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달밤에 남녀가 배 안에 앉아있다.
강 바닥에는 둥그런 물체가 하나 어른어른하다 .
여자는 다소 곳이 두손을 모으고 있고, 남자는 누런 덩어리 하나를 물에 떨어뜨리고 있다. 덩어리가 아직 수면에 닿지 않은 찬라, 둘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 동창 정숙이의 그림이다.
“처음에는 남자 두명으로 그렸는데, 한 사람을 여자로 바꿨어.”
형제가 길을 가다가 금덩어리 두 개를 주어 하나씩 나누어 갖고 배를 탔는데, 점점 욕심이 생긴 형이 금덩어리를 물에 던져 버리자, 동생도 알아채고 금덩이를 버렸다는 이야기다. 나에게 주려고 남자하나를 여자로 고쳤다고 했다.
그래? 밤새 볏단을 지어 나르던 의 좋은 형제는 알았어도, 금 덩어리 버린 형제 이야기는 몰랐다. 어쨋든, 휘영청 달이 하늘에도 뜨고 강물 바닥에도 뜨고, 남녀가 고즈넉히 앉은 뱃전에도 하나 둥그렇게 달려있구나. 이태백 시가 따로 없네. 했었다.
어느날 문득, 그림 속의 금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생활에 쪼들리던 때다.
‘아니, 금 덩어리를 버린다고? 의가 좋아서?” 그림을 노려본다. 이 그림이 무슨 작용을 한거 아니야? 머리카락이 쭈뼛 한다. 자꾸 눈이 그림을 향할 때 마다 애써 고개를 돌렸다.
정숙이는 때때마다 그림을 내게 주곤 했다.
일찌기 유학을 간 정숙이는 스케치나 판화를 국제소포로 자주 보내주었고, 한국에 와서 전시를 했을 때 전시장에 걸렸던 그림을 내게 주고 갔다. 내가 뒤늦게 미국에 와서 결혼을 할때 청첩장을 그려줬다. 마루에 두개의 하얀 찻잔이 놓였고, 학 두 마리가 지붕위로 날아 드는 그림이다. 그 학들이 찻잔 속으로 들어가 앉았고 찻 주전자에서는 뜨거운 김이 지붕을 뚫고 솟아 오르는 그림을 후에 결혼 선물로 받았다.
그림값이 금값일 때에도 내 아이들 결혼 선물로 그림을 주었다.
하지만 금 덩어리 그림을 받은 상황은 조금 다르다. 정숙이가 처음으로 유럽에서 전시를 할 때 갑자기 그림이 더 필요하게 되자,내가 정숙이 집에 가서 그림을 찾아 싣고, 케네디 공항으로 날라준 수고에 대한 댓가였을 것이라고, 생각을 더듬어 본다. 사이즈가 큰 유화라서, 정말 고마와 하며 벽에 잘 걸어두었던 것이다.
생활고 언덕을 넘고 한참을 살다가 집 수리하느라 그림을 옮기게 되었다.
‘저 금덩이를 가슴에 부둥켜 안고 있었던들, 우리가 떵떵거리고 살았을까? 남편이 아내 말을 고분이 듣는다고? 좋아하시네. 그걸 왜 버리냐고 소리를 지를 판에. 이만큼 산 것만 해도 “의 좋은”이란 제목 때문인지 모르지.
다른 벽에 붙박이가 정숙이의 그림이 한 세월 후에 또 다시 나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이번엔 좀 심각했다.
가깝게 지내는 선배언니가 실로 오랜 만에 전화로 “내 친구, 성애, 걔가 죽었어... ” 했다.
성애는 선배언니가, 미국서 만난 어릴적 한동네 친구다. 중학교때 남미로 이민을 갔다가 미국에 와서 사업을 크게 벌렸고 어마어마한 맨션에 살며 큰 아들에게 반쯤 사업을 물려주고는 흥청이며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난 선배 언니에게 저돌적으로 적극적으로 다가와 친하게 지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쇼핑을 가면 둘다 같은 걸 좋아해서 놀랐고, 식당에 가면 같은 걸 시켜서 깔깔거리며 마치 여학생 단짝같았단다.
놀랄 새도 없이 선배언니는 “성애가 사준 그림, 알지? 너의 친구그림 말이야. 나, 그거 버렸어.” 한다.
정숙이 개인전에 선배언니를 초대했었다. 선배언니에게 박물관 특별 전시 같은 걸 알려주면, 의례히 성애랑 같이 갔었다고 했기에 이번엔 소호의 분위기도 즐기시라고 둘을 오프닝에 초대 했던 것이다.
그날 성애 씨가 그림 하나를 가리키며, ‘나 이거 살께’ 하고는 곧 선배언니에게 큰소리로 “이 그림 너 줄꺼야.” 했다. 근사한 장소에도 와 보고, 화가랑 직접 말도 해보는게 다 선배언니 덕이라는 거다. 나를 향해서는 눈을 징긋하며 “ 빚 좀 좀 갚아야지.“ 했다.
선배언니는 성애 씨가 항상 지나치게 퍼주는 것을, 워낙 부자라 그렇겠지 했지만, 그림을 사주고 나서는 은근히 자기를 컨츄럴하는 것 같았단다. 그리고 “걔 참 안됐어. 대학원까지 나와서 겨우 잡화상을 하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니. 영어라도 좀 잘 했으면 지금보다 잘 살았을텐데.”라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한 말을 전해 들은 후엔 성애 씨를 멀리 하기 시작했단다.
결정적인 일은 성애 씨 막내딸 결혼식에서다.
피로연 여흥이 한창일 때, 선배언니는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 앉았는데, 요란하게 화장실 문이 열리며 성애 씨 목소리가 들렸다. “걔는 돈도 없는 주제에 지가 무슨 공주나 된다고 그렇게 춤 좀 추라고 해도 꼼짝도 않냐. 봤지? 웃기지도 않아.” “맞아, 그 언니는 파티도 못 다녀봤나봐.” 한동네 살 때 여섯살 배기였던 성애 씨 동생이 깔깔거리며 맞장구 친다.
10살짜리 아들이 있는 성애씨 딸이 연하의 총각을 꼬셔서 결혼을 한 거라는 것 까지 덫 붙이는 선배언니의 말이 두서가 없다. 친구사이는 일방적으로 끝을 냈단다. 그런데……
일체 답을 안해도 계속 연락을 해오던 성애 씨가 하루는 카톡을 보냈다. ‘나 암이야, ‘너는 괜찮니? ‘ 항상, ‘너랑 나랑은 어쩌면 이렇게 공통점이 많니”하던 성애 씨가, 그림을 사 주며 “나 이게 제일 좋다, 너는?” 했을때 도저히 ‘난 별로야’라는 말을 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자. 성애씨는 ‘거봐, 우린 소울 메이트라니까’ 했다.
선배 언니 머리속에 ‘너는 괜찮니?’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항상 여기저기 아픈데가 많은, 예민한 성격의 선배언니는, 처음부터 정숙이 그림이 싫었단다. 정숙이가 어느 소설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했던, 긴옷을 입은 여자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동굴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 그림을 보면 으시시 하여, ‘저게 나란 말인가?’ 했단다. 그래서, 성애 씨의 흔적이 있는 물건은 물론이고, 그림까지 버린 것이다.
“ 그래도 비싼 그림인데, 다른 사람을 줄까도 생각했어.”
“ 아니예요. 까짓 그림이 뭐라고. 다른 사람이 갖고 있어도 계속 마음이 불편할테지요..”
“그렇지? 그림을 버리고 돌아서는데 벌써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나는 잘 하셨다고, 그 가증스런 이중인격 친구는, 그림 버린것 처럼 잊어버리시라고 연거퍼 말했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애들 봐주러 오신 어머니가 애들 학교 멀티 컬츄럴 행사에서 일본어 소설을 하나 사셨는데, 얼마 후 그책 버렸다고 했다.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책을 집 밖 쓰레기 통에 갖다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겼었는데, 어머니는 한국에 돌아가서 동창회지에 “내가 버린 책’이라는 글을 냈다.
미국 딸네 집에서 아무도 없을 때 책을 읽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온몸이 떨릴 지경으로 무서워서, 책을 집 밖 쓰레기 통에 버리고는, 다음날 청소차가 쓰레기통을 비워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는 내용이다.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어쩌면 책에 대한 죄책감을 글로 변명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배 언니는, 친구로부터의 배신감에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까지도 냉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버린 그림이 후배의 친한 친구 것이라는 미안함, 또한 화가가 알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변명이 겹겹이다. “그림이 걸렸던 자리에다 꽃 사진 걸어 놨더니,얼마나 이쁘고 좋은지, 집안이 다 평화스럽구. 정말이지 이상할 정도야. “
진짜 이상한 건 그 다음이다.
얼마 후 선배언니 전화다. 오래 전부터 증세가 걱정스러웠던 의료 검사 결과가 ’ 아무 문제 없다’로 나왔다고.
세상에.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친구를 모함하여 대감집 도련님을 채가는 사극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그림이, 순수한 현대 예술작품이 무슨 역할을 했다는 건가?
부잣집의 딸로 자라 예쁘고 똑똑해서 어딜가나 날리던 선배언니는 남편따라 주재원으로 왔다가 눌러 앉고 나이가 들도록 소매상 비즈니스를 놓지 못하고 있는데, 헌 옷을 입고 다니고 공부도 못해 천대꾸러기였던 친구가 매사에 거리낌 없이 자신만만한 것에 순전히 돈좀 있다고 저러는 구나 ….. 했었을수도 있다.
성애 씨 쪽은 좀더 복잡할수 있다. 어릴 때 하얀 얼굴에 눈이 커서 돋보이던 친구가 여전히 우아하게 늙어 있는 걸 보니, 까마득히 눌려져 있던 질투가 솟아 올랐을테고, 2층 벽돌집 사는 것이 그렇게나 부러웠었는데, 지금은 사는 것도 그렇고 어리숙해 보이니, 아 별거 아니구나. 우월감이 한껏 솓구쳤던 것일까.
그렇다면…… 마음에 걸리는 정숙이 그림이 또 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는 두 여자의 머리위로, 구름이 뭉게뭉게 떠올라 있다. 두 덩어리 구름은 서로 섞이지 않고 돌돌 말려있다. 어느 작은 갤러리에 ‘내 친구 노려’라는 제목으로 걸렸던 작품이라서, 나는 내 이름이 든 그림을 -돈주고- 사서, 부엌 옆 화장실에 걸어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친구와 말을 주고 받았다.
‘너는 꼭 손을 넣어봐야 물이 끓는 걸 아니?’ 가 내 말이고, 친구는 ‘한번 만져보면 알걸 무한정 냄비만 바라보고 있냐?’ 한다. 친구는 첨벙첨벙 강을 건너가는 사람이고, 나는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다시 한 번 더 두드려 보고는 건널까 말까 하다가 안 건너간다. 한마디로 180도 다른 성격이다. “그래서 너의 말과 내 말이 따로 논다고?’
하긴 그렇다. 우리의 대화는 기차길이다. 교차되지 않는다.
어느 여행 길 호텔방에서 둘은 밤 새며 토론을 한 적도 있다. 나는 왜 우리가 죄인이냐고 했고, 친구는 나에게 신앙심을 심어주려고 열심을 냈다. 정숙이에게는 우정도 열심히 가꾸어야 할 과제였고, 나는 ‘우정은 저절로 나와야 진짜지. 열심히 가꾸어야 한다면 싫다.’고, ‘누구에게나 다 베푸는 사랑을 나에게도 베푸는 것이라면 뭐가 좋아?’ 했을테고, 친구는 내가 한심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관계가 무척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서로의 다른 점이 오히려 서로를 보완한다고 해석을 했다. 억지였을까? 친구는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랑으로 애를 쓴 모양이다. 나는, 돌다리를 두드리고 두드려도, 정답이 없으니, 자신있게 팍 터트리지를 못했을 뿐이고.
다 좋다. 자기는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다 한거잖아?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정숙이는 여자가 동산 꼭데기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을 그려줬다. 무슨 뜻이야? 자기는 두 아이를 입양해 척척 키우고 있는데, 내가 늦게 아이를 낳고 쩔쩔매는 꼴이 우습다는거야 뭐야.
그 놈의 금덩어리도 말이야. 돈 앞에서 형제끼리 의좋기가 그리 쉬운가? 더구나 부부는 더 하지. 금 덩이를 버리고 얼마나 돈 걱정하면서 살았는데. 왜 나한테 그런 그림을 줬지?
지금이라도 저 그림을 버려?
비장한 마음으로, 그림 앞에 마주 서 봤다.
길쭉한 화면 위쪽으로 두 개의 산이 보인다. 영락없는 한국 시골 산이다. 고속버스 타고 갈때 바라보던 둥그런 산등성이, 그 사이로 난 흙길이 달빛에 정겹다. 훈훈한 강 바람이 얼굴에 닿는듯하다. 아, 이 아름다움을 못 보았다니, 참으로 내가 이상하다.
팬대믹으로 은근슬쩍 은퇴를 하고는, 하루 종일 집에서 맴돌고 있으면서도 전화 한번 안하는 나에게 부지런한 정숙이는 안부도 자주 한다. 줌으로 재저사이즈를 하고, 스쿼불 클럽도 한다면서.
얼마 전에도 둘이 찍은 옛 사진 하나를 스캔해서 보내 왔다. 배경을 보니 정숙이가 한국에서 했던 첫 전시에서 같이 찍은 것이다.
내가 “50년전이네.” 라고 써 보냈다.
정숙이의 답은 ‘둘다 너무 이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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