는 캔버스. 한번도 본 적도 만져 본적도 없는 아버지가 그 캔버스 안에 있다. 얼굴은 미스터 리.이진수. 회색 머리에 회색 스웨터. 다정한 눈빛과 따스한 손.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메아리쳐 들린다.

미시즈 리가 일어나 나간다. 창 밖으로 기다란 리무진 차가 보인다.

 

***************

 

방을 트렁크에 싣고 차 뒷문을 열어준 미스터 김이 숙현이 뒷 자석에 앉자마자 문을 닫는다. 차가 집을 빠져 나와 한참을 가도록 둘은 말이 없다.

 

기차 역에서 차가 멈추고, 미스터 김이 내려서 차문을 열어 주고, 뒤로가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 땅에 놓고는 한참 숙현을 바라보다가 다시 천천히 걸어가 운전석에 탄다.

시동 걸린채 머뭇하던 차가 움직인다. 

 

숙현은 가방을 끌고 대합실로 향한다.

(2022-1, 4/14)

 


2011년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문인극 대본/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등장인물 :   앙드레 지드, 나레이터, 시인 1, 2, 3, 4, 5, 6 …가수, 무용수 장면 :   거리의 카페 …테이블, 의자, 가로등… 정원 ….꽃, 화분, 벤치  숲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