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로우’와 ‘여보세요’
어느 젊은 종교지도자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스마트 폰에 뜬 낯선 번호를 보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이 사람이 시니어 한인 공동체를 지도하고 있으며 한국말을 잘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길레 한국 말로 메시지를 남겨 놓을
참이었다. 벨이 두세번 울리자 전화를 받는다. “핼로우.”하는 소리에 나는 당연히 “여보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또 ‘핼로우’를 한다.
잘 안들리나, 다시 분명하게 큰 소리로 ‘여보세요.’를 하자 다시 ‘핼로우’로 답을 한다. 그래서 급히 ‘저는 뉴욕 한국일보의 노려라고 하는데요.’ 라고 말했는데도 상대방은 마치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듯이 한번 더 ‘핼로우?’한다.
할 수 없이 영어로 나를 소개하고 당신이 OOO 씨냐고 하자,
저쪽에서 “스피킹.” 한다. 아, 난감했다. 더듬 거리면서 용건을 말하기 시작하자
그가 갑자기 유창한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네,
지금 제가 밖에 있는데요. 한 시간 쯤 후에 전화드리겠습니다.”했다. 전화를 끊으며 기분이 묘했다. 처음에 분명하게
몇번이나 ‘여보세요.’라고 했는데, 왜 ‘핼로우’를 계속했을까.
이민 초기에는 ‘때르릉’ 집 전화가 울리면 일단 긴장을 했었다. 핼로우 할 것인가 여보세요 할 것인가……
우선 ‘핼로우’ 해 놓고는 상대방이 쏼라 쏼라
영어를 시작하면 알아 듣지를 못해 당황했었다. 물론 한국 사람이 전화를 걸었을 때 내가 핼로우한다고 미국
사람인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대가 변화에 감에 따라 망서리며 전화 받는 일도 바뀌어 갔다.
차차 핸드폰이 발달하고 집 전화에도 누가 전화 하는지를 대충 알기 때문에 편해졌다. 하지만 ‘핼로우’와 ‘여보세요’로 전전긍긍하기는 전지전능한 스마트 폰을 쓰는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잘 알지 못하는 젊은 한국
사람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이 사람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지 영어 밖에 모르는지가 은근히 문제가 된다.
아무래도 점점 더 어눌해져만 가는 1세 한인들에게 언어장벽은 더
높아지기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1.5세 쯤 되는 종교지도자 앞에서 떨떠름한 기분이 든 것이 오로지 언어장벽의 문제였을까?
한 시간 후에 전화하겠다던 그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내가 다시 전화를 했을 때 저쪽에서는 또 ‘핼로우’를 했고 나는 또 ‘여보세요.’를 했다.나는 ‘안녕하세요. 어제 전화했던 한국일보 웨체스터를
담당하고 있는 노려입니다.’라고 말했다. 상대방은 유창하다못해 네이티브
스피커 처럼 한국어로 자기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면서 전화번호를 내게 알려준 사람을 나무래면서 ‘신문에
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저는 싫습니다.’라고 말했다. 아하, 처음서부터 그저 ‘헬로우’와 ‘여보세요.’만의 문제는 아닌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여보세요.’ 하는 나에게 굳이 ‘핼로우’를 고집했고,
1시간 후에 전화하겠다던 약속을 어길 때 부터 그 인격을 알아 보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아니면, ‘핼로우’를 계속할 때 당장에 영어로 대응을 못한, 즉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도 아직도 ‘핼로우’에 갈등을 하는 내
자신을 후회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2016년 9월 27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