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발걸음 내 딛은 웨체스터 한인사회”
노려(웨체스터 지국장)
오래 전부터 웨체스터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서로 교류가 없고 한인 주류사회에도 별로 참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자타가 인정해오고 있었다. 이 곳 한인들이 넓은지역 내에서 각각 멀리 떨어져 살고있다는 이유도 이에 큰 한 몫을 하지만, 이들 스스로가 ‘별로
나서고 싶지 않아서,’ 또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서’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지역의 한인들 중에는 이민이 활성화 된 80년대 보다 훨씬 전에 전문직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 올드타이머들은 일찌기 미국 문화에 적응할 수 밖에 없었기에 미국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자연히 익숙해졌으며, 지역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한인사회와 가까와 질 수 없었다. 이들은 오로지 한국신문을 통해서 고국의 소식과 한인 사회의 움직임을 알 정도였는데, 웨체스터에 30년 정도의
한국일보 장기 구독자가 많은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렇듯 다소 고립적인 생활조건이 웨체스터 한인들에게는
외로움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차별화된 특별함’이라는 자기만족의 요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에 이지역에 대기업 지사원들의 인구가 늘어났으나,
그 들 역시 이곳의 한인들과는 별로 교류가 없는 생활을 했다. 그 때 이 곳에 남겨진
자녀들이나 조기유학온 학생들이 꾀 많았으나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대두시켰을 뿐 웨체스터 한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어느 새 이곳 한인들의 분위기가 시대성과 함께 필연적으로 바뀌었다. 우선은 올드 타이머들이 명실공히 ‘올드(Old)가 되었다. 고향이 그리운 만큼 한국적 정서가
그리워지는 때가 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뉴져지나 퀸즈에
살던 한인들은 조용한 동네와 좋은 학군을 찾아서, 또는 한인 밀집지역이 아닌 곳에서 비지네스를 하고자 이곳으로
이주해 오고 있다. 아예 한국서부터 이 지역으로 이민을 오는 사람들도 부쩍 늘기 시작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현상은 이 지역에서 자라난 2세들이 결혼 후 어린자녀를 데리고 다시 이곳으로
옮겨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맞추어,
‘웨체스터 한인회’가 주도하여 캔시코 댐에서 열리는 ‘아시안 아메리칸 페스티발’에 한국이란 나라가 인터네셔날 페스티발이 생긴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소개가 되었으며, 지난해 창단된 ‘웨체스터 한인 합창단’이 첫 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초등학교 멀티 컬츄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인 학부모들의 규모가 커졌으며, 이화여대 동창회가
웨체스터에서 지역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을 알려오고, ‘알재단’의 스튜디오
방문에 많은 예술 애호가들이 플래젼트빌에 사는 작가 김미경씨 자택을 찾아오며, 한국무용가 홍영옥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이곳 한인 사회가 큰 폭으로 넓어지고 있다.
5월 9일자 웨체스터 판에 실린 ‘하츠데일에 H마트 들어온다’ 기사는 즉시로 이 곳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다. H-Mart라는 싸인이
붙은 트럭이 서있는 것을 봤다는 한
여성이 “한아름 들어오는게 확실하네요.”라며, “이제 여기에 싸우나만 들어오면 되는데…” 한다. 웨체스터 한인사회가 큰 발걸음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2011 7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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