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의 나들이/노을/이런 만남/정말 보고싶다
1.
혜화역 4번 출구를 나온 사라는, 출구에서 곧장 500미터 쯤에 스타벅스가 있다고 한 그 스타벅스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스타벅스 모퉁이를 끼고 돌면 오른쪽으로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고 했는데,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진짜 그 건물이 보인다. 대학 시절 서울대 캠퍼스에 몇 번 와본 후로는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는 동숭동이다. 강문기와 만나기로 하고나서부터 이날 이 순간의 장면을 그려보려고 했다. 하지만 연필자국 조차 없는 백지장이다.
얼굴을 막다드릴 순간에 일어날 감정의 동요같은 것 미리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공연히 일을 만드는 거나 아닌지, 그렇다고 야릇한 기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사라가 만남에 신경을 쓴 건 사실이지만. 살이 비치는 흰색 셔츠 위에다, 이세이 미야케 식의 주름이 진 까만색 자켓에 흰 브로치를 달았다. 눈가를 까맣게 칠하고 청색 아이래쉬 브러시로 속눈썹을 올리고, 입술은 주홍빛 도는 빨간색이다. 귀 뒤로 바짝 넘긴 짧은 머리를 슬쩍 흐트린다. 거울 앞에서 몸을 좌우로 몇 번씩 비춰 보고야 방을 나섰다.
페이스북에서 강문기라는 글자를 봤을 때부터 그 시절이 머리 속을 맴돈다. 하지만 맴돌고 있는 건 강문기가 아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해서 한알을 따 콱 깨물면, 아사삭 차갑고 달고 그리고 텁텁하고 떨떠름하게 입안에서 부셔지던, 과수원 사과 맛. 설익은 20대 시절이다. 강문기에게는 사라가 못내 잊지 못한 여인이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강문기가 사라에게 한 획을 짙게 그어준 존재인 것도 분명하다.
강문기는,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정이 들것 같아 잘 달래어 보내주고 싶은, 거리에서 용기를 내 말을 걸어오는 고등학생과도 같았다. 미국을 올 때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가끔 한국에 가서 동창들이 강문기 이야기를 해도, 그렇구나, 너무 먼일이었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약속 일시를 주고 받으면서도 강문기의 이미지는 그 정도에 머물어 있다.
붉은 벽돌 건물에 들어서자 사라가 층계를 찾은건, 시간을 좀 벌어보자는 뜻이었나. 층계 표시가 달린 문을 열고는, 자, 심호흡을 하고, 층계를 하나 하나 세듯 오르기 시작한다.
2.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에서 번호를 받아들고 빈자리를 찾아가 앉는 순간, 노년이라는 자리로 턱썩 주저 앉는 것 같았다. 언제 부터인가 모임에 가면 자기가 가장 나이가 많다는 걸 느끼면서부터 사라는 공연히 자기가 먼저 나이를 말하곤 했다. ‘어머 그렇게 안보여요.’하는 소리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야 말로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니까. 그 보다는 나이 따위는 초월한 척 하는 것이다. 사라가 몇년생이라고 말 하면 사람들이 재빨리 속으로 계산하며 왠지 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덤으로 오는 재미였다.
그러나 소셜 시큐리티는 다르다. 노인임을 자기 스스로가 정식으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거다.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리다 사라는 불현듯 아하! 한다. 페이스 북을 하자. 아이비 리그 대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는 페이스 북을 알게되자마자 어카운트를 열었다. 최첨단을 가고 싶었다. 그러자 딸아이가, 마치 젊은 애들 노는데 엄마가 나타나기나 한 것 처럼 야단을 해서 곧바로 어카운트를 닫았다. 그리고는 ‘소셜 네트워크’ 영화가 나오고도 한참 후다. 남녀노소 누구나가 페이스북을 하는 걸보고는, 세상에 뒤지지 않으려고 다시 열었었지만, 여기저기서 안면 있는 사람들로부터 우루루 친구요청 오는 것이 귀찮았고 굳이 남들과 구구절절 오고갈 필요도 없었기에 또 페이스북을 덮었던 것이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소셜 미디아를 은근히 멀리해오다가 이제와서 다시 페이스 북을 여는 건 필사적인 노후 대비책이었다.
페이스 북에 올라오는 친구요청 들을 무시하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머리 맡에서 나는 땡하는 소리, 무의식적으로 집어든 셀폰 스크린에 떠있는 페이스북 친구 요청 <강문기>에 사라는 화들짝 놀란다. 둥둥둥 가슴까지 뛴다. 화면을 한참 바라본다. 페이스 북을 열어 놓고도 또 한참을 생각한다. 그리고는 폭탄 단추를 누르듯 친구요청에 승낙을 하자마자 셀폰을 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페이스 북을 열었다. <사라. 정말 보고 싶다>라는 글자가 폭탄이 터지듯 튀어 나왔다. 페이스북에 이런 폰트를 쓸 수 있었나? 큰 사이즈의 고딕 볼드체. 강문기….이사람 정말 한번 보고 싶기도 했다.
<선생님, 40년 만이네요.> 둘의 말문이 터졌다.
<제가 9월에 한국에 갑니다. 그 때 뵐 수 있을까요.>
<그래 보자>
페이스북을 열었을 때 강문기 이름 옆에 파란 불이 들어와 있으면 후다닥 페이스북을 닫는다. 한국시간 한 밤중일 때 페이스북을 열어 강문기에 딸려있는 친구들을 찾아본다. 각계 각층의 현역도 있고 시골에서 농사짓는다며 손자를 안고 있는 허연 수염의 사라 동기 동창도 있다. 친구에 달린 친구와 또 그들의 친구를 따라가 보며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래 페이스북 하길 잘했어. 나이들 수록 열심히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한다고, 맞는 말이다.
3층 층계참 문을 밀고 나가니 곧 번호 302가 달린 방이 보인다. 숨을 고른다. 페이스 북에서 보고 보고 또 본 강문기의 얼굴, 모자까지 쓰고 있는 그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나겠군.
3.
조금 열려있는 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사라가 안으로 들어선다. 삐꺼득 의자가 밀리며 뒤 창문 빛을 받은 강문기의 실루엣이 황급히 책상을 돌아 나올때 사라가 ‘아이구!…’ 했고, 동시에 부둥켜 안은 두 사람의 입에서는 당장 아무런 말도 형성이 되지 않았다. 둘은 마주 앉는다. 자연스럽다. 사라가 예상했던 대로 큰 감정의 동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담담한 것은 또한 예상 밖이다.
“그래, 사라야, 너 어떻게 살고 있어? 뭐해?”
목소리! 옛날의 그 목소리다. 아니 말투와 표정까지도, 각이 졌던 턱 부분이 느슨해진 것만 빼고는, 짙은 청색 양복 안에 연한 핑크와 회색의 체크무늬 셔츠 차림까지도 그 때에서 훌쩍 이 자리로 뛰어온 듯한 강문기다. 흑백 컨템포러리 그림이 벽 하나를 다 차지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걸린 것이 없는 방을 둘러보며 사라는 강문기의 미니멀 취향을 상기한다.
“저, 딸 아들있구요, 애들 아직 결혼은 안했어요. 남편은 작년에 은퇴를 했구요.” 아마도 이것이 그가 알고 싶은 한마디 답일 것이다. 아하 그래 으응….하는 강문기 의 답이 생뚱하다.
“그런데 말야. 사라. 나, 나는, 사실…... 나는 너를 보면..” 말을 더듬다가,
“... 눈물이 나올까봐 걱정했지.” 내뱉듯 말을 마친 강문기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의 눈에 눈물은 없다. 사라가 기억하는 강문기는 마음 속 생각이 겉으로 금방 들어 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해도 마음을 이렇게 솔직히 말을 한 것은 세월의 힘인가. 어쩌면 걱정했던 눈물이 나오지 않았기에 자신있게 말을 했을까.
강사를 1년 한 후에 전례가 없이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는 그가 교실로 들어섰는데, 아무도 교수가 들어왔다고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칠판 앞에 혼자 서 있던 남자가 헛기침을 하자 실내가 조용해졌고 그는 별 인사말도 없이 학생들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가 출석부를 자세히 들여다볼 때 사라는 가나다 순으로 자기 차례가 온줄을 안다. 이름 옆에 과대표라는 표시가 있는지, ‘어, 사...라?’ 하고는 교실을 둘러 본다.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네에’ 하자 얼떨결에 앞자리에 앉은 사라를 바라보더니 얼굴이 빨개지던 강문기다. 사라가 입고 다니던 짙은 마젠타 핑크색 자켓이 유난히 짧고 새카만 머리카락과 커다란 눈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수업 중에 옆으로 온 강문기에게, 퍼스펙티브 그리기를 연습한 그래프 용지가 잘 보이도록 몸을 비키며 강문기를 올려다 보자, 급히 눈을 돌리며 다음 자리로 옮겨가던 강문기의 마음을 사라는 놏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문을 나갈 때 뒤에 닿는 눈길까지도 감지했다.
그 강문기가 지금 사라 앞에 있다.
사라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웃음을 눈에만 가득 담는다.
“선생님, 선생님이 페이스북에서 보신 제 얼굴은요, 오래 전 것이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 저를 보시면 그 얼굴과 너무 달라서, 좀 ...” 걱정을 했다는 말을 하려고 하자 “아냐, 아니야.” 강문기가 말을 끊는다.
“ 너, 지금, 지금이 훨씬 더 좋은데.” 한다. 사라는 또 할 말을 찾지 못한다. 페이스북에서 자기 얼굴사진을 열심히 들여다 봤을 강문기다. 유난히 이쁘게 잘 나온 사진을 올린건데. 친구 딸 결혼식 가느라 한껏 화장을 한 그 얼굴에서 강문기 안에 깊숙이 묻혀있던 나의 젊은 모습을 찾으려고 했겠지.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 더 좋다고? 그 옛날 그에게서 오던 아주 익숙한 감정이 퍼져온다.
“ 사라야. 너, 미국가길 잘 했다. 여기 있었으면 ... 결혼... 못했을 껄……”
“ 아, 아마도.” 사라는 우습지 않은 말에 하하하 웃으며 말을 돌린다.
“저요, 일부러 선생님을 구글 해보지 않았어요.” 일부러 라는 말에 힘을 준다.
“아,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면, 너 어디까지 알지?” 의자 등으로 몸을 제낀다. 그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건, 아마도 사라의 논문 지도를 마칠 무렵이었을것이다. 강문기는 일사천리로 세월을 달린다. 이런 저런 상을 탔고, 어떻게해서 총창까지 했으며, 자기 업적이 사회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은 명예 교수로 박사 논문만 지도하고 있고, 요새는 유화까지 손댔다면서, “아, 우리 와이프..., 음, 왜, 거, 사진 했잖아. 지난 봄에 예림 화랑에서 전시 했거든” 까지. 아, 그 와이프.
사라에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느날 수업을 마치고 사라가 남자 학생들과 같이 강문기 스튜디오에 갔었을 때, 골목안에 강교수랑 서있던 흰 얼굴과 긴머리의 여자. 학년이 올라가면서 사라는 강문기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수제자 반열에 들어 있었다. 여자는 학생들 쪽을 보더니 홱 돌아서서 반대방향으로 뛰듯 걸어가 버렸다. 바로 옆에 서있던 제이가 속삭인다. ‘너 때문이야.’
여학생 많은 학교에 젊은 교수 남편을 둔 부인이라면 당연히 여학생을 경계하겠지, 하지만 어쩌면 이건 제이의 생각아닐까? 강문기와 친하게 지내는 나에 대한 제이의 질투?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날 어스름한 저녁이, 한장의 삽화처럼 남아있다.
페이스북에서 강문기가 ‘정말 보고싶다’라고 했을 때, 사라는 제이를 생각했다. 아니 강문기 때문에 생각이 난 것은 아니다. 제이는 늘 사라와 함께 있었다. 교정의 언덕길, 눈 오는날 명동 성당앞, 서로의 얼굴을 코 앞에 맞대고 웃던 만원 버스 속, 파라다이스 와인을 마시던 이대앞, 막걸리를 마시던 서강대앞 , 뜨거운 햇볕 내려쪼이는 바닷가, 파라솔 아래에 제이가 벗어놓고 간 티셔츠에다 슬며시 얼굴을 갔다 댔을때 맡은 선텐 로션의 따스한 냄새까지 되새김하면서 말이다.
강문기가 호수에 던져진 돌이었고 조용하던 제이가 물결을 일으키며 번지기 시작했다.
뉴욕에 유학와서는 엉뚱하게 곧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았다. 감춰둔 날개 옷을 도로 준다해도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는 사라에게 친구가 맨해튼 꽃 가게를 소개했다. 렉싱톤 에브뉴 59가, 뉴요커들은 우선 사라의 아시안 얼굴에 흥미를 보였고, 디자인 공부를 대신한 꽃 가게는 입 소문을 탔다. 뉴욕에 온지 10년 첫 유럽여행을 감행한다. 겉으로는 친구의 아트 페어 관람이었지만 사업과 살림의 줄다림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마드리드 컨벤션 센터에서 세계의 아트 월드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아트는 이제 그만. 사라는 콜럼버스를 배태워 보낸 스페인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돌 바닥 광장을 바라보고 앉은 카페의 모자이크 조각이 떨어져나간 테이블에 앉아, 수백년 숙성된 진득한 공기를 들이 마시며, 바삭 메말랐던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아트 페어 마지막 날에는 친구를 도와주러 컨벤션 센터에 갔다. 광할한 전시장을 슬슬 돌아보다가 한 곳에서 온몸의 피가 차갑게 얼어 붙는다.
제이! 목 둘레가 깊게 파진 흰색 셔츠에 꼭 끼는 카키색 바지를 입고, 한뼘 크기 부스 안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제이.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석고처럼 굳은 제이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먼저 입을 연건 결국 사라였다. 사라는 그랬다. 귀찮은 감정은 빨리 처리를 한다.
“ 네가 빠리로 갔다는 소리는 들었어.”
“ 으응,…..” 엉거주춤 일어서며, 제이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낸다. ‘너.. 여기 어떻게?’ 한다. ‘그림하는 친구따라서 구경 온거야.’ ‘아직 뉴욕에 살아?’ ‘응’ …. 제이가 말을 할 차례까지 한 순간이 영원처럼 흐른다. 그때, 어깨까지 찰랑한 금발을 한 젊고 날씬한 남자가 박스와 테잎을 들고 부스 안으로 들어 선다.
“ 알로, 제이… ” 둘을 번갈아 바라본다.
“ 아, 몬아미 사라. 음… 쟈크. 갤러리 주인이야” 제이의 얼굴은 그대로다. 사라가 손을 내밀며 “하이, 나이스 투 밋유”하자, 쟈크가 활짝 웃는다.
강교수 부인 말에 사라는 한 박자도 쉬지 않고 ‘와아, 대단하시네요.’ 한다. “응. 열심히 하더라구. 근데 우리 아들놈들은. 무슨 투자회사 한답시고...” “ 아 네에” 사라의 네에, 아 네에…..에 아들얘기 손자얘기가 이어진다. 사라는 다시 몸을 테이블에 바짝 댄다.
“선생님, 저 취직시켜 주시고, 또 전문강사자리 추천해주셨는데, 연락도 안드리고.”
“아 그랬어? 내가 취직도 시켜줬어? 아. 난 그건 생각안나. 그냥 나는, 너 하면 그냥 참, 뭐지, 응, 참 순수한 학생이었던 거…” 강문기는 씨익 웃는다.
만남을 마무리하려던 사라의 마음이 엉킨다. 순수? 나를 순수하다고? 오히려 그 반대일텐데. 사라는 항상 스승과 제자의 거리를 철저하게 계산해왔다고 생각했다. 강문기와 가까운 사이라는 건 자타가 공인하는 터였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모범생을 향한 태도임을 가장한 사라다. ‘ 자기가 보내는 신호를, 내가 순진해서 눈치채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한 여름 밤, 스튜디오에 사라가 혼자 남아 작업 정리를 하고 있을 때, 터질듯한 랭글러 청바지, 사라의 가슴을 꽉 조이는 얇은 줄무늬 와이셔츠의 단추 사이 사이로 속살이 비집고 나와있어도, 그랬어도, ‘사라, 늦었는데, 집에 가야지?’ 했던 강문기다. 사라를 쫓아다니던 다른 남자들처럼, 철통같은 사라에게 감히 시도도 못하는 줄 생각했다. 기억들이 엉킨다.
“ 밥 먹으로 가자.” 강문기가 벌떡 일어난다. 언제 들고 나왔는지 모자를 쓴 강문기와 사라는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웅성임 속에서 몸이 맞닿을듯 나란히 걷는다. 음식사진이 요란한 식당으로 들어가니, 호들갑스럽게 반기는 주인 아줌마, 반찬그릇을 놓는 웨이트레스가 사라를 흘깃 바라본다.
4.
“ 프리다 카를로 알아?” 강문기가 느닷없이 꺼내는 말이다.
“제가 처음 뉴욕 갔을 때 모마에서 프리다 전시를 해서 그 때 처음 알았지요.”
“그럼 트로츠키도 알아?”
“프리다가 망명한 러시아 혁명가와 연애했다는건 영화보고 알았구요.”
스승과 제자는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와 프리다 카를로의 자화상에 대해, 러시아 혁명과 브라질 문화에 대해 누가 더 많이 아는가를 다투듯 주고 받는다. 컵에 물을 따라주는 웨이트리스가 물러 가자, 강문기는 눈물이 날줄 알았다고 말할 때 처럼 또 느닷없이, “사라, 사라야. 난 너를 한나 아렌트라 생각하고 싶었지.” 한다.
‘한나 아, 렌, 트?” 처음 듣는 이름이다. “아, 왜 그 독일의 여자 학자. 하이데커 제자야. 둘이 연애했지.나중에는히틀러때 나치를 찬양했던 하이데거를 변호했지. ”
마치 잘 준비한 강의를 하듯 - ‘둘이 연애했지’는 마치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는 듯이 얼버무린 - 강문기는 한나 아랜트의 철학과 그가 쓴 책에 대해 늘어놓는다.
사라가 후회를 하는 것이 있다면 연애다. 연애를 한번도 못했다. 아니 하지를 않았다. 연애는 불자에 몸의 사리처럼 불태워야 남는다. 그 누구도 사리를 위해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이루어질수 없는 연애일수록, 차라리 불륜일수록 수천개의 면으로 빛을 발하는 보석과 같다는 것을 사라는 뒤 늦게 본다. 프리다 카를로? 한나 아렌트? 아니 그저 보통 남자와 다방에서 만나 영화보러 가고 키스도 좀 하고…. 그냥 그런 연애라도 해봤었다면.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사라가 연애를 할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부모에게서 사랑타령을 보며 사라가 서서히 굳혀간 것은 ‘그게 뭐라고 저 모양들이람’ 혐오감이었다.
끄떡하면 어린 딸에게 첫 사랑 이야기를 하던 어머니,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고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결혼했는가는 귀에 못이 박혔다.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가 안방에서 싸울 때 어린 사라는 아버지가 딴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어느 일요일, 아버지가 미술도구를 사준다고 사라를 데리고 나가서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아이고 어쩜 이렇게 예쁘니. 앞 머리를 반듯하게 자른 여자랑 택시를 타고 간 식당 온돌 방에서 아버지는 지갑에서 지폐를 한장 꺼내 주면서 저 앞 가게에 가서 담배를 사오라고 시킨다. 나머지 돈으로 너 먹고 싶은 사탕도 사라고 한다. 저녁 때가 되어 집에 오자 어머니는 사라를 따로 불러 앉힌다. 어디 갔었어? 응? 사라는 아무말도 못한다.
강문기를 바라본다. 뭐 스승과의 사랑? 아 참 시시하다. 아랜트보다 더 이쁘고 더 똑똑하다했어도, 연애가 필수과목이라해도, F학점을 맞아도 연애는 불가능한 과제였다. 제이 역시도 연애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헤어진다는 말 없이 헤어졌다. 아니 애인이 아니었으니 헤어지는 과정도 필요는 없었다. 만약 그가 한발짝 다가왔다면? 아니다. 한발짝도 다가 오지 않았기에 좋았다. 구구절절 엮이는 사연은 싫으니까. 미국에 간다니까, 응, 잘가. 했고, 가서 연락하라는 말 조차도 하지 않은 제이. 그래서 사라 마음에 꺼트리지 않은 아련한 불씨로 남아 있는 것일수 있다.
그 때 마드리드에서의 만남이 마지막인가. 제이의 이름은 가끔 빠리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한국 뉴스에 나오곤 했기에, 만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길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면? 만나서 어떻게 할거냐구. 마드리드에서 제이에게 손을 내밀자 사라의 손을 꼭 잡는 제이. 온몸이 전율했었다. 애써 눈을 돌려 벽에 걸린 제이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 좋네. 성공, 오케이?’ 하며 슬그머니 손을 빼려고 했지만 제이는 사라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제이의 눈 속에는 ‘사라야 나 너 참 좋아해, 알잖아. ’ 하는 수천 마디가 담겨있었다. 알아. 사라가 그 눈 빛을 받아 들인다.
정말 보고 싶은 건 제이다. 어디선가 제이를 또 다시 만나게 될까 두렵기까지 하면서도 말이다.
5.
식당을 나온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스타벅스로 간다. 미닫이 식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극 포스터가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문화의 거리 동숭동 답다. 좁다란 테이블에 커피를 앞에 놓고 또 다시 마주 앉는다. 여전히 밝은 웃음을 띄고는 슬쩍 셀폰 시간을 본다. 강문기가 눈치를 챘나? 언제 뉴욕으로 돌아가냐고 묻는다. 본능적으로 날짜를 댕겨서 말한다.
“또 연락하자. 응? 메신저로 하자.”
“네.”
스타벅스를 나온다. 그래, 응, 잘가고. 강문기가 사라의 한쪽 팔을 두드린다. 먼저 벽돌 건물쪽으로 돌아서는 강교수의 걸음이 휘청한듯 보인건 착각일까.
큰 길로 향하면서 사라는, 페이스 북은 또 끝내야겠군. 한다. 아래 쪽에 파란 불로 들어와 있는 강문기를 피하느니 아예 닫아 버리지뭐. 줄타기는 피해간 사라다.
자기를 좋아해서 어쩔줄 모르던 수줍은 청년같던 교수님, ‘지금 너 얼굴이 더 좋다’고? 그 옛날 그 사라에서 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을까? 이제는 성공가도에 걸림돌이 될 일도 아니니 지금이라도 ? ’ 사라의 마음은 다시 본래대로 움츠려 든다. 괜히 왔었나, 괜히 이 할아버지의 끝내지 못한 젊은 열정을 둘추게 했나. 씁쓸하다.
늦가을 해가 건물 사이로 낮게 내려가 있다.
제이와 버스를 타고 종로 5가에서 내려서 걸어가던 어두운 동숭동 길. 서울대학교 어느 강의실에서 열린 ‘그림이 있는 노래’에서 김민기를 처음 봤다. 김민기는 밥 딜란의 노래를 불렀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제이가 흥얼흥얼 몸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한다.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사라는 ‘쉿 조용해’ 제이를 툭 친다.
거리의 소음이 들린다. 지나가 버린 시간, 깊숙한 동굴 속에서 겨우 빠져 나온다. 자켓의 깃을 여미며 서울 어디에서나 똑 같아 보이는 상점 쇼우 윈도우를 유심히 들여다 본다. 뉴욕에 돌아가면 우선 ‘선생님, 40년 만에, 정말 반가왔어요.’ 메시지를 한번 보내 드려야겠다.
바삐 어수선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사라는 걷는다. 아무런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걸음을 천천히 옮기면서.
저 앞에 지하철 입구가 보인다.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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