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스파트라이트(Spotlight)’라는 영화를 봤다. 신문기자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미리부터 개봉을 기다렸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건드리기 어려운 종교기관의 뿌리깊은 비리를
파해쳐 플리처 상을 받은 보스톤 글로브(Boston Globe)사 ‘스포트라이트’ 팀의 심층 취재로 인해 순진한 교인들을 농락한 종교지도자들의 엄청난 허위가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과정을 클라이막스도 없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도 없이 차례대로 보여 준다. 그러나 한 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발로 뛰는 기자들과 전화벨 소리 속에 고함을 치며 와글벅적대던 1990년대 신문사 편집실 장면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지나간 세월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원고지에 기사를
쓰고 인화지로 교정을 보며 채 마르지 않은 흑백사진의 크기를 조정하던 때가 원시시대처럼 느껴진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일이 해결되는 지금,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 실감된다.
그러나 또 하나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점이다. 언제 어느 때나 돈과 명예, 권력을 둘러 싸고 진실과 거짖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압축 될 수 있는 인간의 삶이다. 허위로
뭉쳐졌으나 겉으로는 점잖기만한 종교지도자의 얼굴은 인류역사의 시작부터 예수 시대를 지나고 중세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쳐 온 지금까지 전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한편으로 기자들이 거센 파도처럼 닥쳐오는 난관에 고뇌하는 그 얼굴은 감동 그 자체다.
현실에서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며칠 전, 한 미국 뉴스에서 코란을 태웠다는 이유로 아프카니스탄 도시
한 가운데에서 대낮에 남자들이 무리를 지어 한 여자를 동물 다루듯 잔혹하게 죽이는 적나나한 장면의 동영상을 봤다. 경찰들도
살인에 동조를 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코란을 태우지 않았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과연, 한 개의 종이 책에 불과한 코란을 태웠다는 죄목으로 사람을 저렇게 처참하게
죽일 수 있는가. 그 힘은 오로지 종교 뿐이다. 더구나 종교로 인한
여성박해는 마녀사냥 (Witch Hunt)서부터 끊임이 없는 것 같다.
‘스포트라이트’ 기자 인터뷰에 응한 한 피해자는 처음에는
‘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 고 했으나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 설
때는 당당하게 ‘내 이름을 밝혀도 좋다.’고 말한다. 이렇게 진실이 밝혀졌다고 해서 철통같은 종교계에 한 가닥이라도
바뀐 것이 있을까. 아직도 성직자들의 비리를 성직자 뿐 아니라 교인들까지도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감춰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ISIS의 잔인한 학살을 위시해 온갖 총기난사와 어처구니 없는 인종차별 살인사건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2015년이다. ‘제발 내년에는…’ 너무 흔히 쓰여져서 이제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단어들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사랑’과 어두움을 밝혀주는 ‘진실’로 이 세상에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막연히 기대해 본다.
2015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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