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체스터의 한국 명절
노려
지난 달 H마트를 들렸더니 추석이라고 고객에게 송편을 제공하면서 특별행사를 하는 매장이 있었다. 새롭게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기분을 느꼈다. 퀸즈나 뉴저지 공원에서 매년 이맘 때에 한국사람들 끼리 모여서 추석잔치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여기 웨체스터에 거의 30년을 살고 있지만 추석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도 추석에 대한 언급조차도 없었던 것 같다. 송편을 준비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겠지만,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라서 그런지 다과시간에 송편이 나오는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면에서는 구정도 마찬가지다. 한 때 불교가 국교까지 되었던 우리 나라의 전통 문화가 기독교에 의해서 많이 축소 되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추석과 같은 명절은 조상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며 우리의 끈끈한 정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추석무렵 한국 TV를 보면서 각 프로그램마다 아나운서들이 ‘한국 최대의 명절’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 지역에 사는 많은 유태인들이 그들의 명절인 욤키퍼(Yom Kippur), 로시 하사나(Rosh Hashanah) 같은 날을 학교에서 쉬는 날로 정할 정도로 자기들의 문화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중국 사람들도 구정이되면, 학교에서 드래곤 댄스같은 특별행사를 연다. 여기 사는 한국사람들이 그 동안 한국 메인 스트림과 떨어져 있다는 지역적 이유 등의 여러가지 요건이 있었겠지만, 한국 명절과 별 상관 없이 살아 온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추석이다 구정이다 열심히 지키면서 전혀 미국화 되지 않은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도 없지않아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 날 멀티 컬츄럴의 미국사회에서야말로 각각 자기 나라의 고유문화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의 어느 젊은이가, 90세가 된 할아버지 팔뚝에 새겨져있는 아우스비츠 감옥 죄수번호를 자기 팔에 문신해 넣었다는 뉴스를 읽었다. 오늘 자기가 존재하기까지에는 어려움을 겪어낸 조상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자는 행동이다. 또한 국적이 불분명한 현대 예술일수록 그 예술가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떤 부모를 가졌으며 어떤 문화의 영향을 받았느냐를 중요하게 다루게 된다. 한 사람의 스포츠 맨이 온 나라의 명예를 걸머지는 것과 그 스포츠 맨 뒤에 어떤 부모가 있었느냐가 크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국방송에서 ‘강남스타일’이 하루에도 수십번 씩 나오는 요즘, 저렇게 우수꽝 스런 춤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싸이의 뒷 배경에는, 추수만 감사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안 계시는 부모와 조부모와 증조부모들을 기억하는 훌륭한 풍습이 깊숙히 서려있다는 것을 우리의 피가 섞이는 자손들에게 전해줘야 할 것 같다.
한국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그저 강건너 불 보듯, 오히려 서울 부터 부산까지가 주차장이 된다는 한국 뉴스를 볼 때 “아니 뭐 저 야단들이냐” 했었던 나 부터라도 우리 민족의 문화를 소중히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10월 16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