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자
한국 이름에 무슨 죄가 있을까.
하이웨이에서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한 딸의 이름을 받아 적는 경찰이 다짜고짜 수갑을 채우고 아무런 항의도 못하게 하고 경찰서로 끌고 간 이야기를 그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경찰이 지명 수배된 다른 한국 이름과 혼동을 한, 실수라고만 하기에는 편견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어깨를 다친 딸이 팔을 뒤로 해 수갑을 찬 장면을 말할 때에는 다시 분을 이기지 못하던 어머니는, ‘ 그러게, 첨에 미국 이름을 지을걸 그랬어요.’ 한다.
이김에 한번, 우리 미국에 사는 한국인 이름 석자에 죄를 물어본다.
미국 사람의 이름은 퍼스트 네임은 메리, 제인,죤, 빌처럼 다 같아도, 라스트 네임이 거의 다 달라서 이름이 혼동되지를 않는다. 배우 Swatcherneiger, 화가Leichenstein처럼 그들의 성은 발음도 어려운 길고 복잡한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다른 사람과 쉽게 구별이 된다. 그 흔하다는 Jones나 Smith 같은 이름보다는 세계 여러 나라의 보도 듣도 못한 이름이 많아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참 드믈다.
그러나, 한국 이름 석자는 거의 가 다 비슷비슷하고 같은 이름이 많다. 은희, 희은, 희정, 영애, 정애, 정희, 희민, 민경, 경민, 성남, 성수, 수영, 희영, 민영, 명호, 호영,영환,…... 이런 이름이 주로 김씨 이씨 박씨 최씨 그리고 조씨, 정씨, 성씨, 송 씨 등 얼마 되지 않는 성과 함께 쓰이니, 이름을 혼동하는 곤란한 경지에 자주 부딪치곤 한다. 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친해진 친구 이름이 김은희였는데, 한참을 그애가 이은희인지 김은희인지 혼동을 했었다. 또 우리 이름은 성별 구별이 어렵다. 영자나 철수가 아니라면, 영희나 정희라는 이름만 해도 꼭 여자라고 단정할 수가 없고, 윤호, 지수 같은 남자 이름을 가진 여자들도 많다.
한국 이름이 영어로 표기 될 때 문제가 배가된다.
자주 쓰이는 글자들이 Jung, Young, Yong, Sung, Kyung, Mun, Hun, Hong,
Dong, Hyo,Hyuk, Kong, Min, Jin, Jee, Jea, Hae, Hye, Whan, Wha, Kwak,Suk…... 처럼 짤막한 단어 세개로 이루어져 있어, 얼핏보면 다 같아 보인다. 그 뿐 아니라, Jung Hea Sung 이런 식의 이름이라면 앞 단어가 성인지 맨 뒤의 것이 성인지 잠시 헷갈리곤 한다. 또한 한국식 약자가 문제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Sung H. Kim 이런 식의 이름 하나에서 나올수 있는 순열 조합은, 성훈, 성호, 성희, 성환, 승호, 승희, 승훈…... 수도 없다. 한글 발음을영어로 바꿀 때에도 복잡해진다. 혜숙이란 이름을 영어로 바꿔 써야 할 때, Hae Sook, Hea Sook, Hae Suk, Hae Suk, Hye Suk,
Hye Sook 중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Hea Suk 이란 이름이 혜숙인지 혜석인지, 해숙인지 해석인지 자신이 없다.
예전에는 ‘정’ 자 하나를 놓고 鄭 定 貞 精....따지던 이름의 심오한 뜻은 온데 간데가 없이, Jung이냐, Jeong이냐를 고민을 한다.
그렇다고 미국 이름을 쓰면 쉬운가. 그렇지 않다. Grace, Jennifer, David, Jason 같은 이름도, Kim, Lee, Park, Choi라는 성과 함께 조합을 이루어서 혼동을 일으키는데에는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제이슨 킴, 마이크 리, 제니퍼 박이 서 너명 씩은 된다. 또 사회 단체에 적혀있는 이름이 David Lee, Nancy Chang이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모른다. 여자들 중에는 이민 초기에는 미국식을 따라 남편 성을 썼지만, 이제는 자신의 성을 표기하는 경우가 늘어 나서, 남편 성을 쓴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법적인 서류 이외에는 나의 성 ‘노’를 그대로 쓰니까 가끔 ‘미세즈 노’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의 새로운 트랜드가 영문이름을 쓸 때 자신의 성과 남편의 성을 같이 쓰는 거다. Young Mi Park Song 이라 써잇으면 어떤 성이 누구 성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미국에 사는 우리 한국인들 이름에도, 한국 도로 표시판 영문처럼 일정한 <한글 영문 표기법>이 적용되면 어떨까.
2014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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