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사람
그는 하늘색을 좋아한다고 했다. 어떤 하늘이냐면, 있잖아.……,
해가 막 지기 시작할 때의 하늘, 그 색이라고.
바람 한점에 구름이 새털 처럼 나를것 같은, 그래서 한국의 자랑이라고 했던 쨍하게 높은 하늘이 아니고 그렇다고 활활 타오르는 석양도 아니다. 엷은 재색과 분홍빛? 주홍색일까? 아니 결코 이름 붙일 수 없는 색으로 짜여진 얇은 망사가 한겹씩 덮어 나가는듯. 해가 물러날수록 검붉은 색조가 번지는 하늘.
아 그래, 알 것 같아, 그색.
물감으로 비슷한 색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건 그가 좋아하는 하늘색이 아니다.
그가 “있잖아…..그런 하늘.” 할 때 내 눈에도 확연히 그려진 색은 그 때부터 두 사람 마음을 하나의 색으로 물들였기에, 언제건 어디서라도 그도 나도 영락없이 바라볼 그 하늘의 색이다. 혹 떠 다니는 구름에 가릴지라도, 그 하늘을 또 만날거라는 기다림을 남겨주는 색이다.
사실이다. 해질무렵의 하늘을 보게 되면 항상 그를 생각한다.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귀가 뻥 뚫릴 때 처럼, 음악소리가 꽝꽝 들린다. 오묘한 하늘색을 그려보는 동안에도 다방 안은 언제나처럼 시끌벅쩍 했었던 것이다. 이렇게 둘이만 같이 있는 일은 드물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는 성희의 친구였다. 1학년 여름방학 때 그와 성희는 대학생 노래 클럽에서 만났다고 했다. 다방에서 성희랑 함께 볼 때까지 그가 같은 과인줄도 모르고 있었다.
강의 실 뒤에서 노래하는 그를 기다렸다가 같이 나와 교정의 긴 언덕길을 걸어가면서, 그는 내가 좋아하는 죠니 미첼이나 크로스비 스틸스 앤 영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흥얼이 아니라 나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뱃속에서 뽑아낸 한줄기 소리를 이마 위까지 올려 갔다가 다시 입안에 머금고는 숨을 내 쉬듯 풀어내는, 그의 목소리는 비단실타래다. 살며시 애타고 여린가하면 폭발하듯 화사하고 오만하도록 진했다.
좀 있다 은희가 끼어 들고, 이어서 영미가 합세하고 어느새 선주가 따라 붙는다. 우리는 밥 먹어라 부를때 까지 얼굴이 까매지도록 노는 아이들처럼, 강의실으로 다방으로 명동으로 우루루 쏘 다녔다.
그러나, 그의 하늘 색을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
은희가 11번을 찾고 기다릴 때엔 우리도 같이 두리번 거렸다. 11번은 이마로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긴 다리로 휘청휘청 걷는다. 전혀 옆을 보지 않는 걸 보니 무척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나보다. 은희는 11번이 멀리 나타나면 얼굴이 하얘진다. 11번은 과대항 야구 대회에서 11번을 달고 있어서 11번이다. 나중에 건축과 학생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아주 나중에는 이름도 알게되었다.
“그니까, 11번 나타나면 똑 바로 걸어 가서 말을 걸어봐.” 남자의 속성을 알아서인가, 그가 말한다. 은희는 동동주를 꿀꺽 들이킨 컵을 탁 놓으면서 ‘난 못해.” 한다. 술에 취한 은희를 부축하려는데, 그가 내 어깨에서 가방을 끌어내려 자기 어깨에 멘다. 은희를 버스 태워 보내고 나서 가방을 내 어깨에 걸어 준다. 내가 내 버스를 타고 내다보면 고개를 한번 끄덕하고 자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주로 이런 식이다.
어쩌다 둘만 남았을 때, “내일 일찍 올래? 나 오디션이 있어서.” 한다.
오전 수업이 없는 빈 강의 실. 그는 사과를 두알 꺼내 한 알을 내게 준다. 그가 사과를 크게 베어 물자 스읍~, 춤이 내 입안에 고인다. 그는 노래를 부르고, 나는 과제를 꺼낸다. 나중에 언제나처럼 친구들과 섞인다.
친구들이 나 없이 그를 따로 만난 적은 아마도 없었을 거라고 아직껏 그렇게 믿고 있다.
***
11번 땜에 미치겠다며 은희가 ‘너는 남자, 한번 만져보고 싶지 않아?’했다. 만져보고 싶다고? 별로.
성희는 미팅에서 만난 남자가 어두운 골목에서 자기를 덥치더라고 한다. 덥쳐? 어떻게 ? 안 물어봐도 말했을 성희가 숨을 삼켜가며 ,이렇게 저렇게 한다. 뭘 시시하구먼. 자랑도 아니고.
미국 이민 갔다 온 남자랑 결혼까지 생각한다는 영미다. 아 그 남자? ‘정말 제 눈에 안경이네.‘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어린시절 트라우마를 애써 찾아갈 필요도 없다. 죽고 못산다고 지지고 볶는 그 모습들, 지레 피해갔다. 피했다기 보다는 죽고 못 살 사람을 못 만났다는 것이 더 맞겠지.
장발단속에도 끄떡 없는 아방가르드 남녀공학 미술대학, 아침에 같이 등교하는 커플 학생들이 흔했다.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과 자유의 빠리를 그리워 한 나혜석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 히피시대 포스트 모던 자유연애가 내게는 남의 이야기다.
늦은 밤, 은희 선주 들이 다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가 내게 손을 내민다. 목걸이다. 고개를 들자 건널목으로 뛰어 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작은 도자기 조각 양끝을 매듭실로 묶은, One and Only다. 그가 도자기과를 기웃거리는 걸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목걸이를 한 나를 보고, 즉 그가 내 목을 쳐다보는 걸 내가 봤는데도, 그는 아무 말이 없다. 나도 아무말 안했다. 사실 말을 필요할 이유가 없다.
도서관 건너편 책상에서 느끼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조교. 감히 말을 걸지 못하던 복학생, 무작정 따라오던 동네 남학생, 정도 이상으로 친절을 베푸는 유부남이 아닌, 그와 둘이서만 만나는 날이 잦아졌다.
목걸이를 찾아봤다. 없다. 샅샅이 뒤져봐도 없다. 미국 올 때 분명 갖고 왔는데….
***
음악 감상실, 그는 아래학년 남학생이랑 이야기를 한다. 두 사람의 말 소리는 음악에 파 묻혔지만 1학년 남학생 눈에 비치는 물기를 얼핏 본 것도 같다. 곱슬 머리에 유난히 피부가 하얀 남학생은 내게는 눈도 주지 않는다. 우리 셋은 음악 감상실을 나와 명동 입구에 새로 연 분식점에 가서 프랜치 프라이를 먹었다.
코카 콜라가 그렇게나 신기하게 맛있던 시절, 바삭하니 따거운 프랜치 프라이 맛을 잊을 수 없다.
가끔, 팝콘을 먹으며 대한극장, 피카디리 극장에서 사먹던 팝콘이 생각이 나듯, 가끔 프랜치 프라이 같이 먹던 후배 남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미국으로 간다는 말을 하던 카페에서 그는 ‘피칸 파이 하나 하구요.’ 했다. 뉴욕에 오자마자 그리니치 빌리지 레지오 카페에서 카푸치노와 같이 먹은 피칸 파이는 내 생애 두번째 피칸 파이가 된다.
단 한번도 그를 생각하지 않고 피칸 파이를 본 적이 없다.
***
졸업하고 은희가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다들 모였다. 취직도 못할꺼면,이번 방학에 집에 와서 꼭 선을 보라고 난리라고 했다. 취직 시장은 흐리기만 했다. 11번이 교정에 안타난지도 꾀 오랬다. 우리들은 그가 군대 갔을거라고 위로했고, 은희는 부산 가기 전에 꼭 11번을 봐야만한다고 운다.
두꺼운 구름이 내려앉은 듯이 어둡고 유난히 추웠던 그 겨울, 그의 노래가 대학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가 노래를 하는 이대 앞 2층 카페 안에 들어서자 훅 끼쳐오는 담배 연기 속에 벽에 기대서서 노래를 하는 그가 보인다. 뒷자리로 가 앉았다. 노래를 끝내고 그가 내 자리로 오자, 카페 안 여자들의 눈초리가 몰린다. 둘은 어깨를 맞대고 서강대 앞까지 걸어가 막걸리를 마셨다.
그의 첫 음반이 나오던 날, 그의 얼굴이 크게 찍힌 레코드 판을 받아 든 나는 파라다이스 와인으로 축하주를 샀다. ‘이걸로 어떻게 성공을 한단말인가’ 걱정은 ‘이제부터 승승장구만 남았네.’ 격려로 바꾸고 와인잔을 채운다.
그가 결심하듯 말했다. ‘나, 좋아하는사람 있어" 했다.
나는 가만 있었다.
“너도 아는 사람이야.” 누구라는 말을 끝내 안한다.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둘은 취할 때까지 마셨다
우리는 또 만났고, 아무런 다른 일이 없었다.
***
11번의 이름이 김우석이라는 걸 알아냈다. 군대로 면회가겠다던 은희는 부산으로 갔다. 몇년 후에 은희가 털어놓았다. 휴가나온 11번을 만났었으며 – 글쎄, 여관방에 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만나니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은희가 독신으로 사는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다.
아르바이트 하던 호텔 뒷문으로 나와, 종로쪽으로 향했을 때 사방으로 휩쓸리는 인파 속에서 어떻게 그 두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을까. 하긴 눈에 뜨이게도 생겼다.
까만색 짧은 자켓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핑크색과 밤색의 줄무늬 긴 머풀러가 타박타박 걸음마다 출렁거리고 있는 그의 옆에는 하얀색 터틀 낵 스웨터 위에 카키색 오버코트를 입은 흰 얼굴의 곱슬머리가 머리를 제치며 웃고 있다. 깔깔 소리가 들리듯 하다. 맞다. 그 애구나.
못 본 것으로 해야겠다.
그의 노래가 방송을 탄다. 그와 나는 졸업 후에도 다른 일 없이 자주 만났다.
나의 아름다운 시간들에 마침표가 찍히던 날, 그러니까 경복궁 앞 하얀색 실내의 카페에서 피칸파이를 먹던 그 날까지.
저 하늘에 구름따라 흐르는 강물따라
정처없이 걷고만 싶구나
바람을 벗 삼아서 눈 앞에 떠오르는 옛추억
아~ 그리워라
말짱하게 치워진 어머니 집 한 구석에 동생들이 따로 놓아둔내 짐 속에서 그의 판이 나왔다. 그 판을 호텔로 들고 왔다. 한참을 바라다 본다. 호텔방에 놓고 나왔다. 누군가, 45년 된 희귀한 한정판 음반으로 땡을 잡을 수도. 아니면 그냥 영원히 없어지는거다.
오늘도 그의 노래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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