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31, 2019

기자의 눈/ 아직도 핫바지인가

2019년 1월 17일

아직도 여전히 핫바지

핫바지란 말이 무슨 뜻으로 쓰이던가? 구굴을 해봤다. 여러가지 해석 중에  <1. 솜을 두어 지은 바지. 2. 시골 사람 또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바로 2번이 내가 찾던 뜻과 비슷하다. 여기에다 예의가 없다까지 덫 붙여야 한다.

이민 116주년을 기념하며, 대 뉴욕 한인회가 주최하는 제 59회 ‘코리안 아메리칸 갈라 ‘ 행사엘 갔다가, 화려한 플라자 호텔 로비를 걸어나오면서 떠오른 생각이 ‘한국사람 아직도 핫바지 못 벗는구나’ 였다. 사회인이라면 지켜야 할 가장 상식적인 사회규범을 아직도 배우지 못하고 여전히 핫바지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로컬 뉴스에만 집중하다보니,뉴욕 한인회 행사에는 참석해본적이 없었던 내가 이번에 한인회의 행사에 갈수 있었던 것은 가까운 친지가 상을 받게 된 때문이었다. 역사도 오랜 유명한 호텔에서 열리는 ‘대大’ 뉴욕한인회 행사니 만큼 무척 세련되었을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는지 모르겠다.  
흔히 이곳 한인들의 사고방식은 이민 올때 한국의 시대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고들 하는데, 400 여 명이 모인 이자리에서 가장  핫바지였던 사람은 , 오래 전 한국을 떠나온 이민자들이 아니라 며칠 전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들이었다. 
우선은, 뉴욕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잔치인 이자리에, 요즘처럼 심하게 나라가 둘로 나뉜 상황에, 한국 국회의원들을 초대된 것에 놀랐다. 더구나 몇몇 참석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빨갱이’라고 손짓을 한 국회의원은 다른 스피커들 보다 더 열열하고 길게 정치성 강한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는 과연 여기가 어떤 자리인지를 생각해보기나 한 것일까. 혹시 뉴욕 한인회 행사 참석을 해외여행의 건수로 잡아 온것일까. 그렇다해도 적어도 초대된  행사 성격에 충실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뿐이 아니다. 
한국 뉴스를 통해 얼굴이 익은 5명의 국회 의원들은 연회장 한 가운데 길게 마련된 자리에 -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 앉아 있다가, 중간에 우루루 다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1세, 1.5세, 2세 그리고 내 옆에 앉아있던 40대의 입양인 여성까지 모두 혀를 찼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여야 할 이민자들의 수상식은, 연회장 뒤자리 테이블이 텅빈 상태에서 어수선 하게 치루어 졌다. 행사를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나가는 건,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이나,  70년대 한국을 못 벗어난 일부 동포들이나 비슷했다. 
그러나 한 가지 얻은 건,  남의 나라에 당당히 뿌리내리어  각 분야에서 독특한 재능과 끈기와 노력의 산 결과인 수상자들의 값진 모습을 볼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남의 나라 남의 가정에 와, 남으로 살면서 온몸으로 겪어낸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  나의 친지의 수상소감은, 직함에 맞지 않게 연예인이나 되는 듯 요란하게 차려입은 한인 인사, 자유당 시대를 방불케 하는 한국 정치인들, 식사하고 나면 의례 행사장을 떠나는 동포들, 이 모든 핫바지들 속에서, 은은하게 긴 울림으로 울려왔다. 한국 전쟁당시 그 누구 보다 헐 벗은 꼬마 핫바지였던 친지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기자의 눈/ 스페니시 엄마

2019년 7월 30일
스패니쉬 엄마

잔디 깍는 사람을 바꾸었다.  
나무 주위를 북돋아주었다는 항목으로 꾀 많은 돈을 청구하길레 나가보니, 다 죽어 갈색이 된  향나무 밑 둥이에도 흙을 둥그렇게 파 놓았다. 불평을 하자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밑의 일꾼이 했다고 한다. 아 그 동안 가드닝 비지네스가 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만스러운 일이 많던 차에, 동네 어느 집 잔디밭에 두명의 남자와 여자 한명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차를 멈추었다. 여자 정원사는 처음 봤다. 우리를 본 여자가 다가와 얘기를 듣고는 젊은 남자를 불러 스패니쉬로 말을 주고 받더니, 전화번호를 준다. 
우리 집에 한번 오라고 한 날, 이번에는 우루루 4명이 왔다. 남편과 부인 그리고 두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전혀 영어를 못했고, 엄마는 좀 알아듣고는 무슨 말에나 웃으면서 대답을 하고, 20대 쯤의 아들 둘은 영어를 잘했다. 
오케이 오케이, 값을 정하고 마당 일을 맡겼다.

아들이 잡초를 자르고 떨어진 나무가지를 바람으로 날리는 동안 아버지는 잔디를 깍고, 엄마는 쓰레기 봉지를 들고 아들과 남편 뒤를 따라다니며 뒷 처리를 했다.
남자들은 건축공사 판에서도 일하고 겨울엔 눈치우는 일을 하며 부인은 청소일을 한다고 했다.온 가족이 1년 내내 풀가동인 것이다. 전형적인 이민 가정이다. 

나도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던가. 하루에 1시간만 더 있었으면 할 때가 있었다. 돈을 벌고 벌어도 학비가 모자라 허리끈을 졸라매던 시절. 이제 그 힘든 세월 잘 견뎌내고,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하는 줄 알았던 나는, 여름 햇볕에 남자들 틈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 여자에게서 문득 내 모습을 보았다.

우리 한인들이 비지네스를 하기 위해서는 스패니쉬들과 관계를 하지 않을수가 없다. 알고보면, 그들 중에는 자기 나라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있고, 우리 한인들 처럼 그야말로 자녀들을 미국 주류사회로 진출시키려고 밤낮으로 애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내가 알고 있는 에쿠아도르 여자가 딸이 대학을 간다고 했다. “축하해요. 어느 대학교?” 하자마자 ” NYU !”한다, 나도 모르게 ‘와우, 와우'를 연발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대학교 이름인 것이다. 이 여자는 처음 와서는 청소하는 일을 했고 그러다가 가게 종업원으로 일요일 없이 일을 하다가, 얼마전에 10 여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을 만나러 에쿠아도르에 간다고 했었다.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딸이  NYU 간다고 하자 , 나도 모르게 그 여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맞아,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하는 저 모습이 바로 나 아니었던가? 

여기 한국인들, 이민자를 한데 싸잡아 죄인 취급하는 트럼프 시대인 지금, 잔디 깍는 일하는 스페니쉬 엄마와, 청소부 일을 하던 스페니쉬 엄마와 무슨 별다른 차이가 있단 말인가. 얼굴 색으로 일괄 취급을 당하는데 말이다. 우리 한국인들이 이제는 잘 먹고 잘 입고 고급스런 문화생활을 한다고 거드름을 부릴 처지가 아닐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눈총 받는 이민자다. 
먹고 살자고 온 사람들의 어린아이를 따로 잡아 가두는 공포의 이 나라에서, 과연 ‘아메리칸 드림’이란 단어가 무슨 말인가 싶다.

기자의 눈/ 국기 누구 편인가

“국기, 누구 편인가”

미국 독립기념일이 눈 앞이다.
 ‘독립’하면 무엇보다 먼저 국기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서양화의 선구자이신 김병기 화백이 오래 전에 들려주신 이야기가 마치 영화장면처럼 그려진다. 광복이 되던 다음 날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실 때, 정거장 마을마다 사람들이 일장기의 빨간 동그라미를 태극문양으로 바꿔 그린 임시 태극기를 흔드는 것을 봤다고 하셨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송기정 씨 가슴에 달린 일장기가 얼마나 한국인의 가슴을 저리게 했었는가.

요즈음은 태극기하면 태극기 부대가 떠오른다. 우파, 아니 극 우파다.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 전 대통령 얼굴과 트럼프 얼굴을 들고 북을 치며 행진하던 모습이다. 지난 봄 어머니를 뵈러 서울에 간 그 주말에 명동에 나갔는데, 광화문서부터 교통을 차단시키며 꾕가리를 치며 내 앞으로 지나간  태극기 부대다. 지금 홍콩의 시가지를 메운 시민들의 데모가 온통 뉴스를 장식하고 있지만, 내가 경험한 이 태극기 부대는 뉴스에도 나오지를 않았고, ‘양쪽이 붙어서 끝장을 내야지"하며 끌끌 혀를 차던 택시 운전사의 불평 정도였다.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인가 아니면 우파의 상징인가.
그렇다면 미국 국기 성조기는 어떤가? 미국의 상징인가 아니면 트럼프 지지자의 상징인가.

한국에선 삼일절이나 광복절에나 보던 태극기에 비해서, 미국에 오자마자, 맨해튼 5번가  34가 - 얼마전 문을 닫은 -로드 앤드 테일러(Lord & Taylor) 백화점 빌딩에 쭈욱 걸린 성조기를 보며, 미국은 자기나라 국기를 온갖 곳에 참 잘 이용하는구나 했었다. 대학 다닐때 히피의 상징인 피스 마크와 함께 미국 국기를 이용한 여러가지 장식용 상업 상품들을 많이 보긴 했었다. 우리는 태극기라면  마치 집안 어른 대하듯했는데 말이다.

딸애가 강아지를 사러 구글로 찾아 필라델피아 시골에 도착해보니 어느 집에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남부를 상징하던 미국남부 연합기(Confederate Flag)가 달려 있어서 깜짝 놀랬다고 했다. 숨어있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나 보란듯이 나타나는 현실에 겁이 났던 것이다. 
미국 국기를 상징으로 들고 나선 트럼프가, 이제는 계속해서 미국을 위대하게 하자고, 다음번 대통령에 출마하는 모양이다. 성조기에 대한 경례를 마다하는 흑인 운동선수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았듯이, 미국도 성조기가 정치 성향을 가르는 것이 되어버린 것도 문제인듯 하다.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축구 월드컵에 미국 선수를 응원하는 미국인 남녀노소들이 얼굴에 성조기를 그리고 프랑스 작은 마을 거리에서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신선해보였다.  며칠 전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지 50년이 된 기념 방송을 보며 달 표면에 미국국기가 달리는 순간 미국 대통령이 통화를 하는 장면에 새삼스럽게 감격했다.  
“국기는 바로 저 것인데. ” 독립전쟁이나 운동경기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국기는 국민을 상징해야 것인데….

하이웨이에서 성조기를 차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언뜻 저사람 혹시 이민자 싫어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민자로서, 암만 미국 사람이 다 되었다해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면 겁이 난다. 저것들이 언제 무슨 짓을 할까….하는.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일까.
그 모습만으로도 한 나라의 긍지와 자부심을 나타내는 국기가 한 쪽으로 일그러져 보인다.

2019 6월 25일

기자의 눈/ 잔인한 세상

잔인한 세상

멕시코 불법 이민자 아이들을 그 부모와 떼어놓는 일이 뉴스를 장식하기 시작할 때 거의 30년전에 보았던 영화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가 생각났다. 아이들이 한 대여섯 살쯤 되었을 무렵, 메릴 스트립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 영화를 ‘블락 버스터’에서 빌려다 보았다. 서브타이틀도 없이 대충 줄거리를 따라가던 어느 순간에  ‘세상에!' 했다. 나치 군인은 장난치듯 메릴스트립에게 가볍게 말한다. “ 둘 다 죽여야만 하지만, 너를 봐서 하나만 죽일 것이니, 죽을 아이를 네가 선택하라.”

그 당시, 나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나의 두 아이에게 두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없어지면 내 아이들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될까, 그 때문에 내 건강을 살피던 때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 목숨보다 중한 아이들 중에 죽어야 할 아이를 엄마가 선택을 한단 말인가. 그 나마 하나라도 살릴려고 절규하던 메릴 스티립. 영화를 마저 보질 못했다. 이 시대 멕시코 엄마의 심정이, 영화 속 소피의 마음과 뭐가 다를까.

그 정책을 시행했던 국방 안보장관 크리스틴 니엘슨(Christjen Nielsen)이라는 여성은, 나치도 아니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가 했다. 정책에 순종했다고 해서 죄가 없다고 할수 있을까? 인간의 도리라는 것이 있는게 아닐까. 하긴 요즈음 나에게도 근본적인 인정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최근 벌어지는 온갖 잔인한 학살 사건에 무덤덤해지는 나를 본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가끔씩 미국과는 정반대로 피고 지는 꽃과 나무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슬람 사원 희생자 장례 행사에 참여하고 온 이 친구가, ‘Morning has broken’을 부른 영국인 가수 (이슬람교로 전향하고 이름도 유스프 이슬람으로 바꾼) 캣 스티븐스가  참여했다면서, 그 사건으로 며칠간 우울해서 혼났다고 했다. 나는 ‘‘아 그랬구나.’하고는 곧 구글로 대학시절 즐겨 듣던 캣 스티븐스 노래를 찾아 보았다.

미국에 살아오는 동안 겪은 대량살인사건은, 오클라호마 폭탄 사건서부터 이루다  셀수가 없다. 최근에만해도 유치원, 고등학교, 교회, 유태인회당, 나이트 클럽 등에서의  총기사건. 이정도의 뉴스에는 무뎌져버렸다는 것을, 스리랑카 부활절 총기사고 때 절감했다. 스리랑카 기독교인들이 어처구니 없이  죽어 가던 날, ‘해피 이스터’, ‘부활절 즐겁게 지내세요’. 카톡 인사를 받으며, 화사하게 차려입은 교인들과 삶은 달걀을 먹으며 화기애애했다. 또? 스리랑카? 신문의 큰 제목만 보며 ‘ 이번엔 인명 피해가  크네.’하고 말았다. 그러면, 지난 주말 유월절 마지막날 캘리포니아 유태인 회당에서 벌어진 혐오범 소식에는 ‘겨우 한명 죽었네.’라고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해본다. 인간은 이렇다쳐도  기독교인의 하나님, 모슬림의 하나님 그리고 유태교의 하나님은 자기를 믿는 백성들이 이렇게 죽어가는데 뭘 하고 계시는 걸까. 하긴,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아담과 이브는 곧바로 하나님 말을 안들었고, 아담과 이브의 자식은, 즉 하나님의 손자들은  형제지간에 살인을 저질렀다. 막나가는 인간을 하나님도 어쩔수 없으신가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소피가 후에 뉴욕에 와 또 다른 어려운 선택들을 하며 자신의 인생을 꿋꿋이 살아 낸것, 또한 미국 어느 단체가 ‘Fortune’ 지가 정하는 500 회사에게 멕시칸 어린이를 격리시킨 트럼프 관리들을 어떤 형태던 채용하지 말며, 특히 크리스틴 니엘슨을 절대 채용하지 말라는 서명운동을 벌인다는 소식이다.

하나님도 어떻게 못한 잔인한 인간과 그나마 사랑을 실현하려는 인간들 사이의 줄다리기 같은 세상이다. 하나님은 사랑쪽에 스셔서, 인정과 도덕과 양심과 정의를 지키려는 인간들의 줄을 잡아 주실테지… 

2019 4월 30일

기자의 눈/ 공주에서 유관순 언니를

“공주에서 유관순을 만나다”

한국을 떠나온 지가 일제 강점기 기간 만큼의 세월이다. 그 세월, 제대로 딸 노릇 못하고 지내다 몇 달전 요양원으로 가신 어머니를 뵈러 한국에 갈 날짜를 잡을때에는 31절은 안중에도 없었다. 올해가 100주년이라는 건 알았어도, 어느 단체들의 행사 정도로 생각했다.
뉴욕의 한 친지로부터 31절 행사가 있는 공주로 오라는 초청을 받자, 하루 시간을 내어 몇 십년만에 고속버스도 타보고 수십년 전에 가보았던 공주가 어떻게 변했지 보며 기분 전환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휴라 매진되어 고생을 한 고속버스 타기에 아무런 노스탈지아도 못 느꼈고, 아직도 시골 냄새가 풍기고 있는 공주에서 나는 강렬한 존재로 우뚝 서있는 유관순을 만났다. 어린시절 막연하게 부르던 유관순 언니를 아주 다른 모습으로 만난 것이다.
실은 지난해 뉴욕 타임즈에서도 유관순을 만나긴 했다.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될, 세상을 바꾼 여성들의 조문’기사였다. 웬만한 전기나 위인전을 방불케 하는 뉴욕 타임즈 사망기사 난에서, 그 동안 주로 남성만 다루며 여성이어서 관과되었던 세계적인 여성들의 일대기를 쓰는 자리에 유관순이 실린 것이었다. 여성 최초로 1995년에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한 영국인 앨리슨 하그리브스(1962~1995), 영국 작가 샬럿 브론테(1816~1855), 초코칩 쿠키를 ‘발명’한 미국인 루스 웨이크필드(1903~1977) 등이 소개된 이 시리즈에 빛 바랜 사진과 Yu Gwan -Sun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으나,영어이기 때문일까, ‘한국 독립운동의 얼굴’이라고 소개된 유관순 스토리가 마음에 크게 닿지는 않았다.
유관순이 공주의 영명학교에서 공부한 것도, 유관순을 2년간 교육시켜 이화학당으로 유학 보내준 스승 사애리사 선교사도, 유관순이 1962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는 것도 그리고 드디어 사망 100주년 되고 나서야 거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는 것 모두 그날 공주에서 알았다.
3.1절을 기념할 마음도 없었던 내가 영명학교 학교 언덕에서 유관순 과 스승 사애리사(Alice Sharp) 부부 세명의 동상 제막식에서, 36년을 미국에서 살면서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대한 민국 만세’를 웨칠때 울컥했다. 유관순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유관순을 키워준 앨리스 씨와 같은 선교자들의 존재에 대한 감사와 특히 그 옛날에는 더욱 더 열등한 인간으로 차별받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한 두 여성에게서 감동이 전해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애리사 선교사는 미국 ‘북감리교회 해외여선교회’로부터 파송 받아 서울에서 이화학당에서 교사로, 교회에서 주일학교와 순회 전도자로 사역을 하다가 1903년 로버트 샤프 선교사와 결혼하고 1905년 공주로 내려와 충청지역 최초의 근대학교인 영명학교를 설립하고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애리사 선교사가 없었다면 유관순 언니가 교육을 못 받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유관순 열사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감리교 여선교회는 1869년, 비참한 삶을 사는 세상 여성들을 도와주기 위해 모인 여섯 명의 부인들로 시작해, 150년 후인 오늘에도 꿋꿋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이 행사에 참석하러 먼 길을 날라 온 미국 한인 감리교 여선교회 회원들을 보면서 실감했다. 미국 각처에서 모인 여성 회원이 50명이나 되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본연의 자유를 찾겠다고 부르짖은 유관순 언니와, 뉴욕 브루클린에서 선교교육을 받은 사애리사 선교사가 발을 딛으며 지나다녔을 영명학교 언덕에서 우울했던 마음이 전환되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는 나도 이 세상에서 좀 더 쓸모있는 인간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2019년 3월 5일

기자의 눈/ 작심 365일


2019 1 8

                                “작심 365
매년 연례행사처럼 세우던  ‘올해의 목표리스트가 아직 하나도 없다.
다사다난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았던 2018년은 미국이나 한반도의 정치상황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도 격동의 해였다.  지난 폭풍과 여름 근처 전봇대에 벼락이 떨어진 천재지변 그리고 11 폭풍, 12 폭우 등을 모두 몸으로 겪은 것까지는 견딜만한데, 노쇄하신 친정어머니 드디어 요양소 보내드리기, 가까운 친지의 소식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저 살아있다는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으니, 뭔가 살아보겠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같다.

2019 첫날, 해는 다시 뜨고 역시도 12 31일과 차이 없이 1 아침에 눈을 뜬다. 그리고는 언제나 처럼 해야만 할일에 매이며 어느덧1년의 52분의 1 지내버리고 나서야 부랴부랴 작심 3일을 생각해봤다. 올해는 무슨 목적을 세워볼까. 좀더 부지런히, 좀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될수록 건강식하고,  이웃들과 지내고,  노후대책에도 신경을 쓰자 등등……그렇게 십년을 결심했었지만 또한 언제나 변함없는작심3이었다. 타고난 성격을 바꿔가면서 실천하는 일이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떠오르는 생각은 한가지다. ‘ 자자.’이다.  오로지  매일 자고 싶은 생각뿐이다. 늦게 자고 아침이면 억지로 일어나던 나의 야행성 생활을 바꾸어,  아침형으로 성공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인 것이다.
만약 아주 비싼 약이 있어서, 약을 먹으면 기억력을 살려주고, 몸의 면역력을 키워주고, 심장질환의 확율을 내려주고, 시력을 보호해주고, 감기에도 걸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낯선일에 적응하는 힘과  상황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증진시켜준다고 하면 누구던지 약장수를 의심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마술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완전 무료이다.

당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은가요? 그러면 잠을 조금 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잠이 주는 마력에 대해 뉴욕 타임즈의  ‘스마트 리빙글에서 건강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다.  잠을 충분히 자면 한마디로 아주 건강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미국인의 3분이 1 잠이 부족하며, 80퍼센트가 1주일에 1 이상 수면문제로 고생을 하고, 인구가 부족으로 일을 못하는  날이 1 23 일이며 그로 인한 재정손해는 40억만 달라라고 한다.
8시간 자야 한다고들 하지만 개인에 따라 시간을 자야한다는 정석은 없다고 한다.   번의 실험을 해보면서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 아침에 깼을때 개운함을 주는 자신만의 잠을 찾아내어 습관화하라는 충고이다.

11 넘어하는  Late Night Show 보기. 이거만 지켜도 잠자리에 일찍 들수가 있다.  일단 3일을 지내보고 만하면 계속해서 일찍자기를 실천하자. 가끔은 Netflix영화도 보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기도 하겠지만, 평소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더자기 일이 뭐가 있을까.  올해 하나의 신년 결심,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수 있는잠자기  365 지속시켜 보려고 한다.


2011년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문인극 대본/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등장인물 :   앙드레 지드, 나레이터, 시인 1, 2, 3, 4, 5, 6 …가수, 무용수 장면 :   거리의 카페 …테이블, 의자, 가로등… 정원 ….꽃, 화분, 벤치  숲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