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남의 말 들어주기
‘근하신년’
‘희망찬 새해를 맞이합시다.’ 등 덕담을 담은 카톡 연하장을 많이 받았다.
간간히 반대 서명하라는 등 강한 정치성 카톡도 섞인다.
작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 때문에 흥분하며 가슴 졸이고 온갖 뉴스를 살펴봤었는데 이제는 한국의 탄핵
뉴스가 새해로 넘어와 있다.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 해석을 해야 할지 이론도 논리도 통하지를 않는 듯
하다. 학교에서 배운 예의와 교회에서 익힌 인간의 도리가 존재를 하는건가. 하긴 아담과 이브서부터 인간의 역사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새로운 시작을
위해 2017 새 달력을 열어본다. 눈 앞에 펼쳐진 깨끗한
365일이 어떻게 채워질것인가.
가족들의 생일에 동그라미를 치고, 외국에 나가 있는 아이를 찾아볼 날짜와
늙으신 친정 어머니를 뵈러 한국에 갈 날을 정해본다. 한국! 갈 때 마다 확연히 달라지곤 하는 한국이다. 과연
누가 한국을 좌지 우지하게 될것인지.
내 젊은 시절, 말 잘 못하면 잡혀갔었다.
노래 잘 못 불러도 잡혀갔었다. 그러나 지금 그나마 한국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들을
두려움 없이 크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촛불도 안들어 보고 태극기도 안 흔들어 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극좌 극우의 애국심들이 심하게 부딪치는 이유는 뭘까. 말 잘 못했다고 잡혀가지는 않더라도 잘 아는 사이에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될 수있다. 처음엔 세상을 떠들석하게 한 뉴스니까 당연히 대화에 오르게 되지만, “타블렛에…” “아니야,
순전히 조작이라구……” “그런게 아니고.” “그게 말이 되?” 목소리가 올라간다. “그렇지만…….” 한마디 꺼낼라치면 “아니,
아니. 내 말 들어봐. 내말을 좀 들어보라니까.”
정치성향은 왜 이렇듯 양 끝으로 치닫는 것일까. ‘정치얘기와 종교얘기는 하지 말라.’는 금문율을 다시 떠 올려본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를 바로 지금의 ‘나’로 만든 근본 바탕이 바로 정치성향이고 종교관이 아닐까. 요즈음 NETFLIX에서 중세 유럽 영화들을 즐겨본다. 종교와 정치가 한 몸이던 이 당시의 수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종교 때문에 죽고 산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의 역사는 채바퀴가
맞다. 그러니 2017년에는 제발 채바퀴를 잘 돌려서 즉 말을 조심하면서
옆으로 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독일이 통일 후에 동과 서의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한 사람이 충분히 자기 말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조용히 그가 하는 말을 듣게 하는 이벤트를 열어서 힐링을 추구했다고 들었다.
“올해는…” 작심을 한다. 잘 지켜질까 자신이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꼭 최순실이나 세월호 얘기가 아니라도 나의 생각을
남에게 이해시킬려고 애쓰지 말고, 조용한 목소리로 차근히 말을하고, 나로서는 전혀 이해를 할수 없는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그 말을 끝 낼 때까지 정성껏 들어줘 봐야겠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보자.
2017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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