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31, 2019

기자의 눈/ 3년이면 강산이


3년이면 강산이……
노려
캐네디 공항에 가서 한국일보를 받아다, 등사로 밀어 야채가게며 유학생들에게 우편으로 신문을 배달했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생각하면, 지금 글로발 한인사회가 기적같다.
그러나 피와 땀이 없는 기적이 없듯이 동안  뉴욕의 한국 사람들의  밤낮없이 전개되어 이민 스토리는 팔만 대장경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 ,  문화부 기자로 메트로 노스 기차를 타고 다니며 동분서주 무렵, 내가 웨체스터에 산다고 하면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뉴져지와 웨체스터를 혼동하곤 했었다.  어딘지는 몰라도 하여튼 플러싱에서는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곳이라는 곳이었다.  웨체스터에 사는 한국사람들은 김치 먹고도 산다며?” 하는 소리도 들었다. 선망스런 비웃음이라고나 할까.
한인 주류사회에서 멀리 자리잡고 있던  뉴져지는 LA한인 사회를 방불케 하는 한인 타운이 되었다. 그렇다면 웨체스터는?  10년씩 여러번이 바뀐 현재 여기 웨체스터의 한인 사회를 새삼 생각해본다.  과연 어떤 모습인가?
30 40 ,  여기 살고 있던 한인들이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한국식품점을 찾아 화이트스톤 브릿지나 워싱톤 브릿지를 건너다니던 이야기는 물론  웨체스터 한인사회의 전설이 되어 있다.   H 마트 덕분이다. ‘어제 한아름에 갔더니……’아직도 한아름 한아름 하는 웨체스터 올드 타이머들 식탁에는 온갖 김치들이 오른다. 교회 사교시간에 떡을 마추고, 맛있는 한국 빵을 사오고, 싱싱한 횟감을 사온다. 여기까지 신경을 써준 H마트에 땡큐다.
그래도 역할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한인 단체가 있고, 음악이라는 한가지 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합창단이 자리를 잡으면서, 삼삼 오오 끼리끼리 모이던 이곳 한인들이 이제는 웨체스터의 한인 커뮤니티라는 덩어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시대에, 먹고 시작한 한국일보 웨체스터 판이 3 째이다. 2009년도에, ‘오케이. 뉴스를 찾아 다녀보자.’ 했던 시절과 얼마나 달라진 모습인가.
웨체스터 강산이 3년만에 변했다. 앞으로 3 후면 어떤 모습일까? 차세대에 전해질 이민 1세대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이곳 웨체스터 한인 커뮤니티에  희망을 걸어본다.
201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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